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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독이 든 사과 베어 먹은 경찰…탈 나는 마약 수사

[취재파일] 독이 든 사과 베어 먹은 경찰…탈 나는 마약 수사
지난 10월 19일 오후, 한 지역 언론사는 '인천경찰청이 톱스타 L 씨를 마약 혐의로 내사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해당 언론사는 "인천시경 관계자는 '강남 유흥업소 수사 중에 유아인급의 연예인의 정보를 확보했다'며 '배우 L 씨의 마약과 관련한 정보를 토대로 내사 중이다'라고 말했다"라고 기사에 적었습니다. 이후 해당 보도에 언급된 L 씨가 배우 이선균 씨라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경찰은 L 씨가 이 씨라는 점에 대해 공식적으로 확인이 어렵다고 했지만, 이튿날인 10월 20일 이 씨 소속사는 설명 자료를 통해 "이선균 배우에게 제기되고 있는 의혹과 관련해 수사기관에 진실한 자세로 성실히 임하고자 한다" 밝혔습니다. 익명에 가려져 있던 [L 씨 = 이선균 씨]로 확인이 된 겁니다.

다만, 내사 단계에 있던 수사 대상자 관련 정보가 외부에 유출된 데 대해서는 석연치 않은 시선이 많습니다. 내사란 혐의가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을 피의자로 입건하기 전에 조사하는 단계입니다. 내사 도중 혐의 입증과 거리가 먼 인물이라고 판단하는 등의 경우 수사기관은 내사 종결하게 됩니다. 때문에 수사기관이 내사하는 인물이 수사기관 외부에 알려지는 건 드뭅니다. 경찰은 이 씨를 피의자로 전환해야 할 만큼 주요 내사 대상자로 판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선균과 권지용 그리고 다른 대중 연예인

이선균, 권지용 마약 수사

지난 10월 25일 밤, 이번에는 인천경찰청이 국내 유명 가수를 피의자로 입건해 조사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보도에 언급된 인물은 가수 지드래곤, 권지용 씨였습니다. 당시 한 경찰 관계자는 "증거가 없을 수도 있다. 신중히 보도해달라"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 강남의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실장(A 씨)이 권 씨 관련 진술을 내놓은 상태에서 의혹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강제수사를 통해 증거를 확보하겠다는 게 당시 경찰 수사팀의 설명이었습니다. 형사소송법에 근거해 법과 절차대로 하면 문제 될 게 없다는 뜻인데 국민 법 감정에 비춰보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입니다. 물증으로 볼 만한 증거가 없는데 왜 피의자로 입건하느냐는 의문이 쏟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려했던 대로 진술 외 확실한 물증 확보 전 단계에서 권 씨 피의자 입건 사실이 수사기관 외부에 매우 이른 시점에 알려진 건 인천경찰청의 수사에 독이 됐습니다. 압수수색 영장도 신청하기 전이었습니다. 당시 보도 흐름을 지켜보던 한 경찰 관계자는 "이제 경찰 뜻대로 수사할 수 없게 됐다. 여론에 끌려 다녀야 한다"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최근 3년 새 언론 보도에 언급된 대중 연예인의 사례만 봐도, 내사 단계에서 또는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가 이뤄지기도 전에 대상자의 범죄 혐의 관련 내용이 수사기관 외부에 알려진 경우는 없었습니다. 한 유명 여가수(불기소 처분)와 유명 남성 배우(벌금 수천만 원 형 확정)의 경우, 피의자 입건 이후 해당 연예인에 대한 소환 조사가 임박한 시점에 이들의 마약 투약 혐의 사실이 수사기관 외부에 알려졌습니다. 여러 차례 압수수색과 주변인 참고인 조사를 거치다 보니 수사기관 외부로 '입소문'이 나기도 했습니다. 십수 명에 대한 주변인 등 참고인 조사가 이뤄지면 외부로 알음알음 소문이 퍼진다는 의미입니다. 해당 소속사들은 곧바로 사과의 내용을 담은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들 두 명의 사례 모두, 내사 단계를 넘어 피의자로 입건된 이후 참고인 조사와 압수수색 등을 거쳐 범죄 혐의점이 특정된 이후 수사기관 외부에 알려진 경우입니다. 최근 불구속 기소된 다른 유명 남성 배우(1심 재판 진행 중)의 경우에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해당 배우의 프로포폴 오남용 의혹 근거 자료를 토대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며 수사 기관 외부에 알려졌습니다.

참고로, 4년 전 한 대기업 총수 일가 중 한 명이 프로포폴을 오·남용했다는 의혹의 경우 경찰 내사 단계에서 외부에 알려졌지만 내사 종결된 바 있습니다.
 

독이 든 사과 베어 먹은 경찰…꼬여버린 스텝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

인천경찰청이 처음부터 이선균 씨와 권지용 씨를 '타깃'으로 삼아 수사를 시작한 건 아닙니다. 인천경찰청이 서울 강남 일대 유흥업소에서 마약 투약이 상습적으로 이뤄진다는 첩보를 토대로 조사에 들어간 건 9월 말 무렵입니다. 그 첩보의 중심에 A 실장이라는 인물이 있었으며, A 실장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진술과 디지털 증거 등을 통해 유명 대중 연예인들의 실명이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혐의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근거 자료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경찰 수사팀 내부 보안 유지에 각별했어야 했습니다. 민감한 대상자를 들여다보는 수사팀의 경우 자신들의 휴대전화 통신 내역까지 수사 책임자에게 보여줄 정도로 팀 내 보안을 유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팀 누군가가 외부로 유출했을 가능성 또는 수사팀의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제3의 인물이 수사 과정에서 들었던 정보를 외부로 유출했을 가능성 등이 존재합니다. 특히나 마약 투약 혐의 관련 참고인 조사를 받는 제3자들의 경우 수사기관 외부로 나와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경찰은 설명합니다.

A 실장 등의 진술과 이들의 디지털 기기 포렌식 자료만을 근거로 경찰이 혐의 입증을 자신했다면, 상당히 섣부른 판단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려면 그 이상의 증거 자료를 확보해야 합니다. 직접 투약 증거 말입니다. 모발 감정에서 양성이 나와도 투약 시기와 장소 등 공소사실을 특정할 수 없는 경우 무죄가 나오는 판례도 있는데, 하물며 감정 결과가 음성이 나온 피의자에 대해 공소사실도 특정하지 못했으니 더욱 넘어야 할 산이 많았을 겁니다. 이번 사건에서 발견된 직접 투약 증거는 현재로서는 턱없이 부족해 보입니다. 경찰 내부 곳곳에서도 "성급했던 수사"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 경찰 고위 관계자는 "침을 바르려고 하다가 탈이 났다"라고 품평했습니다. 이선균 씨 내사와 같은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 민감한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며 수사팀이 곤경에 처한 건 분명해 보입니다.

A 실장의 범행 의도와 범행 경위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전 수사기관 외부에 알려진 건 인천경찰청 입장에서 매우 뼈아플 겁니다. 인천경찰청의 설명대로 형사소송법 절차에 어긋난 지점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약 수사 경험이 있는 한 현직 변호사는 "수사의 전체적인 틀을 봤을 때 망한 수사. 여론의 추이를 보며 따라갈 수밖에 없는 수사"라고 시작 단계부터 혹평했습니다. 경찰 내부에서도 '죽이 될지 밥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하는 데 그쳤을 뿐입니다. 경찰의 내사 또는 수사 착수만 놓고 보면, 이건 무리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범죄 혐의점이 의심되는 경우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수사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이후 벌어진 일련의 흐름을 놓고 보면 통상적인 수사 흐름과 비교했을 때 스텝이 꼬인 겁니다.
 
통상의 경우 : 첩보 입수 또는 수사 의뢰 또는 고소 및 고발 ▶ 첩보 · 수사 의뢰 내용 · 고소 고발 내용 검증 ▶ 고발·고소인 및 참고인 조사 병행 ▶ 혐의 대상자 입건 ▶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 핵심 피의자 소환 조사 ▶  (A) ▶ 송치 후 기소
※ 통상의 경우에 비춰보면, 수사기관이 참고인 조사와 강제수사 등을 거치며 (A) 단계에서 사건 대상자와 사건 관련 내용이 불가피하게 외부로 알려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인천청이 아닌 다른 청에서 마약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은 "손톱과 발톱은 마약 감정 시료 가운데 가장 불리한 시료다. 경찰이 그걸 기다리는 게 안타깝다"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투약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체모에서 검출이 안 됐는데 권지용 씨의 손톱과 발톱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지는 않을지 기다리는 건 '수사'가 아니라 말 그대로 '기대'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해당 수사를 보고받는 경찰 수뇌부는 대외적으로는 '무리한 수사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반복해 왔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스코어만 놓고 보면 완패입니다. 대외적인 멘트 말고 경찰 내부의 분위기는 어땠을까요. 경찰 수뇌부에서는 빠른 종결이 바람직해 보인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경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모든 첩보나 제보에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독(毒)이 발라져 있기 마련이다. 첩보 제공자의 주장을 비롯해 유흥업소 여실장 진술과 디지털 증거 검증에 좀 더 공을 들였어야 했다. 저 정도의 수사 기록만 가지고 어떻게 재판에서 공소 유지가 가능하겠느냐"라며 안타까움을 내비쳤습니다. 진술과 디지털 기록 등 간접 증거를 철저히 검증하면서 경찰 수사팀이 보안을 좀 더 각별히 유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경찰 수사 의도는 정당했지만 내사 단계부터 외부로 정보가 유출되는 등 꼬여버린 스텝으로 다른 마약 투약 의심 피의자까지도 수사기관을 향해 역공을 퍼붓고 있습니다. 수사 의도와 진정성마저 의심받고 반발만 사고 있습니다. 물론 마약 전문가들은 '음성 판정'이 나왔다고 해서 마약을 투약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합니다. 최근 1년 내, 마약 투약 여부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어렵다는 의미이지, 이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도마 오르는 경찰의 마약 수사…지금이라도 재정비해야

경찰 마약 수사

현재 마약 관련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다른 피의자들도 있습니다. 경찰은 인천 세관원이 마약 밀반입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수사 중입니다. 해당 세관원에 대한 개인 신상이 외부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해당 수사 과정에서도 다소 의아한 지점이 발견됩니다. 경찰 수사팀 관계자가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라고 여러 언론사에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압수수색은 대상자가 인식하지 못하게끔 부지불식간에 이뤄져야 하는 강제수사 절차입니다. 보안을 요하는 만큼 압수수색 이후에 알리는 게 통상적이지, 압수수색 전부터 "압수수색할 예정"이라고 알리지는 않습니다. 경찰은 금융 계좌에 대한 영장 신청을 검찰이 반려했다는 내용 또한 언론에 알렸습니다. 해당 영장을 관할하는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일반적이지 않은 수사 공보 방식"이라고 평했습니다.

해당 수사 과정에서도 경찰이 세관원들을 피의자로 입건한 명확한 물증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이선균 씨와 권지용 씨 수사처럼 역풍을 맞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가령, 필로폰 국제 밀반입 조직원들의 진술을 근거로 수사에만 나서고 있다면 혐의 입증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관 내부에서는 경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니 법적 절차에 협조하면서도 반발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경찰 지휘부에서도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휘부에 있는 한 경찰 관계자는 "국제 밀반입 조직원들이 지목하는 사람을 곧이곧대로 입건해서 세관을 들쑤시고 나서 '아니면 말고식'의 수사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라며 해당 수사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스탠스를 보였습니다.

경찰의 마약 수사가 도마에 오르고 있는 건 이 뿐만이 아닙니다. 국가정보원 블랙 요원이 민간 정보원을 활용해 특정 시민을 피의자로 만들었던 일명 '마약 무고 사건(검찰 공소 취하)'을 비롯해 성범죄 피해자를 마약 정보원으로 활용한 사건 등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수사는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마약 수사를 하고 있는 한 경찰 관계자는 "여태껏 마약 수사를 안 해온 게 아니라 지금처럼 한결같이 열심히 해왔는데 일시적으로 빛나 보이려고 하니까 무리하게 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마약 제조와 유통, 밀수입, 투약 행위는 뿌리 뽑아야 하는 범죄입니다. 이에 대한 수사는 적시에 신속 정확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지 못할 경우 여론은 수사를 불신하고 어설프다고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명분 삼아 불필요한 의혹과 음모론을 양산할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약 범죄 근절을 위한 수사의 정당성이 의심받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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