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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들어가는 선택들에 대하여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북적북적]

나를 만들어가는 선택들에 대하여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407: 나를 만들어가는 선택들에 대하여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답이 있는 문제: 뉴욕에서 시카고까지 가는 방법.
답이 없는 문제: 시카고에 갈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기.
답이 있는 문제: 달에 착륙하기
답이 없는 문제: 육아
답이 있는 문제: 세 수만에 체스 끝내기
답이 없는 문제: 인생

새해를 여는 [북적북적]입니다. 뭔가 새 출발에 어울리는 책을 골라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오늘의 책을 선택했습니다.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는 인간의 달력은 인간의 필요와 마음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그 달력의 흐름에 맞춰서 새해는 새해답게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해보는 게 나 자신에게 좋은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인생에서 때때로 이렇게 끊고 여는 순간들을 챙기면서 신선한 긴장을 불어넣는 시간을 갖는 것, 오히려 나이를 먹어갈수록 좀더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해, 아직 깨끗한 백지입니다. 이 위에 마음이 원하는 그림들을 많이 그려 나가시고, 더 나아가 아직까지는 미처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기존의 계획을 벗어나는 그림들까지 풍요롭고 다채롭게 채우는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저 자신 새해를 새해답게 맞이해 보고 싶은 마음에, 나름대로는 이주의 책을 열심히, 오래, 골랐습니다. 사설이 긴 이유는 다소 변명을 겸해야 하기도 해서입니다. 아직 읽은 사람이 별로 없는 신간 중에서 찾아내고 싶었는데, 열심히 뒤져보고 이 책 저 책 폈다 접었다 해본 결과, 아무래도 새해의 첫 [북적북적]은 이 책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아 신간 쪽은 살짝 포기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더 나은 삶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알려주는 레시피도, 알고리즘도, 앱도 없는 상황에서 이 드넓은 자유를 대체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오늘의 책, 미국의 경제학자 러셀 로버츠가 쓴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입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지난 9월에 우리나라에서 출간돼 이미 꽤 많은 분들이 읽으며 중쇄를 거듭했습니다. [북적북적] 가족 가운데도 이미 읽은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첫번째 도서로 선택해 봤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아직 이 책을 접하지 못한 [북적북적] 가족 분들 중에 단 몇 분이라도, 이 책을 만남으로써 삶에 작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1838년 답이 없는 문제를 앞에 놓고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찰스 다윈이었다. 서른 살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번에는 결정을 볼 참이었다. 결혼을 한다면 아마 자녀도 생길 것이다. 다윈은 이 선택에 의해 좌우될 장단점을 목록으로 작성해 보았다. 그의 손 글씨로 적힌 이 목록은 그의 일기장에서 엿볼 수 있다. (…..중략……)

결혼한다: 자녀(신께서 허락하신다면), 나에게 관심을 가질 동반자(겸 노년의 친구), 사랑받고 함께 놀 대상(어쨌든 강아지보다는 나음), 가정/집을 돌볼 사람, 음악이 주는 매력/여성과의 수다(건강에 좋은 것들임), 억지로 친척을 방문하고 초대해야 하는데 끔찍한 시간 낭비임.

결혼 안 한다: 자녀 없음(두번째 삶이 없음)/늙어서 돌봐줄 사람이 없음, 아끼는 가까운 사람들이 공감해 주지 못한다면 일이 다 무슨 소용일까. 늙은이에게 가족 빼면 무슨 친구가 있을까.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사람을 가려서 만날 수 있고 적게 만날 수 있음), 사교클럽에서 재치 있는 남자들과의 대화, 억지로 친척을 방문할 필요가 없고 사소한 것들에 신경쓰지 않아도 됨, 자녀로 인한 비용 및 걱정/아마도 다툼/시간 손실(저녁에 책을 못 읽음, 뚱뚱하고 게을러짐)/자녀가 많아져서 입이 늘어날 경우에 발생하는 걱정과 책임(책 살 돈이 줄어드는 등), (그렇지만 과로는 건강에 매우 나쁨), 아내가 런던을 싫어할 가능성이 큼. 그럴 경우 유배 생활을 해야 하는데 나태하고 게으른 바보로 전락.

훗날 위대한 과학자로 생을 마감하게 될, 아직은 29살의 청년 찰스 다윈이 언뜻 보면 적당히 '합리적'으로 보이는 점들도 있지만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피상적인 결혼관 몇 가지를 꼬물꼬물 써놓은 목록입니다. 과연 이런 목록의 작성은 결혼이라는 중대사를 앞둔 상태에서 얼마나 효용이 있는 걸까요. 아무리 봐도 '결혼한다' 쪽이 훨씬 불리해 보이는 이런 노트를 작성한 다윈은 결국 어떤 결정을 내렸으며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이렇게 발랄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서두로 '의사 결정'에 대한 주제를 펼쳐보이기 시작하는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의 원제는 [Wild Problems]입니다. 말 그대로 답이 없는 문제들,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질문들 앞에서 나의 방향을 찾아가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입니다.
무엇이 나에게 최선인지를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나'는 다음 중 어느 쪽인가? '지금의 나'인가, '나중의 나'인가?

바보처럼 들리지만 우리가 만나는 답이 없는 문제의 다수가 바로 이런 식이다. 결혼을 할 것인 가. 자녀를 가질 것인가. 새로운 종교를 믿을 것인가. 어릴 때부터 믿던 종교를 떠날 것인가. 수많은 의사 결정이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나면 당신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관심사도 바뀔 테고, 당신에게 기쁨이나 슬픔, 다정함, 서운함, 빛과 그늘을 주는 대상이 모두 바뀔 것이다.

제 인생에도 해가 쌓여갈수록, 정말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란 걸 절감하게 됩니다. 내가 해온 선택들이 나를 만들고, 그래서 내가 해온 선택들이 내 삶을 조종하는 면이 점점 더 커지는 시기로 저도 조금씩 접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삶의 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들에서 내 방향을 하나하나 잡을 때마다, 그 선택들이 내 삶을 얼마나 근본적으로 바꾸어 나갈지, 그 엄중한 의미들을 그때는 미처 다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답이 정해지지 않은 삶의 문제들이 우리를 계속 찾아올 겁니다. 내 삶의 경로를 또 한 번 다지게 될 새해에 나는 답이 없는 문제들 앞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이 책의 손을 잡고 그 외로운 걸음걸음을 떼어 보실 것을 감히 권해드릴 수 있는 책입니다.

제 삶에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름 '인생을 건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습니다. (흔한 표현들과 똑같지만, 진짜로) 잠을 설치고 끼니를 걸러 가면서 고민했던 그 선택들 이후로, 제 삶과 저 자신도 그 선택들의 결과를 따라 변화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때 반대쪽을 선택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모골이 송연할 만큼 잘 한 결정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하는 선택들을 내렸을 때 제 마음 속에 있던 생각들이 이 책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서 참 반가웠습니다. (너무나도 부족하고 미욱했던 주제에 정말이지 하늘이 도와 그때 이런 점들을 생각할 수 있었구나, 같은 느낌입니다.) [북적북적] 가족 분들이 바로 그런 기분으로 훗날,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을 친구삼아 그때 나는 이 선택을 내렸지' 흡족하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언젠가 맞으시게 된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요!
만약에 부모가 되는 게 어떤 거냐고 다윈이 내게 물어볼 만큼 잘 아는 사이였다면, 나는 벽난로의 불이 다 식고, 하늘이 다시 밝아 오르고, 가로등이 다 꺼지고, 해가 떠올라 런던의 안개를 말끔히 걷어낼 때까지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녀를 갖게 되면 자신의 부모에 대한 유대감이 생긴다고, 이전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방식으로 부모와 가까워진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그 어떤 경험과도 다른, 하나의 대업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일종의 불멸 같은 거라고, 당신을 바꿔 놓을 거라고, 세상을 보는 방법이 바뀔 거라고 말해 주었을 것이다.

숨겨져 있던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한 편 발견됐다고 상상해 보라고 했을 것이다. 혹자는 셰익스피어의 최대 명작으로 한 번도 보지 못한 강력한 힘을 가진 희곡이며, 날것 그대로의 감정과 열정, 유머, 익살, 실망, 용기, 두려움, 웃음, 그리고 가장 순수한 형태의 기쁨이 가득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연극을 오늘 밤에 볼 수 있다고 한다.

"가시겠어요?"

"희극인가요, 비극인가요?" 다윈이 묻는다.

"아, 어쩌죠? 이 연극을 본 사람들은 도통 말이 없네요. 아니면 말해줄 수 없나 봐요. 너무 강렬하대요. 공연 때마다 결말이 달라져서 리뷰를 읽어보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어요. 정말 볼 만할 텐데, 그 자리에 함께해 보시겠어요?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할 빛을 가득 선사할 수도 있지만, 가슴을 찢어 놓거나 눈물을 쏟게 만들 수도 있어요. 아, 그리고 운이 좋다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 어둠 속에서 내내 곁을 지킬 거예요. 극적인 사건들을 함께 나누며, 같이 울고 웃는 거지요.

모든 사람이 이 연극을 감당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모두가 감당하고 싶어 하는 것도, 그럴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정말로 부모가 된다면, 이 드라마의 끝이 어떻게 된다 한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당신의 가슴을 가득 채워줄 거예요. 저는 이 연극을 정말로 좋아하지만, 그건 제 경우이고 당신은 아닐 수도 있어요."

도움이 좀 되었는가? 아마 아닐 것이다. 답이 없는 문제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책의 주제의식에 대해 제 사족을 좀더 덧붙이고 싶었지만, 줄이기로 했습니다. [북적북적]에 발췌 낭독한 부분도 모두 서두에 몰려 있습니다. 이 서두가 마음에 드신다면, 이 책이 손짓하는 사유의 방향으로 직접 한 번 산책해 가 보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새해를 여는 시간, 이런 식으로 '의사결정'에 대해 논하는 책을 펼쳐보고 싶어질지 어떨지. 이 책을 다 읽기로 선택해 마지막 장까지 이르고 난 뒤에 마음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 있을지. 그것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각자 다른 '답이 없는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다음 이 위대한 과학자는 '결혼한다' 칸의 제일 아래에 이렇게 써놓았다.

결혼한다-결혼한다-결혼한다. 증명 끝(Q.E.D.)

………(중략)……
현명한 결정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라도 하듯 "결혼한다"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쓴 것을 보면 그는 열심히 우기고 있었다.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깜짝 놀랄 만큼 '잘 쓴' 책입니다. 아마 지금 책방에 가서 접할 수 있는 인문서 섹션의 책들, 스스로를 고양시키기 위해 집어든다는 측면에서 자기계발서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책 중에서 가장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번역이 워낙 훌륭하기도 하거니와, 원서의 문장들 자체가 영문번역서 특유의 딱딱한 느낌을 가뿐히 뛰어넘을 수 있게 하는 대단히 경제적이면서 근사한 문장들입니다.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참신한 구성과 유머감각이 깃든 스토리텔링이 떠받칩니다. 아무리 대단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야기가 자기 안에서만 소용돌이치면서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실패하는 책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세상에 건네고 싶은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위트 있게, 부드럽게 건넬 수 있다니. 역시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구나. 삶은 그래서 새삼 재미있고, 나도 앞으로 더 제대로 나아가고 싶다,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 낭독은 다윈의 실제 일기장을 토대로 풀어나가는 참신한 서두에 집중했습니다. 이 서두에 이어지는 아름다운 사유들에 참여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드신다면 기쁘겠습니다.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 앞에서 고민하고, 방황하고, 어둠 속에서 바닥을 손으로 더듬고 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 많은 분들, 부디 새해에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실 수 있길 마음 깊이 기도합니다. 그 고뇌의 시간들만이 우리의 삶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주는지도 모릅니다.

새해에도 때때로 북적북적 해주세요. 마음 깊이 스며드는 좋은 책들을 올해도 함께 읽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세계사 출판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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