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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불패신화' 최동훈 감독의 1년6개월 또는 6년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96

“외계+인 1부” 개봉 이후 2부 개봉까지는 5백39일, 약 1년 반이 걸렸다. 여기에 이 영화의 촬영 기간인 3백87일을 더하면 9백26일, 1부 편집 기간을 마저 더하면 ‘천일동안’을 훌쩍 뛰어넘는다. 프로덕션과 포스트 프로덕션 기간만 따져서 그렇다는 얘기고, 기획·시나리오 작성·캐스팅 등 프리 프로덕션 단계까지 더하면 “외계+인 1,2부”의 제작 기간은 더 늘어난다. 

장장(長長) 6년. 어느덧 50대 초반이 된 최동훈 감독은 “이 영화에 청춘을 바쳤다”며 농담 같은 진담을 했다.(요즘 사오십대는 청년이라니까 이 말도 무리는 아니다)

“그 말을 하고 ‘그 나이에 무슨 청춘이냐’며 비웃음을 많이 당했는데(웃음) , 영화적으로 보면 저는 아직도 청춘인 것 같고, 그 청춘의 마지막 끝에서 굉장히 하드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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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영화 “외계+인”에 대해 언급할만한 게 많지는 않다. 다만, 마침내, “외계+인 2부”까지를 떠나보낸 최동훈 감독에 대해서 만큼은 기록해두고 싶었다. 정확히는, -순전히 나의 어림짐작일 뿐이지만- 랭보의 유명한 시집 제목 “지옥에서 보낸 한철”과 같았을지도 모를 그의 1년6개월에 대해서.

‘한국 최고의 흥행 감독’, ‘흥행불패’... 그랬던 사람이 한순간에 몰락했다. 손익분기점이 관객 700만 명을 넘는 “외계+인 1부”는 1백50만을 겨우 넘었을 즈음 조용히 극장에서 내려왔다. 이를테면 선동열이 중요한 경기에서 홈런 세 방을 얻어맞고 5회도 못 버티고 강판된 셈이다. 시즌 중에는 거의 매일 게임이 있는 야구는 오늘 못 치더라도 내일 치면 되지만, 블록버스터 영화는 한번 실패하면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영화 한 편 찍고 그대로 감독 인생의 종지부를 찍은 감독들이 어디 한둘인가? (심지어 단 한 번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감독도 부지기수다)

최동훈 감독은 ‘한국에도 이렇게 할리우드 뺨치게 재밌는 영화가 있어도 되는 건가’ 싶었던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212만)부터 “타짜”(684만), “전우치”(613만), “도둑들”(1,298만), “암살”(1,270만)까지 손대는 족족 큰 성공을 거뒀다. ‘케이퍼무비 마스터’로서 멀티캐스팅 붐을 일으킨 최 감독은 한국에 네 명뿐인 소위 ‘쌍천만 감독’ 중 한 명이다. 봉준호, 윤제균, 김용화, 최동훈이 그 멤버인데, 그 중에서도 “외계+인 1부”가 개봉하기 전까지는 최동훈 감독만 유일한 흥행불패 감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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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를 다질 때는 보통 머리를 짧게 깎기 마련이다. 미련을 잘라내듯이. 그런데 최동훈 감독은 1부 개봉 때보다 머리를 더 길게 기르고 나타났다. 마치 유력 정치인들이 이따금 수염을 길러 자신의 고뇌를 표현하고자 하듯이. 

지상파 언론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외계+인 2부” 인터뷰장에 들어서자마자(원래 좀 컴컴하고 관계자들도 많아 어수선한 곳이다) 마스크를 낀 중년 남성이 서 있었다. 누군가 봤더니 최동훈 감독이었다.(평소 인터뷰이가 서있을 자리가 아니어서 처음에는 몰라봤다) 얼떨결에 인사를 하고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인터뷰석에 앉은 최 감독의 모습에서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청춘이 아니라 초로(初老)의 느낌마저 풍겼다. 1년 반 만에 마주한 주관적인 인상일 뿐이지만 그가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알 것도 같았다. 

- 1부가 흥행에서 기대에 못 미쳤던 이유를 뭐라고 보십니까? 

- 뭐, 다 제 부덕의 소치죠. 흥행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영화인이겠어요. 그런데 그걸 알 수가 없으니… 1부가 끝나고 굉장히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함도 컸어요.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집 밖을 나가지 말자, 고민을 많이 하자, 너에게 인생은 없어, 2부 후반 작업에 매진해’ 이런 거였는데.. 그 힘든 것이 후반 작업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뭔가를 찾게 되더라고요. ‘맞아, 나는 영화인이고 영화 작업을 하는 것 자체가 가장 행복한 일이었지’. 흥행과 결과도 굉장히 중요한데 후반 작업을 하면서 약간 도 닦는 느낌이 들었어요. (...) 제 안에서 어떻게든 해결을 하고 싶었는데 일로 해결하는 것 말고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외계+인 1부” 개봉 이후 2부 개봉 때까지 1년 반 동안 최동훈 감독은 그렇게 52개의 편집본을 만들었다. 다시 말해 “외계+인 2부”는 모두 52가지 버전의 영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1부를 못 본 관객들을 위해 2부 첫머리에는 잘 정제된 1부 요약본을 붙여놓았는데, 5분 정도 되는 이 부분 편집에만 6개월을 들였다고 한다.

CG가 많이 쓰인 영화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라도 새로 찍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이 영화에 또 제작비를 쓰겠다고 하기도 어려웠을테고) 재촬영은 시나리오를 수정한 이하늬 등장 씬 단 한 번뿐이었지만, 대사와 내레이션 등 오디오는 많이 수정됐다. 절치부심의 흔적이다.

“아주 많은 대사들을 수정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배우분들에게 ‘핸드폰으로 가녹음을 해서 보내주세요’ 라고 십여 차례씩 계속 부탁을 해서 새로운 대사들을 편집본에 넣는 과정을 통해서 본질을 변하지 않았지만 아주 많은 디테일들을 수정했습니다.” 

재작년 1부 시사회 때는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유쾌했던 주연 김태리 배우도 -리틀 포레스트에서 끓였던 된장국의- 숨죽은 배추마냥 차분해진 모습으로 나타나 말했다.

“52개의 편집본은 ADR(후시녹음)로 내레이션 부분이 많이 바뀌었어요. 음성은 음악하고 같이 들어봐야지만 그 느낌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녹음실에 가든 핸드폰으로라도 녹음을 해서 보내든 감독님이 계속 그걸 확인하셨죠. (...) 그렇게 많은 ADR 작업을 하면서 대사 한마디를 놓고도 감독님과 30분 정도 계속 얘기를 했죠. ‘이건 어떨까요? 저건 어떨까요? 아, 이렇게 하니까 너무 감정이 풍부해지는 것 같아요’...”

"외계인 2" 제작 현장에서 류준열과 대화 중인 최동훈 감독 / CJ ENM
외계인과 지구인, 그것도 지구인의 몸 속에 들락날락하면서 관객을 헷갈리게 하는 외계인이 나오고, 그들이 시간의 문을 열어 고려시대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고, 역시나 멀티캐스팅으로 많은 캐릭터가 쉴 새없이 등장하기 때문에 1부와 마찬가지로 줄거리를 딱 차고 앉아 보기란 쉽지 않지만 몇몇 액션 씬의 연출과 편집, 카메라워킹은 할리우드 버금가게 박진감이 넘친다. 

특히 최 감독이 ‘감성 가득한 액션 드라마’라고 “외계+인”을 규정하듯이, 엔딩시퀀스는 뭉클한 영화적 경험을 안겨 준다. 외계인과 지구인 캐릭터들이 대접전을 벌이는 스펙터클한 공장 엔딩 씬의 배경 음악으로 최동훈 감독은 로이 오비슨의 60년대 히트곡 ‘인 드림스(In Dreams)’를 다시 꺼냈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1986년작 “블루 벨벳”에서 센세이셔널하게 등장한 이래 이 노래는 여러 영화에서 쓰였고, 국내에서도 이정재의 영화 데뷔작인 “젊은 남자(1994, 배창호 감독)”중 총 6번의 씬에서, 마치 테마곡처럼 쓰였다. “외계+인 2부”의 막바지에서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뻔하지만 그 뻔한 감성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또 넘어가고 말았다. 

노래의 힘은 놀랍다. 안 어울린다고, 튄다고, 오글거린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왠지 짠해서 마음에 들었다. (다른 관객-특히 2030-들도 그런지는 확신이 없다) 

최동훈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이 노래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촬영)현장 편집 때부터 이미 엔딩 씬에 ‘인 드림스’를 깔아봤을 정도라고 하니 류승완 감독이 “밀수”에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깔았듯이, 김성수 감독이 “서울의 봄”에 ‘전선을 간다’를 깔았듯이,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에 ‘안개’를 깔았듯이, 이 노래는 “외계+인” 촬영이 시작됐을 때부터 이미 이 영화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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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은 많은 고민이 필요하고 육체적 (노동)강도도 되게 높은 영화였는데, 리얼리즘에서 (반대쪽으로) 가장 극단에 있는 영화를 만들어도 그 영화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있는, 또는 우리 의식 저편에 있는 영화적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저 또한 이 영화를 만들면서 굉장히, 굉장히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최 감독이 인터뷰 중에 자꾸 즐거웠다고 하니까, -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가 왠지 즐거웠다고 애써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면서 괜히 혼자 ‘센치’해지기도 했다.

“2부를 편집하면서 ‘맞아, 흥행도 되게 중요해’, 그렇지만 이 영화를 (1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아주 멋지게 마무리하는 게 영화인으로서 저의 가치인 것 같기도 하고, 이 영화를 보러 올 관객분들에 대한 저의 예의이기도 하고, 그리고 제가 너무 너무 사랑하는 관객들에 대한 저의 초대장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그 초대장에 응답을 해 주실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아주 즐겁게 그 과정을 작업한 것 같습니다.”

정확히 5백50일 전인 2022년 7월13일. “외계+인 1부” 개봉 직전 지상파 인터뷰 때 최동훈 감독은 -지금보다 훨씬 자신만만한 태도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었다. 

“한국에서는 낯선 장르인데 관객에게 다가가기가 그렇게 쉽겠어? 라고 하면 약간 여기서 반항심 같은 게 들어요. ‘정말 그럴까? 관객들은 어떤 영화든지 볼 준비가 돼 있는데 영화를 만드는 우리가 너무 틀에 가두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 그 안에서 아주 공들여서 영화를 열심히 만든다면 관객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누구나 자신의 일을 통해 성공하고 대외적인 성취를 이루기 원한다. 명예와 명성, 그리고 경제적인 보상도 원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문득 모든 것이 허무해질 때가 오면, 순수하게 그 일을 사랑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때로는 그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보상일 수 있다. 

1년 반의 시간은 최동훈 감독에게 자신이 왜 영화를 하는지 돌아보게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흥행을 위해서가 아니라(흥행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나는 왜 영화를 만드는지, 영화를 만드는 일은 나에게 무엇인지, 차분하게 자문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게 자기 위안, 정신 승리라 해도 어쩔 수 없다. 폐를 끼치지 않는 한 각자는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므로.

이 영화가 흥행에서 온전히 구원받기란 아마 불가능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부디 그 ‘반항심’에 용기를. 

잠의 요정이라 불리는 캔디색 어릿광대는 /
매일 밤 내 방으로 살금살금 걸어 들어와 /
요술 별가루를 뿌리며 속삭여요 /
이제 자야지,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 라고


A candy-colored clown they call the sandman 
Tiptoes to my room every night 
Just to sprinkle stardust and to whisper
Go to sleep, everything is alright


- ‘인 드림스(In Dreams)’ 첫 소절. 영화 “외계+인 2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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