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의 한 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던 박 모 씨는 19일 상태가 안 좋아져 '빅5' 병원 중 한 곳인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가 입원 불가 통보를 받았습니다.
세브란스병원은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이 가득 차 오전부터 추가 접수가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암 투병 중인 한 남성은 이날 오전 응급실 앞에 도착하고도 10여 분간 병원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동행한 보호자는 "아버지가 어젯밤부터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급하게 왔는데, 예약이 되지 않아 지금 바로 응급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며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서울성모병원 본관 2층에서 휠체어를 타고 있던 김 모(55) 씨는 "다음 달 14일 무릎 수술을 받기로 돼 있었다"며 "7개월 전에 잡은 날짜인데, 오늘 수술 전 검사를 받고 왔더니 '파업이 길어질 수도 있으니 21일로 조정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더라"고 전했습니다.
월남전에 참전한 고엽제 환자인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고 대전성모병원을 찾은 보호자 김 모(67) 씨는 남편의 마스크를 벗겨 암으로 부은 볼을 보여주며 "계속 피고름이 나고 있는데,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몸이 망가져서 지금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분통이 터진다"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광주 전남대병원을 찾은 환자 박 모(65) 씨는 전대병원 측이 오늘(20일) 잡혀있는 수술을 취소했다고 합니다.
박 모(65) 씨는 "수술이 예정돼 있었는데, 갑자기 취소 통보를 받았다"며 "지난해 7월부터 예약해서 수술을 기다렸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에 나서면서 전국적으로 의료 현장의 혼란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필수의료의 핵심을 맡는 전공의들이 병원 현장을 떠나면서 암수술, 출산, 디스크수술 등 긴급한 수술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의료대란'이 현실화하는 모습입니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은 이날까지 전원 사직서를 내고, 오늘(20일)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가운데 세브란스병원은 응급의학과에서 일하던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회장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전공의 상당수가 진료 현장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세브란스병원은 이미 '전공의 총파업'을 가정한 채 내부에서 수술 스케줄 조정에 착수한 상태입니다.
세브란스병원뿐만 아니라 다른 병원들도 이미 다수의 전공의가 사직 의사를 표하고 있는 만큼, 스케줄 조정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20일 아침부터 전공의들이 단체행동을 예고해 진료과별로 중증도와 응급도를 고려해 최소한으로 진료, 수술 일정 등을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전공의들은 "기저질환으로 인한 가슴 통증으로 장시간 근무가 어려워 사직한다"는 등 개인적 사유를 이유로 서울부터 제주까지 전국적인 사직 행렬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상급종합병원 의사 인력의 30∼40%를 차지하는 전공의들은 교수의 수술과 진료를 보조하고, 입원 환자 상태를 점검하는 등 각 병원에서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이미 서울 시내 주요 병원에서 수술 스케줄이 조정됐다는 사례는 잇따르고 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16일 전공의 공백에 대비해 진료과별로 수술 스케줄 조정을 논의해달라고 공지했고,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의 부재로 수술을 절반 이상 감축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브란스병원 하루에 200여 건, 일주일에 1천6백여 건의 수술이 이뤄집니다.
이들 수술 일정이 '반토막' 난다는 얘기입니다.
마취과 전공의는 수술 중 마취과 교수의 마취 업무를 보조하면서 환자 상태를 살피는 등의 역할을 합니다.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도 전공의 집단사직이 현실화했을 때 혼란이 가중하지 않도록 수술과 입원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을지, 대체인력을 어떻게 배치할 지 등을 다각도로 논의 중입니다.
하루 200∼220건 수술하는 삼성서울병원은 이날 10%가량인 20건의 수술이 연기됐습니다.
이 병원은 오늘(20일)이면 약 70건의 수술이 미뤄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삼성서울병원은 이날 오전 현재 전체 전공의 525명 중 30∼40% 정도가 사직서를 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대부분 병원은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응급·위중한 수술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서울성모병원 역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과 전면 파업으로 인해 응급·중증도에 따라 수술과 입원 스케줄이 조정될 수 있다고 환자들에게 안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이 현실화하면서 "그대로 수술받을 수 있는 거냐"는 환자들의 문의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빅5 병원에서 오는 21일 수술 예정이었다는 한 암 환자는 환우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입원 안내하는 문자가 오지 않아 전화해보니 월요일(19일)은 돼야 확실히 알 수 있다며 일단 대기하라고 하더라"며 "입원해도 수술이 취소될 수 있다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서울대병원에서 제왕절개로 쌍둥이를 출산할 예정이었으나, 수술을 하루 앞두고 연기를 통보받았다는 환자의 사연도 전해졌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부모님의 목디스크 수술이 무기한 연기돼 당황스럽다는 보호자의 성토, 당장 분만을 앞두고 출산 시 무통 주사가 불가능하다는 통지를 받았다는 임신부 등의 사례도 있습니다.
복지부 산하 의료기관인 국립암센터마저 전공의 집단사직이 가시화하면서 수술 일정이 조정되는 모양새입니다.
난소암으로 국립암센터에 수술 일정을 잡았는데 무기한 연기됐다거나, 수술을 앞두고 입원했다가 급히 한 달여 밀리는 바람에 하루 만에 퇴원했다는 보호자들의 증언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국립암센터는 전날까지 공식적으로 수술이 미뤄진 사례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전공의들이 빠져나가면서 예정됐던 입원과 수술이 늦어질 뿐만 아니라, 이미 입원 중인 환자를 돌보는 데에도 어려움이 큰 상황입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채혈이나 요도관 삽입, 환자로부터 수술 전 동의서 서명 확인 등 전공의들이 맡았던 업무를 간호사에 맡기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일부 병원은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인력을 충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각 병원에서는 전공의 공백이 '장기화'하는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임상강사, 펠로 등으로 불리는 '전임의'들도 가세할 경우 감당하지 못할 상황으로 악화할 수도 있습니다.
전임의는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를 취득한 후 병원에 남아 세부 전공을 배우는 의사들입니다.
이와 같이 중증 환자들조차 적절한 진료와 응급 처치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자 환자와 가족들은 "환자를 방치 말아 달라"고 호소에 나섰습니다.
폐암 말기 환자인 한국폐암환우회 이건주 회장은 "삶의 막바지에서 환자들은 지금도 간절하게 치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며 "협상을 통해서 조정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등 6개 중증질환 환자단체도 전공의들의 사직 예고에 "중증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강대강으로 대치하고 있는 정부와 의사단체들은 즉각 이 사태를 멈추고 대화와 해결책을 강구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