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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30년 전 살해당한 언니, 우리의 고통을 오락으로 포장해 버린 '범죄실화' 장르

[뉴욕타임스 칼럼] My Sister Was Murdered 30 Years Ago. True Crime Repackages Our Pain as Entertainment., By Annie Nichol

NYT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애니 니콜은 작가이자 활동가다. 30년 전 언니가 살해됐다.
 

1990년 말에는 우리 언니 폴리 클라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1993년 10월 1일 저녁, 열두 살 소녀였던 언니가 우리의 침실에서 낯선 침입자에게 납치됐을 때 나는 고작 여섯 살이었다. 언니의 얼굴은 곧 저녁 뉴스의 단골손님이 됐고, 언니의 이름은 공포심을 조장하는 범죄율 기사 제목에서 좀처럼 빠지지 않는 요소가 됐다. 납치 이후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 언니의 시신이 발견되기까지 TV 방송국 사람들은 우리 집 앞에 진을 치고 매일 같이 거실에서 방송을 진행했다.

시신 발견 이후 미디어 광풍이 잦아들었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달랐다. 언론사들은 보도에 더욱 박차를 가하며 비난 여론을 부추겼다. 중산층 백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교외 지역에서 일어난 납치·살인 사건으로 인해 미국 전역에서 처벌과 응징에 대한 요구가 격하게 터져 나왔다.

이후 몇 해에 걸쳐 범죄실화는 미디어가 집착하는 하나의 장르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잡지 〈할리우드 리포터(Hollywood Reporter)〉는 지난해 "지금 당장 정주행해야 할 범죄실화 시리즈 30편"이라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 애플 팟캐스트 차트 상위 20위에 든 팟캐스트 가운데 절반이 범죄실화다. 인터넷에는 최고의 범죄실화 신작 도서를 추천하는 글이 넘쳐난다.

범죄실화라는 장르가 피해자와 범죄를 해결한 이들, 또 해결하기 위해 애쓴 이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범죄실화 장르의 창작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비극적인 경험을 착취당하고 있는 생존자로서 나는 이 전유 행위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또 유명 사건에 대한 보도가 더 넓은 의미의 사회 정의 구현에 실제로 얼마만큼 도움이 되는지 잘 알고 있다. 범죄 피해자의 사연을 착취하는 행위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다. 가족의 비극은 상품화되고 사생활이 반복해서 대량 소비의 대상이 될 뿐이다.

일례로 넷플릭스가 2022년 공개한 범죄실화 시리즈 〈괴물: 제프리 다머 이야기(Dahmer — Monster: The Jeffrey Dahmer Story)〉는 다머의 피해자 가족 다수에게 큰 고통을 안겨줬다. 가족들은 이 시리즈가 고통을 상품화해서 이득을 취하고 실제 사건을 왜곡했으며, 다머의 범죄로 인해 괴로운 세월을 보낸 이들에게 다시 상처를 줬다고 느낀다.

이에 더해, 범죄실화 장르가 부각하는 백인 여성 피해자 서사에 해당하지 않는 사연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언니가 살해되기 전,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오늘날 '삼진아웃 제도'로 알려진 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었다. 아무리 사소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법에 따라 중범죄, 또는 폭력범죄로 분류된 전과가 두 번 있다면 무조건 25년에서 무기징역을 받게 되는 법안이었다. 당시 캘리포니아주 의회 공공안전위원회는 이 법안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판단해 곧장 부결시켰다.

그러나 언니의 사건을 계기로 이 법안은 캘리포니아에서 다시 논의된다. 미디어의 주목을 받은 우리 가족의 비극, 그리고 직전 해 18세 소녀 킴버 레이놀즈 살해 사건의 여파로 정치인들은 범죄 피해자 가족의 슬픔을 이용해 법안을 되살리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가히 20세기 가장 가혹한 양형 기준이라 할 만한 것이 만들어졌다.

이 법이 시행된 이래 삼진아웃 제도의 적용을 받은 이들의 절반 이상이 비폭력 범죄로 수감됐다. 그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이나 신체장애를 가진 이들, 그리고 유색인종이 더욱 높은 비율로 삼진아웃 제도의 대상자가 됐다. 이후 해당 법안은 개정됐지만 (이제는 세 번째 범죄도 중범죄나 폭력 범죄여야만 한다) 여전히 유색인종을 비롯한 소외 계층을 향한 구조적 차별을 강화하는 역할을 명백히 수행하고 있다.

언니의 죽음 이후 수년간 나는 정의가 실현됐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범인이 잡히고 처벌받기는 했지만, 언니의 짧고도 아름다웠던 삶은 그 순수함을 동력 삼아 대량 수감과 범죄실화 장르 열풍의 시대를 재촉한 정치적 서사에 가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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