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스프] 무기력하고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요? 그 감정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 That Numbness You're Feeling? There's a Word for It., By Adam Grant

NYT 뉴욕타임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애덤 그랜트는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10월 중순, 한 친구가 랍비에게 받은 문자를 보내왔다. 뉴스에 나오는 참상으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친구는 자신이 전혀 쓸모없는 존재라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많은 이가 비슷한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폭력 사태에 뒤따른 정치적 행동의 부재에 분노한 사람도 많다. 한 무슬림 동료는 가자 지구와 이스라엘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과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을 보면서도 무관심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경악했다고 말했다. 다들 어떻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갈 수 있는 걸까?

그저 세상일에 별 관심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치부하면 그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이유가 반드시 무관심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공감의 산물일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 심리학자들은 이런 증상을 '공감성 고통(empathic distress)'이라고 부른다.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만, 동시에 내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무기력감이 함께 찾아오는 것이다.

나도 이번 가을, 격화되는 해외의 폭력 사태와 미국 전역에서 번져가던 분노 앞에서 강렬한 공감성 고통을 겪었다. 교사로서 무기력하게도 그 모든 적대심과 증오로부터 학생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심리학자이자 작가로서는 말과 글이 너무 공허해서 어떠한 희망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부모로서도 아이들에게 세상이 여전히 안전한 곳이며,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막막했다. 얼마 안 가 뉴스를 아예 피하고, 전쟁 이야기가 나오면 화제를 돌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감이 어떻게 무기력감으로 이어지는지 이해하는 것은 타인, 그리고 나 자신을 돕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공감성 고통'이라는 개념으로 왜 많은 이들이 눈앞의 비극을 외면해 버리는지 설명할 수 있다. 내가 취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 쓸모없고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기부금을 내봤자 망망대해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기분이 든다.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봤자 괜히 벌집을 쑤시는 일이다. 내가 무엇을 해도 소용없다는 결론에 이르면 우리는 그 일에 관심을 끊기 시작한다.

공감성 고통이라는 증상에 처음 이름을 붙인 건 의료계였다. 일부 간호사나 의사들이 환자의 고통에 무감각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초기 연구자들은 이런 증상에 '연민 피로(compassion fatigu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음을 쓰는 데 비용이 따르기 때문에 피로해진다는 설명이 붙었다. 고통을 너무 많이 목격하게 되면 간접적인 트라우마로 인해 마음을 쓸 에너지가 고갈된다는 이론이었다.

그러나 신경과학자 올가 클리메키와 타니아 싱어가 그 근거를 검토해, '연민 피로'는 잘못된 명칭임을 밝혀냈다. 마음을 쓰는 것 자체에 큰 비용이 들어가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을 목격하는 것만으로 피로를 느끼는 게 아니라, 그 고통을 덜어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힘이 빠지고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이었다. 고난이 지속되는 상황이라면 공감은 고통, 나아가 우울증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공감 대신 필요한 것은 연민이었다.

우리는 공감(empathy)과 연민(compassion)이라는 단어를 같은 뜻으로 쓸 때가 많지만, 사실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개념이다.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즉 "너의 고통을 보니 나도 고통스럽다"는 의미다. 반면 연민은 타인의 감정에 대한 나의 행위에 초점을 둔 개념이다. "당신이 고통받는 것을 알고 있고, 내가 당신을 위해 여기에 있다"는 의미다.

이 두 개념에는 큰 차이가 있다. 심리학자 폴 블룸은 "공감은 편향적"이라고 썼다. 주로 '우리 편'에 속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만 발휘되며, 그러다 보니 "전쟁과 잔혹 행위의 강력한 동력"이 될 수도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더 깊고 인사이트 넘치는 이야기는 스브스프리미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콘텐츠의 남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하단 버튼 클릭! | 스브스프리미엄 바로가기 버튼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