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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버스터] "북한도 한국도 못 놓쳐"…푸틴의 양다리 전략, 이유는?

안녕하세요. 외교 안보 뉴스를 정밀타격하듯 풀어드리는 벙커버스터입니다. 저는 SBS 정혜경입니다. 이번 편은 삼엄한 경비와 철통 같은 보안으로 정동의 작은 크렘린이라고까지 불리는 주한 러시아 대사관에서 시작합니다.

매우 까다로운 보안 규정을 적용해 지은 이 건물은 CCTV와 도청 감지 장치는 물론, 직원들이 머무를 수 있는 집과 병원, 학교까지 갖추고 있어 사실상 건물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든 '요새'로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이번 벙커버스터는 복잡하고 또 미묘한 2024년의 한반도와 러시아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뤄보려 합니다. 마치 빨간불이 켜진 것 같은 한러 관계와 이와 반대로 갈수록 밀착을 가속화하고 있는 북한과 러시아.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신임 러시아 대사의 단독 인터뷰를 중심으로 심층 분석해드리겠습니다.

푸틴 답방 임박했나…꽃다발 받은 최선희


'신냉전'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미국과 러시아를 두 축으로 하는 극동아시아의 블록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가장 큰 관심사는 아무래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북한 답방 여부입니다. 2박 3일간의 이번 러시아 방문에서 북한 최선희 외무상의 미션이 바로 푸틴 대통령의 방북 일정을 매듭짓는 것이란 추측이 무성합니다. 사실 푸틴 대통령의 방북은 이제 무르익을 대로 익었다고 봐야 합니다. 이미 두 차례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초청에 지난해 9월에도 한 번 수락을 한 데다,

[조선중앙TV(지난해 9월 14일) : 푸틴 대통령은 초청을 쾌히 수락하면서 러·북 친선의 역사와 전통을 변함없이 이어갈 의지를 다시금 표명했습니다. ]

이번엔 외무상이 러시아를 방문하면서까지 초청을 거듭한 상황이라 외교 프로토콜을 따져봐도 거절하긴 영 쉽지 않은 상황이죠.

[ 최선희 / 북한 외무상(1월 17일) : 푸틴 대통령 동지가 편리한 시기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실 것을 초청하셨습니다. ]

특히 한반도 관계 단절에 본격적으로 나선 북한으로선, 푸틴의 방북으로 완성되는 러시아와의 연대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방북의 구체적인 일정엔 5선에 도전하는 푸틴 대통령의 올 3월 러시아 대선이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 두진호 / 한국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 :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내치에 좀 더 집중을 해야 하는 상황이고 선거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평양을 방문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

24년 만에 푸틴의 북한 방문이 성사되면 우리를 포함한 극동 아시아엔 무시 못 할 상징적 사건이 됩니다. 양국 간 경제, 정치, 안보 등 전역에서의 매우 긴밀한 교류와 협력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역사적인 북러의 밀착 국면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죠, 바로 무기 거래 의혹입니다.

한글 써진 무기 떡하니…"국제규범 어긴 적 없다"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때 쓰였던 미사일, 그 잔해에서 눈길을 끌 무언가가 발견됩니다. 미사일 몸통에 선명하게 새겨진 한글인데요. 김정은이 직접 순시한 공장에서 제작되던 KN 23과 유사한 형태의 무기가 우크라이나서도 발견되고 러시아군과 연계된 텔레그램 채널에선 "북한 동지들이 장거리 다연장로켓을 제공했다"는 설명과 함께 한 병사가 "우리의 친구들이 새로운 탄약을 제공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의혹이 점차 짙어지는 상황에서 미국은 러시아가 북한제 미사일을 사용한 증거를 찾았다며 제재에 나섰습니다. 러시아의 전쟁 수행을 지원한 제3국 인사와 기업도 제재에 포함됐는데, 여기엔 나토 동맹인 튀르키예는 물론, 사상 최초로 한국인 1명도 포함됐죠.

[ 존 커비 / 미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1월 4일) : 북한은 미사일 지원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이런 것들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전투기, 지대공 미사일, 장갑차, 탄도 미사일 생산 장비나 물자 및 기타 첨단 기술을 포함한 군사적 지원입니다. ]

우리 국정원과 국방부도 미국의 주장이 신빙성이 높다고 평가하고 있는데, 당사자인 러시아와 북한은 극구 부인하고 있습니다.

[ 바실리 네벤즈야 / 주유엔 러시아대사(1월 10일) : 미국은 사전에 확인하지도 않고 잘못된 정보를 의도적으로 퍼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그런데, 최근 크렘린궁이 입장이 미묘하게 바뀌었습니다. 바로 현지시간 9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이 러시아가 북 미사일을 사용했단 미국 발표에 대한 러시아 입장을 묻는 질문에 논평 없이 넘어가겠다고 발표한 건데요. 늘 부인만 하던 러시아가 혹시나 에둘러 인정하려는 신호를 보낸 것은 아닐까, 러시아 외무부 내에서도 '아시아통'으로 알려진 지노비예프 신임 주한 러시아 대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 지노비예프 / 주한 러시아대사 : 우리가 확인하지도 않은 (무기 거래에 관한) 의혹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미국 쪽에서 주장하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합니다. 저는 그런 주장과 비난이 완전히 근거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지노비예프 대사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북한이 무기를 대가로 모종의 거래를 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8번이나 부인했는데요.

[ 지노비예프 / 주한 러시아대사 : 제 생각엔 (크렘린 노코멘트 발언의 이유는) 이미 아주 많이 대답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오늘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코멘트하지 않을 지점을 계속 질문하실 것 같은데, 저 역시 거듭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 지칩니다. 하지만 다시, 러시아는 국제 규범을 준수하고 있고 문제제기는 적절한 방식을 통해 취해져야 한다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군요. ]

결국 여덟 번이나 반복해 말한 러시아의 입장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현재 나오는 의혹들은 모두 근거가 부실하다, 문제제기를 하려면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에서 따져야 한다, 더 이상 입 아프니 같은 말을 반복하긴 어렵다, 라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 등 8개국이 규탄 성명을 냈을 때, 헝가리 등 친러 국가들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성명 동참을 거부했었죠. 하지만 최근 최선희 외무상 방러 수행원이 들고 있던 서류철에서 '우주 기술'이라는 단어가 포착되면서 양국 간 정찰 위성 등 군사 협력에 대한 의심은 더 커지는 상황입니다.

[ 두진호 / 한국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 : 국제기구에 올라가더라도 개별 국가 간에 기관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고 상당한 진통과 논쟁이 수반될 것이기 때문에 지연시키는 과정 안에서 전략 환경은 변화될 것이거든요. 최근에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압승했는데 이런 전략 환경들이 러시아에 유리하게 작용할수록 국제기구를 통해 어떤 문제 해결이 되는 속도는 더더욱 늦어질 것이고. ]

불편한 한-러관계…14만 원에 철수한 현대차


러시아와 북한의 무기 거래 의혹이 갈수록 짙어지는 상황에서 지금의 한러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4100억 원짜리 공장을 단 14만 원에 파는 거래,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부품 조달 어려움으로 조업을 중단한 현대차가 단돈 1만 루블에 러시아 업체에 공장을 넘긴 건데요.

2년 내에 되살 수 있는 조건이 달리긴 했지만 우리 기업이 이런 막대한 손실을 감당하게 된 이유는 역시 전쟁의 리스크 때문입니다. 우리 정부도 군사목적 전용 가능성이 높은 품목을 러시아 수출 제한 대상에 추가하는 등 미국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자, 러시아는 "한국 경제와 산업에 피해를 줄 것이다"라는 이례적이고 과격한 보복 대응을 예고하기도 했죠. 하지만 속내는 조금 다릅니다.

[ 지노비예프 / 주한 러시아대사 : 러시아는 한국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떠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국 기업들은 다른 나라보다 러시아에서 환영을 받을 거라 생각합니다. 서방 기업들이 떠남으로 인해 러시아엔 틈새 시장이 많이 열려 있습니다. ]

결국 전쟁 중에는 북한과, 하지만 그 이후의 상황에선 한국도 중요한 경제적 협력 동반자로서 놓치고 싶지 않은 건데 미국 주도의 전방위적인 제재 하에서 전쟁 이후 협력 가능한 상대 국가가 중국 하나만 남는 상황을 러시아로서도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푸틴 "친애하는 대사님"…비우호국 중 우호국이란?


활짝 웃으며 최선희 외무상을 맞이한 푸틴 대통령, 하지만 그에 앞서 한국에 대해서도 조금 특별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12월 러시아로 부임한 이도훈 대사가 푸틴 앞에 신임장을 받으러 선 그 순간,

[ 푸틴 / 러시아 대통령 : 존경하는 대사님, 러시아는 이(파트너 관계 회복)를 위한 준비가 돼 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

21명의 대사 중 유일하게 쓴 '존경하는 대사'라는 표현. 지노비예프 대사도 이런 푸틴 대통령의 생각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 지노비예프 / 주한 러시아대사 : 우리에게 사실상 비우호적인 국가나 민족들과는 한국이 명백히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쪽에서 부과하지 않은 제재 그리고 직항로 단절이 복원되길 기대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내일이라도 복원하면 좋겠습니다. ]

다만 본격적인 한러 관계 개선을 위해 러시아가 '넘지 않아야 할 선'이라고 분명히 강조하는 것도 있습니다.

[지노비예프 / 주한 러시아대사 : 가장 큰 걱정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공급해선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양국 관계는 큰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

자유주의와 권위주의 국가들 간의 대립으로 블록화가 이뤄지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실리만 추구할 환경이 아니다, 막 취임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진단한 지금의 국제 정세는 이렇습니다. 전쟁이 해소되지 않는 한 획기적인 관계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고 예측가능하도록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선택지라는 얘기인데, 러시아 역시 생각이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결국 한반도의 두 나라와 러시아 사이에 가장 큰 변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전쟁이 점차 소강상태로 접어들지, 아니면 또 다른 변수가 불거질진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 합니다.

( 취재: 정혜경 / 영상취재 : 박진호 김용우 / 편집 : 정용희 / 콘텐츠디자인 : 고결 / 제작 : 디지털뉴스제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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