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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② 한국 반도체 기업으로 손 뻗치는 '검은 카르텔'

'불법 인력 유출'을 위한 치밀한 작전

[취재파일] ② 한국 반도체 기업으로 손 뻗치는 '검은 카르텔'
SBS 시민사회부 취재팀은 기술코드명 '볼츠만·파스칼'로 불리는 삼성전자 D램 핵심 공정 설계와 기술도(이하 '공정 기술도') 유출 의혹을 비롯해 기술 노하우를 가진 엔지니어 인력이 유출되고 있는 실태와 그 배후 세력의 실체를 추적했습니다. 8뉴스에 이어 [취재파일]을 통해 총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해 보도해 드리겠습니다.

기술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청두가오전이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건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쉼 없이 변화하는 반도체의 공정자료를 가져오고, 이를 토대로 직접 반도체를 만들 엔지니어들이 필요했습니다.

'행동대장', '영어 이름' 치밀한 작전…"성공 보수는 수천만 원"

김지욱 취파용

회사의 인재 영입 과정은 조직적이고 은밀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청두가오전 인사팀은 공정 기술도를 보며 각 공정마다 필요한 엔지니어를 물색했습니다. 대상은 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굴지의 반도체 기업 직원들이었습니다. 물색을 마친 회사는 섣불리 직접 대상자에게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국 소재의 컨설팅 회사에 대상자들과 접촉해달라고 의뢰했습니다.

청두가오전은 인력이 필요할 때마다 '행동대장'으로 불리는 차장급 인사를 직접 한국에 보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행동대장이 컨설팅 회사에 영입 리스트를 넘기면, 컨설팅 업체가 직접 엔지니어들에게 접촉했습니다. 업체는 대상자들의 소속 회사가 눈치채지 못하게 영어 이름과 가명까지 썼습니다. 때로는 엔지니어들의 회사 앞에 직접 찾아가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접촉에 성공하면, 컨설팅 업체는 수천 만원의 성공 보수를 받았습니다.

"타겟은 50대 대기업 비임원"


접촉이 성공하면, 다음 단계가 진행됩니다. 청두가오전의 인사팀장이 직접 엔지니어와 면담하며 조건을 제시합니다. 회사가 제시하는 조건은 파격적입니다. 현재 연봉의 최대 6배, 자녀 교육비, 주택 렌트비, 억대 성과금 등을 약속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회사가 노린 주요 인력들은 대부분 대기업 소속 50대 비임원들이었습니다. 사내 주요 보직을 맡지 못했지만, 오랜 기술이 축적된 이들에겐 청두가오전이 제시하는 조건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심지어 회사는 이들에게 다른 동료 엔지니어를 함께 데려오면, 보수를 챙겨주겠다는 조건까지 내걸었습니다. 

이렇게 넘어간 엔지니어들은 모두 200여 명으로 경찰은 파악했습니다. 삼성전자 직원 110여 명과 SK하이닉스 등 기타 반도체 관련 회사들의 엔지니어 90여 명이 포함됐습니다. 경찰은 이들이 이직하면서 원래 회사의 기밀을 유출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이들 중 60여 명이 반도체 기술을 메모, 휴대전화 사진, 저장매체 등의 방식으로 유출한 정황을 포착하고 산업기술 유출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기술 유출을 둘러싼 '친분 카르텔'

김지욱 취파용 다시

반도체 공정만큼이나 치밀했던 이들의 영입 작전은 '최 씨 카르텔'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청두가오전은 3개 컨설팅 업체 대표들에게 헤드헌팅을 부탁했는데, 이 업체 대표는 각각 삼성디스플레이 상무 출신 B 씨, 전 정부기관 고위 관계자 C 씨, 전 지자체 최고위 관계자로 모두 최 씨와 평소 친하게 지내온 인물들이었습니다.

경찰은 이 회사들을 최 씨의 지시로 만들어진 '페이퍼컴퍼니'로 보고 있습니다. 청두가오전이 직접 직원을 구한다면 나중에 기술 유출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 거라는 판단에 컨설팅 회사를 이용했다고 보는 겁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에 '국외유료소개사업' 등록을 해야만 해외 기업으로 인력을 알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3개 컨설팅 회사는 모두 미등록 회사입니다. 수사 당국은 이들이 인력 유출 사실을 숨기고, 또 그에 따른 세금까지 면제 받기 위해 등록하지 않았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들도 청두가오전에서 근무…2년간 11억 원"


SBS 취재진은 이 컨설팅 업체 중 한 곳을 운영하는 전 국가기관 고위관계자 C 씨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A 씨는 현재 최 씨를 법률 대리하는 로펌에 고문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자신을 산업보호관리의 전문가라고 소개한 A 씨는 "최 씨와 고등학교 동기로, 청두가오전의 산업 기술 유출 위험에 대비해 조언해줬을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C 씨 회사가 자문한 업체는 청두가오전 한 곳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C 씨의 아들 역시 현재 최 씨의 청두가오전에서 근무 중입니다. 경찰은 A 씨가 청두가오전으로부터 2년여간 받은 돈이 모두 약 11억 원에 달한다며, 단순한 컨설팅 비용이 아닌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나머지 두 곳의 컨설팅 업체 역시 청두가오전으로부터 각각 4억 원의 돈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지욱 취파용

"나이 많은 분들은 해외로 가요"

최 씨는 인력 선발을 위해 국내 헤드헌팅 업체까지 동원했습니다. 현재 수사 선상에 오른 회사는 모두 두 곳입니다. 이 중 한 업체의 대표 D 씨는 한 유튜브 영상에서 자신을 삼성전자 반도체 메모리 사업부에서 10년 간 일한 반도체 전문 헤드헌터로 소개합니다. D 씨는 "40대 중후반이 되면 갈 데가 없다"며 "이런 나이 많은 분들은 해외로 많이 나가는 것 같다"고 설명합니다. 이 영상이 올라온 건 2020년. 바로 청두가오전이 인재 영입에 한창 열을 올리던 때입니다.

취재진은 또 다른 업체의 대표 E 씨를 직접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피해자라고 했습니다. 청두가오전 '행동대장'과의 미팅 당시, 그는 E 씨에게 "청두에서 최 씨가 하는 회사라고만 알려주면 올 사람은 알아서 올 것"이라고 설명했고, 실제 대상자들과 접촉하니, 그들이 회사 이름도 모르면서 가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경찰은 최 씨가 자체 인사팀만으로는 인력 선정에 한계가 있고, 컨설팅 업체 외에 '브로커' 역할을 할 창구가 필요해 전문 헤드헌터까지 끌어들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수사 당국은 헤드헌팅 업체 역시 기술 유출 사실을 알고도 최 씨에게 직원을 알선했다고 보고, 기술 유출의 공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취재파일] ③편에서는 앞서 설명한 인력 유출이 얼마나 심각한지, 또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등을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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