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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한 해를 제대로 마무리하는 힘, 회고하는 글쓰기

<번아웃의 모든 것>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글쓰기 공책 노트 생각 (사진=픽사베이)
2023년 올해는 여러분에게 어떤 한 해였나요?

인생의 반려자나 소중한 새 생명을 만난 의미 있는 해였을 수도 있고, 또 어떤 분은 은퇴나 퇴사 같은 중요한 변화를 겪은 시기였을 수도 있겠지요. 또 누군가에게는 긴 터널 속 같이 힘든 시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각자 다른 시간을 보내셨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살아내어 12월의 끝자락에 도달했습니다.

매년 연말, 여러분은 어떤 방법으로 한 해를 회고하시나요? 딱히 회고라는 걸 안 한다는 분이 제일 많습니다.

사실 개인의 성향을 떠나서 우리 사회 자체가 아직은 회고에 익숙하지 않은 편이라고 여겨지는데요. 아주 최근까지도 송년회 대신 망년회로 불리던 것을 떠올려보세요. 물론 일본식 표현의 잔재라고는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 '지나간 한 해는 잊는다' 또는 '털어버린다'라는 개념이 오랫동안 존재했기에 망년회라는 단어도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매년 한 해를 '털어버렸던' 여러분이라면, 이번에는 한 번 회고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특히 힘든 한 해였던 분이라면 더욱 권하고 싶습니다.

"왜 안 좋았던 일을 굳이 곱씹으라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텐데요. 오히려 회고에는 '회복의 힘'이 있습니다. 올 한 해, 내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걸 헤쳐 나왔는지 눈으로 보게 되는 경험이지요. 이른바 '낯설게 하기'입니다.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는 원래 러시아의 문학평론가인 빅토르 쉬클로프스키가 처음 사용한 말인데요. 원래 익숙하게 알던 평범한 개체들을 낯설게 묘사함으로써 다른 시각을 갖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문학에서 사용되던 용어였지만 지금은 심리, 마케팅, 예술 전반에 걸쳐 널리 사용되곤 합니다. 우리의 일 년 역시 낯설게 하기로 바라보는 겁니다. 한 달, 한 달 정리해서 글을 써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글이라는 걸 쓰기 어려워서?' 아닙니다. '생각이 안 나서'예요. 이 회고하는 글쓰기를 해보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쭉 한 번에 쓰는 분이 많지 않아요. 대부분 핸드폰 달력이나 다이어리, 또는 사진첩을 열어서 1월부터 차례로 쭉 넘기면서 회고를 하게 됩니다. 그 말인즉슨, 올 한 해 있었던 사건들은 희미하게 잊은 채로 감정만 남아있는 상태라는 거지요.

그런데 다시 꺼내어 글을 쓰다 보면 '어라?' 싶은 순간이 많습니다. '연초에 일이 이렇게나 많이 몰려 있었어?', '내 컨디션이 여름에 가장 바닥을 찍고 있었구나', '올해는 정말 힘든데 말할 사람이 없었구나. 외로웠나 본데', '나쁜 일만 있었는 줄 알았는데, 여행을 참 많이도 갔네' 나도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게 되지요. 두루뭉술하게 '힘든 한 해'였다고 말하던 것이 점점 구체화됩니다.

이렇게 회고가 구체화될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측은지심이나 기특함, 짠함 같은 감정도 구체화되지요. 비로소 스스로에게 진심을 담아 '애썼다'라고 말해줄 수 있게 됩니다.

인잇 장재열

만약 글쓰기가 어렵다면, 그래프를 그려도 좋아요. 이것은 제 그래프인데요.

1월부터 12월까지 칸을 나누고 매 달마다의 감정 상태나 사건사고를 기온으로 비유해서 점을 찍는 겁니다. 그리고 쭉 이어서 선 그래프를 만드는 것이지요. 중요한 변곡점마다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간략한 키워드를 써도 좋습니다. 그리고는 옆에 작은 포스트잇 하나를 붙이는 거지요. 한마디로 정리한 한 해의 결산 문장을요.

저는 '한파가 지나간 뒤, 눈보라가 한 번 더 왔지만 조금씩 새싹이 피는 중'이라고 정리했습니다. 큰 사건이 많은 해였어요. 하지만 다행히도 잘 버텨냈고 지나갔고 다시 회복을 마주하고 있는 시기랍니다.

제 그래프를 보면서 내뱉은 제 첫마디는 '참 애썼다'였어요. '꾸준히, 그리고 부단히 나를 돌보려 애써왔구나. 한참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을 잘 헤쳐왔구나.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흔들리던 내 자신을 데리고 어찌저찌 잘 살아냈구나' 싶더라고요.

여러분의 한 해는 어떤가요? 그냥 지나치려 하셨다면 얼마 남지 않은 올해, 30분 만이라도 회고의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래요.

자신에게 진심 어린 격려와 위로를 보내는 '망년' 아닌 '송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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