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인-잇] 부자 만들어 준다더니…홈택스 인증 앞에 도망친 '성공팔이'

<번아웃의 모든 것>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달러 현금 (사진=픽사베이)
"저는 2년 전까지 편의점 알바 흙수저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을 알고 5개의 사업체를 운영하며 월 오천 이상 순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제가 이룬 성공의 방법을 여러분께도 나누고 싶습니다."

SNS에서 너무나 자주 볼 수 있는 익숙한 광고. '또 뻔한 수법이구나'하고 넘기려던 그때, 저는 눈을 의심했습니다.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며 당당하게 말하는 그 강사는 불과 6개월 전 저에게 상담을 받으러 왔던 청년이었거든요. 당연히 부자도 아니었고 사업체를 운영하지도 않았어요. 어린 시절 부모에게 학대를 받고 그 상처로 인해 좌절을 했던, 성공해서 부모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사연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그가 등장하는 1분짜리 광고 속에는 한강뷰 아파트와, 외제차를 운전하는 모습, 대략 100여 명 정도의 사람을 앉혀놓고 강의하는 모습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중간중간 자신의 수입 인증이라며 인터넷 뱅킹 입금 화면을 아주 작게 캡처해서 살짝 보여주기도 하더군요. 딱 한 줄의 입금 내역만 캡해서 말이지요. 눌러서 들어갔습니다. 역시나 강의를 판매합니다. 분명 '경제적 자유'를 누려서 더 이상 돈이 필요 없다는 문구를 써놓고 누구보다 비싸게 강의를 판매하고 있었지요. 어느 날부터 이런 사람들을 통칭해 '성공 팔이'라는 호칭이 생겼습니다. 

가난했던 그 청년은 어떻게 자수성가한 성공 멘토가 된 걸까요? 그것도 6개월 만에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이미 먼저 자리를 잡은 성공 팔이들의 강의를 수강해 내용을 베낍니다. 그리고 자금을 끌어 모은 뒤, 다음과 같은 방법을 씁니다. 
 
1. 고급 아파트 단기 임대, 또는 에어비앤비 일주일 정도를 잡습니다.
2. 외제차를 단기로 빌립니다.
3. 영상을 30~40편쯤 찍어둡니다. 와인 마시는 척, 한강 보며 독서하는 척 뭐든 좋습니다.
4. 이 자료 영상을 편집하고 베낀 내용을 넣어서 "성공 멘토의 꿀팁" 영상을 만듭니다.
5. 만든 영상으로 인스타그램 유료광고를 게시하고, 무료 강의를 연다고 홍보합니다.
6. 무료강의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쥐고 뭔가 강연하는 모습을 찍습니다.
7. 이 강연 영상으로 다시 유료광고를 게시하고, 강의를 팔기 시작합니다.

마이크를 쥐고 강의하는 정도 단계쯤 되면 무의식적으로 '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는 사람이라면 뭔가 얻을 게 있겠지'라는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 서서히 들어옵니다. 이 방법, 이미 일본에서는 2000년대 초에 유행했던 것으로 요자와 츠바사라는 인물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흙수저에서 24개월 만에 100억 엔을 번 남자"라고 주장하며 집 자랑, 사무실 자랑, 차 자랑을 하지요. 돈 버는 강의를 하는데 수강료는 30만 엔입니다. 친구를 데려오면 5만 엔을 돌려주고요. 당연히 차는 리스, 사무실도 리스, 집은 월세였습니다. 전청조가 떠오르지요? 하지만 그녀와 달리 요자와 츠바사는 실체가 밝혀졌음에도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은 채 2024년 현재 두바이에서 초호화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성공 팔이들은 어떨까요? 지난 3~4년간 사람들의 불안과 간절함, 욕망을 자극시켜 막대한 돈을 빨아들인 그들에게 처음으로 위기가 닥쳤습니다. 대중이 드디어 '의구심'을 공론화하기 시작했거든요. 당연한 결과이지요. 수년간 그들이 시킨 대로 해도 부자가 되기는커녕 더 많은 강의료를 가져다 바치느라, 생활은 점점 더 빠듯해지고, 정신은 피폐해진 피해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니까요. 거액을 벌었다며 자칭 성공한 사업가라는 성공 팔이들에게, 대중은 이제 '홈택스'로 당시의 소득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출판 시장과 강의 시장을 휩쓸며 신앙에 가까울 만큼 추앙받던 그들은 당황하기 시작했지요.

단 한 명도 제대로 인증을 하지 못한 채 누군가는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누군가는 입을 닫은 채 시간만 가기를 기다리며 잠수를 타고 있습니다. 이 태풍만 지나가기를 기도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한편에서는 이미 깨달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대역배우를 써서 똑같은 성공팔이를 하는 것까지도 계산한 사람이 있다더군요. 이미 크게 한탕한 돈은 있으니, 그들의 롤모델인 요자와 츠바사처럼 해외에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선택지도 있겠지요.

잠깐의 태풍만 지나면 다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성공팔이들과 달리, 피해자들은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는 한 내담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자가 되지 않을 때마다 내 노력이 부족해서라는 말을 믿었어요. 더더더 나를 몰아치고 얻은 건 번아웃. 그리고 서서히 맹신의 콩깍지가 벗겨졌지요. 제게 남은 것은 책 몇 권과 '나는 매일 성장하고 있다'라고 강박적으로 빼곡히 쓴 노트, 그리고 흘러버린 세월뿐이더군요"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의 약한 마음을 건드려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은 존재해 왔습니다. 아마 이 '홈텍스 대란'이 지나간 뒤에도, 여전히 새로운 수법으로 새로운 성공팔이가 돈을 벌겠지요. 저런 수법에 속는 사람이 멍청한 거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말하고 싶네요. 누구나 인생에서 코너에 몰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아무리 지혜로웠던 사람도 눈앞이 흐려지고 맙니다. 우리의 생에도 한 번쯤은 그런 순간이 찾아올지 모릅니다. 그 순간의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의 무지를 탓하기 보다, 가해자의 근절에 관심을 보태는 게 어떨까요?

인잇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청년 3만 명을 상담하며 세상을 비춰 보는 마음건강 활동가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