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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크라 출신 미스 재팬…주최 측은 무얼 노렸나

'G7 국가' 일본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이유

미스일본 1위한 귀화인
▲ 미스 재팬으로 선발된 시노 카롤리나

지난 22일 열린 일본 미인 대회에서 우크라이나 출신 여성이 우승하면서 일본 내에서 '일본인'의 정의와 미의 기준에 대한 논란이 일었습니다. 미스 재팬으로 선발된 26세 시노 카롤리나 씨는 우크라이나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엄마가 일본인 남성과 재혼하면서 5살 때부터 일본에서 생활해왔고, 2022년에는 일본 국적도 취득했습니다. 많은 매체가 '일본인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이라고 표현했는데, 유전적으로는 일본인의 특징을 갖고 있지 않은 셈입니다.

미스일본 1위한 귀화인

이 소식이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서 큰 관심을 끌면서, 어제(25일) 저녁 외신을 통해 미스 재팬 선발 대회 당시 영상이 들어왔습니다. 화면을 보면 시노 카롤리나 씨는 기모노를 입고 다른 후보들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그래도 얼굴은 분명 서양인이었죠. 시노 씨는 이런 지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우승 소감을 통해 분명히 밝혔습니다. "일본의 정신은 육체가 아닌 영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진정한 일본의 정신을 계승해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주최 측이 시노 씨를 선발한 건 이런 의견에 공감했기 때문이겠죠.
 

▲ 미스 재팬 소감 밝히는 시노 카롤리나

영상제공 :  Miss Japan Association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주최 측이 화제성을 노렸다"라는 비판과 함께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저 역시 이번 선발에 사회적 메시지가 담겼다는 데 동의합니다. 최근 일본 여성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일본 정부의 정책 방향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유엔 17개 지속가능발전 목표
▲ 유엔 17개 지속가능발전 목표

일본 기자들은 일본 정부가 지난 2017년 이후 DE & I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 다양성, 평등, 포용성)에 대한 인식을 끌어올리기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유엔의 17개 '지속가능발전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가 달성하려는 과제를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면서 민간 기업은 물론 사회 전체가 이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이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일본 아사히신문 본사 사옥엔 SDGs 관련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습니다. 특히 아사히신문이 도입한 매우 선진적인 성평등 조치들(그래픽 참고)은 내부 구성원의 요구도 있었지만 정부의 방침과 독자 여론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후쿠시마 노리아키 아사히신문의 젠더 프로젝트 담당 임원을 비롯한 간담회 참석자들은 설명했습니다.

지난 19일에 열린 한국여성기자협회·일본 아사히신문 주관 '한일 미디어 성평등 토론회'
▲ 한국여성기자협회·일본 아사히신문 주관 <한일 미디어 성평등 토론회> / 2024년 1월 19일

김경희 취재파일
▲ 젠더 평등 선언으로부터 1년 후 아사히신문사의 현재 (2023년 5월)

일본이 SDGs를 강조하고, DE & I 가치를 구현하려 하는 것은 G7 국가로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려는 노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소멸, 경제활동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일본 정부는 여성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지난 2015년 "여성활동촉진법"을 제정해 여성의 고위직 진출과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한편, 우수한 해외 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각종 규제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주택 거래에 있어 보증보험이 아닌 보증인이 필요한 일본 사회에서 이민자들은 불편과 소외감을 느낄 수 있고, 자연히 인구 유입이 필요한 여러 국가들 사이에서 이민 후보지로서 매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출신 미스 재팬 선발은 일본 사회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일본의 문화와 규범이 몸에 밴 서양 여성이 일본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일본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걸, 주최 측이 간파했다고 봅니다.

일본 내각 (사진=일본 정부 홈페이지)
▲ 일본 내각

흔히 일본 사회에서는 성별 역할 분담이 뚜렷하고, 성평등에 대한 인식은 우리나라보다도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일본 내각 관료 24명 중 여성은 5명으로, 전체의 20.8%를 차지하고 있고, 의회의 여성 의원 비율도 9.9%에 불과합니다. 정부나 의회 구성에서 여성 비율이 40~50% 수준인 유럽 국가에 비하면 일본은 다양성, 성평등 측면에선 아직 멀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요 매체의 기자가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밝히고 관련 기사를 쓰고 있을 정도로 일본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이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출신 미스 재팬의 사례는 국제 사회, 특히 대중의 인식을 바꿔 놓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물론 일본 내부에서도 SDGs, DE & I 관련 정책이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래도 구성원에게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분명히, 지속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저출생 위기와 이민 확대 등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지금, 다양성과 평등, 포용성의 가치를 배제한 논의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진=미스 재팬 공식 홈페이지, 일본 정부 공식 홈페이지, 유튜브 / 영상=로이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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