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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프고 외로워도 진짜 어른답게 《명상록》 [북적북적]

고달프고 외로워도 진짜 어른답게 《명상록》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409: 고달프고 외로워도 진짜 어른답게 《명상록》
 
선한 일을 하고 욕을 먹는 것이 제왕의 일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명상록]은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많아도 한 번도 못 들어본 사람은 없는 고전에 속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른바 로마의 오현제(로마의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다섯 황제) 중 마지막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오는 그 폭군 황제 코모두스('글래디에이터' 러셀 크로를 질투하는 호아킨 피닉스)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후대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로마에 끼친 해는 코모두스 같은 아들이 황제가 되게 한 것밖에 없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대체로 훌륭한 가장, 좋은 남편이었고, 성군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보냈고 자식교육에 대차게 실패한 데가 있는 아버지였습니다. 인생이 꼭 자기 마음대로 풀렸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네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 "오늘도 나는 주제넘게 이 일 저 일 간섭하고 다니는 사람, 배은망덕한 사람, 제 멋대로 교만하게 행하는 사람, 술수를 써서 남을 속이는 사람, 시기심이 많은 사람, 사교성이 없고 무뚝뚝한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하지만 그들이 그런 짓들을 저지르는 것은 단지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선의 본성은 아름다운 데 있고 악의 본성은 추한 데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이 비록 잘못을 저지르고 있을지라도 그들의 본성은 나와 동일해서 그들이 나의 동족이자 형제들이라는 것도 안다. 그들이 나의 동족인 것은 그들이 나의 씨족에 속하여 나와 혈연관계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 안에 이성과 신성의 파편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내게 해악을 끼칠 수 없고 나를 부끄러운 짓으로 끌어들일 수 없으며, 나도 내 동족인 그들에게 화를 내거나 미워할 수 없다. 우리는 두 발이나 두 손이나 두 눈꺼풀이나 상악과 하악처럼 서로 돕고 협력하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터에서도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일기를 쭉 썼습니다. 명상록은 바로 그 일기입니다. [명상록]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나 설명은 다른 곳에서도 많이 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그 유명한 스토아 학파에 속하는 사상을 담고 있다고 분류됩니다. 하지만 정확히는, (스토아 학파를 비롯해) 자신이 황자로서 당대 최고의 스승들에게 받았던 다양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그 자신 스스로 따라 살고 싶은 삶의 원리원칙을 늘 골몰했던 '생활인의 기록'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행하는 일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데 너의 남은 생애를 허비하지 말라.
 
마치 수천 년을 살 것처럼 살아가지 말라. 와야 할 것이 이미 너를 향해 오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선한 자가 되라.
 
알렉산드로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를 어떻게 디오게네스, 헤라클레이토스, 소크라테스에 비할 수 있단 말인가. 후자에 속한 사람들은 만물의 실재를 보았고, 그 원인과 재료를 보았으며, 그들을 지배하는 이성을 따라 살다간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전자에 속한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염려하고 많은 것들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 사람들이었다.

[북적북적]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철학사에서 점하는 위치를 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명상록을 읽다 보면, 절로 드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마음이 고달플 때가 참 많은 상사였구나.

철학자가 되고 싶은 황제였습니다. 자신에게 고등교육을 해준 사상가들, 학자들, 자신이 동경하는 이들처럼 사상과 생활이 호응해서 완결성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삶을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황제'입니다. 온갖 행정을 처리해야 하고, 전쟁터에 나가야 하고, 자기를 향해 끊임없이 들어오는 민원도 처리를 해야 합니다. 명상록에 드러나는 성격만 봐도, 단정하게 앉아서 책읽고 산책하고 사색하고 우주를 논하며 살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일기를 쓰고 있던 순간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만 볼 수 있지만, 그는 사실 전쟁터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잡아올 것을 명령하고 그 스스로 수행했던 사람입니다. 그 마음에 일어났던 천만 갈래의 갈등들이 이 단정해 보이는 구절구절들 사이에 치열하게 깃들어 있습니다.

명상록에는 유독 '너 자신부터 잘해라. 남들은 마음에 안 들어도 받아들여라.'는 얘기로 귀결되는 다짐이 많이 나옵니다. 온갖 민원, 서로 엇갈리는 이해 관계들을 중재하고 경청해 주고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하는 국가의 CEO. 솔직히 얼마나 마음에 안 드는 일이 많았을까요. 회사에서 부하 직원이 실수를 할 때는 시말서를 쓰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일로 그칠 수도 있지만, 전쟁터에서 부하가 실수를 하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럴 때마다 돌아와서 병영에서 일기를 쓴 겁니다.

받아들이자. 나나 잘하자. 나의 진정한 자아가 이끄는 더 선하고, 더 포용하는 삶으로 나아가자.

일종의 메타인지가 뛰어난, 늘 골머리를 앓는 상사이자 아버지였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 시각에서는 당연히 (아무리 현대어로 번역이 잘 되어 있어도) 약간은 고풍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고대 황제의 일기가 문득 마음 깊이 젖어드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황제 노릇을 하려 들지 말고, 황제 노릇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렇게 되기가 쉽다. 늘 소박하고, 선하며, 순수하고, 진지하며, 가식이 없고, 정의의 친구가 되며, 신을 경외하고, 자비로우며, 사랑이 많고,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행할 때에는 과감한 사람이 되라. 언제까지나 철학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그런 이상적인 사람으로 남기 위해 애쓰라.
 
현재의 이 시간을 네 자신에게 주어지는 선물로 만들어라.
 
일을 하되, 가축처럼 비참하게 일하지도 말고, 동정을 얻거나 감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일하지도 말라. 오직 공동체적 이성을 따라 행하거나 행하지 않기만을 바라라.
 
날이 밝았는데도 잠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을 때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그 일을 위해 태어났고, 그 일을 위해 세상에 왔는데, 그런데도 여전히 불평하고 못마땅해 하는 것인가. 나는 침상에서 이불을 덮어쓰고서 따뜻한 온기를 즐기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지 않느냐."

"하지만 침상에서 이렇게 빈둥거리는 것이 좋은데 어쩌란 말인가."

은근히 유머감각이 상당한 느낌마저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을 때, 게으름 부리고 싶을 때, 잘 한 걸 잘 했다고 세상에 알려서 솔직히 칭찬 좀 받고 싶을 때… 자기 자신과 자문자답하며 마음을 다스리려고 애쓴 부분들이 나옵니다. ([명상록]에서 모든 '너'는 나 자신과 대화하고 있는 '나'입니다.)

'그래… 너 일어나기 싫지? 일 나가기 싫지? 그렇지만 너 누워 있으려고 태어난 거 아니잖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자기 스스로와의 문답이 이 곳 저 곳에서 나타납니다. (당대 철학자들이 토론과 논쟁을 통해 최선의 결론을 도출하는 식으로 스스로의 생각을 벼렸던 영향도 받았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출근하기 힘들었던 내 마음, 그냥 로마황제도 아니고 무려 오현제 중에 하나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그 마음을 알아줍니다.
 
거미는 자기가 쳐둔 거미줄을 이용해서 파리를 잡았을 때 자랑스러워하고, 어떤 사람은 산토끼를, 어떤 사람은 청어를, 어떤 사람은 멧돼지를, 어떤 사람은 곰을, 어떤 사람은 사르테마스 쪽 사람들을 잡았을 때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을 잘 살펴보면, 그들은 모두 강도들이 아니겠는가.

명상록은 스스로 집어들어서 읽으려고 할 때는 좀 손이 안 가는 책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북적북적]에서 들어보시고, '아 우리 부장님이 이랬으면…', 또는, '내가 올해는 이렇게 좋은 선배, 상사, 부모가 되고 싶은데 이 사람 하는 이야기 좀 더 들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 연휴에 찬찬히 읽어볼 책으로 혹 선택해 주신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로마 황제가 남긴 고전'이기에 앞서서, 어른이 되어야 했을 때 진짜 어른이 된, 앞서 간 한 사람이 남긴 치열한 일기, 마음의 기록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경멸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다. 내가 할 일은 경멸받을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면서도, 자신에 관하여 타인의 판단보다 자기의 판단을 더 낮게 평가하는 것을 보고서는 의아해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쨌든 신이나 현자가 어떤 사람에게 와서, 마음에 어떤 생각이나 계획을 떠올릴 때마다 그 즉시 그것을 큰 소리로 공표해야 한다고 명령한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그런 삶을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평가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평가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쓴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첫째, 아무런 목표도 없고 목적도 없는 행동을 하지 말라. 둘째, 공동체의 유익을 너의 행동의 유일한 목표로 삼아라.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 늘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북적북적]이 문득 돌아보았을 때 늘 그 자리에 있는 친구 같다고 생각해 주신다면 그보다 더 기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고요한 겨울밤에도 [북적북적] 함께 해주세요. 고맙습니다.

*현대지성 출판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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