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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우묵배미의 사랑은 낙엽을 타고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95

[씨네멘터리] 우묵배미의 사랑은 낙엽을 타고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달달한 핀란드 로맨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를 보러 갔다가 왜 갑자기 34년 전 한국영화 “우묵배미의 사랑”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중훈·최명길 주연의 “우묵배미의 사랑”은 구질구질하고 궁상맞은 사랑(또는 불륜)을 담은 영화인데 말입니다.

“미안해요. 미스 민이랑 첫날 밤이 될지도 모르는데 이런 구질구질한 여인숙에 데려와서”
“여인숙이면 어때요. 내 사는데 비하면은 여긴 궁궐인 걸요. 저 창문 좀 봐요. 꼭 크리스마스카드같잖아요”


‘코리안 뉴 웨이브’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은 산업화·도시화에 밀려나 서울 외곽에 사는 민중들의 삶을 해학을 섞어 사실적으로 묘사한 리얼리즘 영화의 걸작입니다.

반면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동화(童話)에 가깝습니다. 현실에서 저런 사랑이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동화같은 로맨스. 단, 핀란드의 세계적인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왕자님과 공주님(혹은 신데렐라)의 사랑은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는 노동계급의 사랑을 말 그대로 사랑스럽게 그립니다. 글로 설명하기는 역부족인데(그러니까 영화라는) 최근 일 년 동안 제가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달달한 로맨스 영화입니다. 
 
* * *

유통 기한이 지나 버려야 하는 빵 한 봉지를 챙겨나가다 해고된 마트 비정규직 안사와 술 없이는 일할 수 없어 공장에서 몰래 음주했다가 잘린 일용직 홀라파는 가라오케에서 우연히 만나 눈이 맞지만 말도 못 붙인 채 헤어집니다. 

생활비가 다 떨어진 안사는 시내 한 펍의 주방보조 자리를 구해서 열심히 그릇을 닦는데, 하필이면 첫 주급을 받는 날 주인이 대마초를 팔다 경찰에 붙들려 가버립니다. 다만 그 소동 때문에 길가던 홀라파와 우연히 다시 마주치게 되죠.

안사와 홀라파의 커피숍 첫 데이트 / 찬란
홀라파: 커피 한 잔 할래요? 시간 되시면 근처로 가시죠
안사: 시간은 있는데 돈이 없어요
홀라파: 제가 한 잔 살게요
(...) 
홀라파: 그동안 돈 없어서 식사도 못하셨죠?
안사:
홀라파: 빵 좀 드세요 (안사가 빵을 주문하러 카운터로 간다)

사민주의 국가인 핀란드 사회 분위기가 원래 이런지 아니면 두 사람이 지나칠 정도로 담백한 사람들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감출 수 없는 가난’은 안중에도 없는 솔직함과 당당함은 이 로맨스 영화의 백미(白眉)입니다. 커피숍에서 나온 두 사람은 극장에서 영화를 본 뒤 첫 볼 키스를 나누고 재회를 약속합니다. 가난과 재채기, 그리고 사랑 역시 감출 수가 없나 봅니다.

홀라파: 그럼 또 만날까요?
안사: 그러고 싶어요?
홀라파: 무척요
안사: 번호 줄게요

하지만 홀라파는 실수로 번호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백방으로 안사를 찾아다니고,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던 안사는 안사대로 크게 낙담합니다. 며칠 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극장 앞을 서성이다 마침내 조우합니다.

안사: 딴 사람 만난 줄 알았어요
홀라파: 내가 바람둥이 같아요? 내 신발 좀 봐요. 당신을 찾느라 닳았잖아요 

홀라파의 이 대사는 “우묵배미의 사랑”에서 재봉사 일도(박중훈)의 대사와 많이 닮았습니다. 딴 살림을 차렸다가 왈패같은 마누라에게 들키는 바람에 헤어진 미싱사 공례(최명길)와 몇 달 만에 다시 만난 일도는 밀회 장소인 비닐하우스 안에서 말합니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 줄 알아요, 미스 민? 이 손톱 좀 봐. 미스 민 보고 싶을 때마다 물어 뜯어서 걸레 같잖아요” 

두 영화는 음악과 대사가 혼연일체를 이룬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주요 장면마다 삽입된 노래의 가사가 때로는 주인공들의 심정을 반영하는 대사처럼 쓰입니다.

안사와 홀라파가 가라오케에서 처음 만나 눈이 맞는 대목에서는 “내 노래는 밤새도록 당신에게 간청해요”로 시작하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가 흐르고, 공례가 일도와 함께 하기로 마음을 정리한 뒤 찾은 카페에서는 “그토록 다짐을 하건만 사랑은 알 수 없어요. 사랑으로 눈 먼 가슴은 진실 하나에 울지요”라는 최진희의 히트곡 ‘사랑의 미로’가 공례의 마음을 대변하며 흐릅니다. 

안사가 창가에 우두커니 앉아 홀라파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릴 때, 라디오에서는 “날 사랑할 용기가 없나요? 왜 아무런 대답이 없나요?”라는 가사의 노래가 나오고, 공장 노동자로 취직한 안사와 공사판 노동자로 일하게 된 홀라파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장면에서는 ‘아침 비에’라는 곡이 흐릅니다.

이른 아침 빗속에서 / 동전 몇 푼을 쥐고 걷네 
가슴은 찢어질 듯한데 / 주머니엔 모래만 한가득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 채 /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네


"우묵배미의 사랑"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우묵배미의 사랑”에서는 일도가 재봉 공장에 취직해 공례와 처음으로 말을 섞을 때 주현미의 1989년도 히트곡 ‘짝사랑’이 카세트에서 흘러 나옵니다. 

사랑스런 눈빛이 / 무엇을 말하는지
난 아직 몰라 / 난 정말 몰라 
가슴만 두근두근 / 아 사랑인가 봐


두 영화의 톤과 다소 이질적인 로큰롤이 영화에 한 번씩 등장하는 것도 어쩜 그리 똑같은지요. “사랑은 낙엽을 타고”에서는 핀란드 록그룹 허리게인스의 ‘겟온(Get On)’이란 곡이 나오고, “우묵배미의 사랑”에서는 일도가 가져온 카세트테잎을 틀자 엘비스 프레슬리의 ‘버닝 러브(Burning Love)’이 울려퍼집니다. 둘 다 신나는 리듬의 70년대 로큰롤입니다. 
 
* * *

   물론 두 영화에 이렇게 낭만적인 장면만 있는 건 아닙니다. 핀란드의 21세기 동화와 한국의 20세기 말 리얼리즘 영화의 골계미(滑稽美) 사이 사이에는 당대 민중의 삶과 노동 현실이 넌지시 드리워져 있습니다.

홀라파는 업주가 제때 교체해주지 않아 잘 작동이 안되는 낡은 장비로 일하다 다치고, 안사는 아무 때나 통보없이 해고되거나 계약서조차 쓰지 않는 비정규직입니다. 공례는 심각한 가정 폭력에 시달리고, 일도는 일자리가 없어 서울에서 밀려난 하층민의 삶을 보여줍니다. 일도와 공례가 일하는 변두리 의류 공장 노동자들의 애환 또한 “우묵배미의 사랑”이 비추는 당대의 현실입니다.

이제야 알 듯 합니다. 왜 “사랑은 낙엽을 타고”를 보며 이 영화와는 아무 상관 없어보이는 80년대의 한국 영화가 제 머리 속에서 번쩍하며 연결되었는지. 

달달하든 궁상맞든, 동화같든 실화같든, “사랑은 낙엽을 타고”와 “우묵배미의 사랑” 모두 서민들의 삶과 노동자의 사랑을 노래한 영화였습니다. 최근 우리는 한국 상업 영화에서 대체로 매끈하고 균질한 사랑과만 마주칩니다. 과거에 비해 이런 경향이 짙어졌습니다. 로맨스 영화에는 상류층의 사랑, 전문직의 사랑만 넘쳐 납니다. 기껏해야 상류층과 사랑에 빠진 신데렐라 스토리죠. 영화는 대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보기 때문일 겁니다. 

“사낙타”와 “우묵배미” 두 영화에 신데렐라는 없습니다. 가난과 사랑은 일반적인 인식 속에서 어울리는 단어는 아닙니다. 하지만 어울려서 안되는 단어의 조합은 아닙니다. 

미국의 짐 자무쉬 감독은 “사랑은 낙엽을 타고” 에 대해 "영화 속 웃긴 장면은 나를 슬프게 하고, 반대로 슬픈 장면은 나를 웃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확히 “우묵배미의 사랑”에도 들어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묵배미의 사랑”에는 당대의 스타 박중훈의 코믹 연기가 만만찮게 나오는데 그 순간들이 왜 그렇게 애처롭게 느껴질 때가 많던지요. 이 영화는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채널인 ‘한국고전영화’에 무려 1,658만회의 조회수로 이 채널에 있는 330편의 역대 명작 한국 영화 중 4위에 랭크돼 있습니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나름 해피엔딩입니다. ‘음악 영화’답게, 두 사람이 함께 낙엽이 뒹구는 공원을 걸어가는 뒷모습을 길게 잡은 롱샷 엔딩씬에는 이브 몽탕이 불렀던 낭만적인 샹송 ‘고엽(枯葉)’의 핀란드어 버전이 흐릅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엔딩씬을 오마주한 그 장면에는 안사가 입양한 유기견도 함께 합니다. 유기견의 이름이 ‘채플린’입니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뜨내기 우리의 남루한 젊음’으로 시작되는 이경미의 노래 ‘우묵배미의 사랑’이 흐르는 가운데 공례와 헤어져 논두렁을 걷는 일도의 쓸쓸한 뒷모습으로 끝납니다. 클로즈 업으로 시작한 이 엔딩씬은 논두렁 저 너머로 기차가 지나가고 일도가 거의 점이 될 때까지 멀어지는 2분 가까운 원신 원컷의 롱샷으로 이어집니다. 

영화 천재 채플린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in close-up)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in long shot) 희극이다”  영화는 때로는 꿈이 아니라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에 볼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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