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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선거제 결정'은 어떻게 이뤄졌나 [취재파일]

선거제도 개편, '플레이어'들에게 직접 듣는다 ④ - 김지호 민주당 당대표 정무부실장

이재명의 '선거제 결정'은 어떻게 이뤄졌나 [취재파일]
▲ 5·18 민주묘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지난 5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비례대표 선거제와 관련된 장고(長考)를 끝냈다. 광주 5.18 민주묘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준연동형 안에서 승리의 길을 찾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준 위성정당'이라는 이름의, 사실상의 위성정당 창당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위성정당 방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거듭 사과하면서도, "칼을 들 수 없게 규칙을 만들자고 했는데 상대방이 끝까지 거부해서 칼을 들고 나오면 냄비 뚜껑이라도 들어서 막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대표의 '준연동형·준위성정당 창당 선언'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대표가 지난해 11월 열성 지지자들이 많이 보는 유튜브에 출연해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병립형 회귀 검토를 시사한 이후, 민주당은 연동형과 병립형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이 대표는 왜 결국 '준연동형 유지' 결정을 내리게 되었을까?
 

"한동훈은 믿을 수 없는 파트너…병립형 선택시 진퇴양난 우려"


당내 선거제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달,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SBS에 "정치의 본질인 '케이크 나눠먹기 경쟁'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당제', '협치'를 명분으로 이뤄지는 선거제 논쟁이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정치권의 미묘한 권력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명분'이라는 포장지가 곧 생명인 현역 의원들은 이 투쟁 과정에 대해 솔직하고 자세하게 밝히기를 꺼리곤 했다. SBS는 이재명 대표 가까이에서 선거제 논의와 결정 과정을 지켜본 최측근이면서도, 현역 정치인의 문법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인물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이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일 때부터 함께 일했으며, 스스로를 '이재명의 정치적 동지'라고 말하는 김지호 당대표 정무조정부실장은 선거제 결정의 현실 정치적 논리에 대해 비교적 솔직하고 상세하게 털어놨다.
김지호 민주당 당대표실 정무조정부실장 인터뷰
▲ 김지호 민주당 당대표 정무부실장
 

Q. 이재명 대표는 언제 선거제 입장을 결심했나? 그간의 논의 과정이 궁금하다.
A. 사실 이 대표가 취임하자마자 저희 보좌 그룹 사이에서 선거제도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굉장히 장시간 동안 논의가 됐습니다. 하지만 선거제와 관련해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고민이 컸습니다. 당이 의석 수가 160석이 넘고, 권리 당원만 100만 명에 육박하기 때문에 사실 이해관계가 굉장히 복잡합니다. 국민의힘처럼 대통령이나 대표가 정한다고 해서 구성원들이 따라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토론, 협상, 설득 과정이 길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외곽의 원로들은 "연동형 비례제를 안 하면 천벌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도 하셨고, 불출마 선언까지 하는 의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사실 이전의 국민의힘 지도부인 주호영 전 원내대표나 김기현 전 대표, 그리고 지금의 윤재옥 원내대표는 국회 경험이 많고 협상의 파트너로서 어느 정도 신뢰가 가는데, 새로 출범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사실 신뢰하기가 좀 어려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협상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사실 저희로서는 선택에 제약이 생기게 됐습니다.

Q. 한동훈 위원장이 협상 파트너로서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이 고려됐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민주당이 병립형을 결정하더라도 믿고 논의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뜻인가?
A. 저희가 병립형과 함께 추가로 소수정당을 위한 의석을 별도로 마련하거나,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이중으로 후보를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이중등록제' 등 대안적인 제안을 여당에 했을 때 거의 협상이 안 됐다고 들었습니다. 한 위원장 체제가 출범하기 전에는 그런 얘기가 원내대표나 원내 수석 대표끼리 활발하게 토론됐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위원장 체제 하에서는 대화가 진척이 안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도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국민의힘 측에서는 우리가 병립형을 하면 제도를 바꿔야 되는데 (우리의 대안 제시에 반발해) 그것조차 반대할 수 있잖아요. 자기들은 위성정당 준비를 다 했고, 창당한다고 그러면 사실 저희는 시민사회단체나 연동형을 추구하는 의원들한테 비난은 비난대로 받고, 제도도 이루어지지 않고, 또 위성정당도 만들어야 되니까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는 거죠.

 

"선거제 논의 과정에 현역 의원들의 '대표 흔들기' 의도도 깔려있어"


선거제 논의 과정에서 현역 의원들은 주로 '다당제', '협치', '정권 심판' 등의 명분을 언급한다.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제도에 당위를 부여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레토릭이다. 하지만 실무적으로 이재명 대표를 보좌해 온 김 부실장은 이처럼 형이상학적인 명분 외에도, '현실 정치에서의 역학'이 선거제 결정에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역학은 여당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당 내에서도 작동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선거제 개편안 논의 국회 전원위원회 개최 (자료화면)

Q. 민주당 내에서 준연동형 유지를 주장하는 의원들이 100여 명 정도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그 층위는 다양해 보인다. 철학적으로 연동형에 대한 확신을 가진 의원이 있는가 하면, 대표 체제에 대한 반대나 공천권 분산을 염두에 둔 의원들도 있다는 시각이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A. 일단 저는 국회의원들, 특히나 지역구 의원들은 사실 자기 지역구에 관심이 있지 비례대표로 출마할 게 아니기 때문에 비례대표 제도에 대한 관심 정도가 좀 낮은 게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대, 연합, 약자와 동행, 연합 정치 등을 신념으로 생각하는 분은 소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원들은 굉장히 소신이 강하고, 의정 활동에 두각을 많이 나타내시고, 어떤 당에 있었어도 명분 있는 어떤 활동들을 많이 하실 분들이에요. 한마디로 능력 있으신 분들이 그런 부분 얘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의원들은 좀 당이 강력한 지도자 아래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는 공천 시스템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천 시스템이 비상대책위 체제에서 뭔가 좀 혼란스럽고, 새롭고 이럴 때 사실은 의원들의 힘이 많이 강해지고, 어떤 네트워크가 강화되는 측면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지도부를 공격을 해서 흔들어 놓기도 하고요. 만약에 비대위로 넘어가게 되면 사실 현역 공천 받기가 더 쉽거든요. 그런 부분이 많이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이 흔들린 부분이 있고, 그래서 아마 다시 당선되고 싶은 꿈, 바람 이런 게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대표 체제를 흔드는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Q. 일부는 '연합 정치'라는 명분 외에도 선거제 논의에서 정치적인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인가?
A. 만약에 정말 연동형 비례제를 뛰어넘어서 연합 정치를 생각한다면, 지역구 선거구제를 중대 선거구제로 바꿔야죠. 아니면 사실은 특정 지역에 저희가 당선되는 지역에 대해서 소수 정당에 할애해야 되는 게 맞지 않나요? 그런 것에 대한, 지역구에 대한 포기는 하나도 없이, 어떻게 보면 주인 없는 비례정당,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만 그렇게 격렬하게 싸운 것 자체가 기존 의원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고 공천에 대한 욕구가 있다 보니까 좀 과대하게 커진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비례 제도 자체가 그렇게 의원들한테 큰 관심이 있는 제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보이는 모습만 격렬했지 실제로 의총장이나 이런 데서 그렇게 격렬하진 않았습니다.

 

"'더불어시민당' 조정훈 탈당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민주당이 주도해야"


고차원적인 명분론보다는 현실 정치의 역학에 중점을 두고 선거제 논의와 결정 과정을 설명하는 김 부실장은 이후 비례 위성정당 창당과 공천 과정에서도 '현실적 책임'을 강조했다. 민주당의 크기에 맞는 권한을 가져야하고, 그에 다른 실질적 책임도 담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재명 대표의 지난 5일 광주 기자간담회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대표는 당시 "민주당이 범야권 민주개혁진보진영의 가장 큰 비중을 가진 맏형인 만큼 책임을 크게 질 수밖에 없고, 상응하는 권한도 당연히 가져야한다"고 말했다. 향후 연합 비례 정당 창당 과정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명확한 의지 표명이다.

5·18 묘지서 기자회견하는 이재명 대표 (사진=연합뉴스)

Q. 준연동형제 하에서 사실상의 위성정당인 비례 연합정당 창당 절차에 착수했다. 앞으로의 진행 과정에서 특별히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A. 준연동형을 추진하는 이유가 연합 정치, 약자와의 동행, 과한 대립을 막기 위해 완충 지대를 만들기 위함이지만, 자칫 악용될 수 있습니다. 지난번 사례의 경우 조정훈 의원이 더불어시민당 공천을 받고 시대전환으로 다시 돌아간 후에 지금 국민의힘에서 우리와 엄청 분쟁을 겪고 있잖아요. 사실 어떤 성향도 맞지 않고 시대전환 같은 경우는 정당 구성원 수가 불과 수십 명에 불과한데 어떤 기준으로 그 사람을 선출했는지 누가 우리 비례대표로 추천했는지 지금 오리무중이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는 상황입니다. 이 부분이 굉장히 저희로서는 뼈아프다고 보고 있습니다.

Q. 이재명 대표도 '민주당이 민주세력의 맏형이니까 그에 따른 책임을 질 거고 그러려면 그에 맞는 권한을 행사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권한 행사'와 '책임 지기'는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 거라고 보나?
A. 소비자들이 가격이 좀 높아도 어떤 브랜드 있는 제품을 소비하는 이유는 10년 20년 후에도 AS를 받거나, 상품에 대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 때문에 하는 거잖아요. 유권자들이 저희가 잘못을 많이 했어도 민주당을 찍는 이유도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있고, 역사와 전통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우리가 뭘 잘못해도 책임을 묻고, 바로잡을 수 있다는 부분이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정말 연합비례정당에서 주도를 하지 않으면 정말 무책임하고 혼란스러운 사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와 주도권 다툼 우려엔 "공개적인 시스템 마련해야"


정치개혁과 연합정치 실현을 위한 시민회의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민주당의 주도권 행사에 대해 연합비례정당 파트너들은 벌써부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지난 7일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진영종 참여연대 공동대표, 조성우 비상시국회의 공동대표 등 시민사회 인사들이 꾸린 '정치개혁과 연합정치 실현을 위한 시민회의'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형 비례정당을 특정 정당이 주도하거나 특정 정당의 의석 독점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김 부실장은 "지분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선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는 듯했다.
 

Q. "민주당이 단독으로 너무 많은 비중을 가지고 가면 '연합 비례'가 아니다"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주도권을 무작정 쥘수만은 없지 않나?
A. 결국은 저희가 연동형 비례제를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한 거는 그런 소수 정당을 인정하고 연합정치를 하겠다는 의지잖아요. 그러면 사실 저희 거기서 지분 싸움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우리 당 소속 인사가 몇 명이 되면 어떻고 저쪽 당 인사가 몇 명이 되면 어떻습니까? 그 정신에 맞는 정말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사람을 선정한다면 큰 문제가 안 될 거라고 보고요. 어쨌든 공정성,상식을 지켜야 한다는 국민 정서가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잘 협의해서 추진될 수 있다고 봅니다.

Q. 주도권 다툼에는 결국 '연합비례정당' 에 어디까지 함께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송영길 전 대표와 조국 전 장관 등이 우후죽순 창당을 할 것 같은데, 이 문제는 어떻게 다뤄야 한다고 보는가?
A. 사실 저희가 혼자 기준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그런 어떤 연동형에 반한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다 터놓고 얘기를 하고, 그 과정에서 기준을 만들고 비중도 정해야겠죠. 그래서 처음부터 제한을 두기보다는 조금 어느 정도 열린 자세로 논의를 하면서 그 룰도 만들어야 된다고 봅니다. 그런 기준을 만들기 위해 저희 당에서 추진단을 만들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기준이 지난번 선거 때는 잘 밝혀지지가 않고 누가 하는지 모르게 밀실에서 많이 정해졌는데, 지금은 아예 추진단에서 띄웠고 구성원들이 다 있기 때문에,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제시를 하겠죠. 이번에는 어떤 시스템이 있고 그런 어떤 상식적인 면에서 공정하게 룰을 세워서 제시할 거라고 봅니다. 그것도 물론 이제 협의는 해야겠죠. 협상 과정을 거쳐야겠죠.

 

"이재명을 지지하는 정치적 동지들도 지켜보고 감시해야"


2024정치개혁공동행동-진보4당 선거제 개악 규탄 기자회견

이재명 대표 본인이 직접 고개 숙여 사과했듯이, 우리 정치권은 기형적인 형태의 위성정당을 막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또 한 번 총선을 치르게 됐다. 지난 총선, 국민들에게는 다당제와 연합정치를 도입하겠다며 통과시킨 '준연동형' 선거제도는 결과적으로는 기존의 '병립형'선거제도와 비슷한 결과를 낳았다. '다당제'가 꼭 정치 갈등을 완화한다는 보장도 없고, 어떤 선거 제도가 무조건 우월하다는 증거도 없다. 그러나 제도를 만들 때 국민에게 내건 명분과 제도 운영의 실질이 달라진 것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이 정치적 '양두구육'의 책임을 아무도 지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히 우리 정치의 후진적인 단면이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이 제도가 통과돼 실행될 때 이재명은 민주당의 대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결정의 책임은 분명 이재명 대표에게 있다. 그의 최측근인 김 부실장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는데, 이 대표의 '정치적 동지'를 자임하며 이번 총선 출사표를 던진 그 또한 앞으로의 책임을 일정부분 나누어 지고 있다.
 

"대표로서는 이 부분이 굉장히 어떤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고 해결을 해야 되는데 어떤 지도자로서 결단을 하신 거죠. 그래서 '내가 책임지고 하겠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이 제도가 실패하면 이재명 대표가 다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는 저희 정치적 동지들도 그래서 이 제도가 잘 운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계속 지켜보고 감시하고 의견을 낼 생각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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