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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그들이 왜 화났냐고요? 스니커즈 바를 예로 들어 봅시다.

[뉴욕타임스 칼럼] Why Are Voters So Upset? Consider the Snickers Bar, By Paul Donovan

스프 NYT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폴 도노번은 UBS 글로벌 자산관리 부문 수석 경제학자다.
 

미국은 최근 현대사에서 가장 큰 폭의 소비자 인플레이션 하락을 겪었다. 지난 2022년 6월 소비자 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9.1% 올랐다. 2023년 12월이 되면 물가 상승 폭은 3.4%로 낮아진다. 그러나 여전히 진행되는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유권자들은 가장 걱정스러운 점, 신경 쓰는 요인으로 인플레이션을 꼽는다.

그런데 분명 물가 상승률이 큰 폭으로 내린 것도 사실인데, 왜 유권자들은 이를 느끼지 못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유권자도 사람이고, 사람은 다른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에 관해서도 합리적으로 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데 스니커즈 바를 떠올려 보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스니커즈 바는 미국에서만 1초에 12개 꼴로 팔린다. 이 정도면 소비자가 구매하는 품목 가운데 스니커즈 바는 아주 중요한 위치에 놓을 만하다. 소비자 물가를 측정할 때도 스니커즈 바는 당연히 주요 품목에 오른다. 그러나 스니커즈 바를 아무리 많이, 자주, 즐겨 사더라도 가계 지출에서 스니커즈 바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개 작은 편이다. 물론 그 비중이 작지 않은 집도 있겠지만, 보통 그렇다는 말이다.

대부분 가정에선 스니커즈 바보다 TV 같은 가전제품에 훨씬 더 많은 돈을 쓴다. 1,500달러는 소비자가 고화질 55인치 텔레비전을 살 수 있는 돈이며, 1년 동안 매일 하나씩 스니커즈 바를 살 수 있는 돈이기도 하다. 소비자 물가를 산정할 때는 소비자가 1년에 해당 품목에 얼마를 쓰는지 계산해 품목 별로 가중치를 부여한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을 계산할 때 TV 가격이 스니커즈 바 가격보다 더 중요한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우리는 스니커즈 바를 훨씬 더 자주 산다. 매일 하나씩 사 먹는 사람도 있을 거다. 자연히 매일 같이 자주 사 먹는 스니커즈 바 가격은 모를 수가 없다. 반면에 지난해 TV를 얼마 주고 샀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소비자들은 원래 자주 사는 물건이나 서비스의 가격을 더 잘 기억하기 마련이다. 장바구니 물가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도, 어디 주유소가 기름값이 싼지 줄줄이 꿰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자주 사는 물건과 가끔 사는 물건의 물가 상승률이 서로 다른 것도 소비자들이 실제 인플레이션보다 물가가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다. 가구나 가전제품처럼 단가가 비싼 품목들의 가격은 사실 지난 1년 사이 꾸준히 내렸으며, 지금도 내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가전제품이나 가구 등 한 번 사면 적어도 몇 년을 쓰는 물건에 대한 수요가 잠깐 늘었다가 다시 줄어들자, 제조 업체들은 예전처럼 높은 가격으로는 물건을 팔 수 없었다. 자연히 가격이 내렸고, 물가 상승률도 덩달아 낮아졌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안타깝게도 식료품값은 여전히 오르고 있다. 데이터를 들여다볼 것도 없이 슈퍼마켓 계산대에 가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보통 장 보는 데 쓰는 돈은 가계 지출의 10%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장바구니 물가를 곧 전체 물가의 바로미터로 삼곤 한다. 그 결과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인플레이션은 실제 인플레이션보다 훨씬 더 높게 나타난다.

이는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지난 2002년 이탈리아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보면, 소비자들은 연간 물가 상승률이 18%쯤 될 거라고 답했다. 실제 인플레이션은 2%에 불과했다. 도대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는지 조사해 봤더니, (이탈리아 사람들이 매일 마시는) 에스프레소 가격이 오른 탓이었다.

우리가 더 자주 사는 물건값에 경도돼 물가를 체감한다는 사실은 다음 두 가지 현상과 맞물려 더욱 복잡해진다. 인간은 유전적으로 무언가 결정하기에 앞서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에 더 가중치를 두는 쪽으로 진화했다. 이른바 손실 회피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전략이었다. 음식을 향해 달려갈 때보다 호랑이를 피해 도망칠 때 우리는 더 빨리 뛴다.

인플레이션에 관한 한 사람들은 가격이 내리는 것보다 오르는 데 신경을 더 많이 쓴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의 구매력이 줄어드는데, 사람들은 이를 손실로 여겨 회피하고 싶어 한다. 좀 극단적인 사례지만, 급격한 물가 인상에 놀랐던 흉흉한 기억은 대대로 전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1920년대와 1940년대에 이른바 초인플레이션을 겪을 때 얘기를 온 사회가 집단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독일 사회는 인플레이션에 특히 민감하다. 독일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재정 적자를 너무 늘리지 않는 정책이 인기를 끄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게다가 생필품이나 중요한 소비 품목이 아니더라도 어떤 물건의 가격이 급등한 경우 그 기억은 오랫동안 소비자의 뇌리에 박혀 있기 마련이다. 한 개에 1달러였던 스니커즈 바가 1.2달러로 20% 오르면, 설사 실제 더 쓰게 되는 돈이 많지 않아도 수많은 사람이 분노할 것이다.

소비자들은 또 가격 수준에 주목하곤 한다. 인플레이션이 둔화했다는 건 물가가 오르는 속도가 느려졌다는 말이지, 물건값이 옛날 좋았던 시절처럼 싸졌다는 말은 아니다. 오랫동안 물가가 많이 오르지 않고 사실상 정체돼 있던 저물가 시대를 산 경험을 기억하는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기억하는 좋은 시절을 그리워한다.

몇 달 연속 소비자 물가가 4% 이상 높게 유지됐던 건 1990년대 초반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어떤 물건값이 10년 동안 사실상 1달러였다가 갑자기 1.2달러가 되면, 물건값이 더 오르지 않고 1.2달러에 머물러 있어도 소비자들은 화를 낸다. 여전히 이 물건은 1달러여야 했다며, 예전에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게 당연하다.

소비자들의 이런 사고방식에 기업이 반응해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다. 즉 기업들은 가격을 올리지 않고 유지하는 대신 물건을 더 작게 만드는 거다. 같은 값을 치르고 살 수 있는 물건,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줄어드는 건 소비자로서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적어도 가격이 오르는 것보다는 화를 덜 돋운다. (여기서 소비자 물가지수는 슈링크플레이션에 속지 않는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같은 값이라도 물건의 크기를 줄여 팔면, 인플레이션 데이터에는 (단가를 올려 받은 셈이므로) 가격이 오른 것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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