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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여성 대리기사는 이 바닥에서 죄인 아닌 죄인입니다"

[더 스피커] 방치된 노동 현장의 '펜스룰', 누군가에겐 다른 나라 법인 <남녀고용평등법>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여성대리기사 간담회가 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사진출처 : 참여와혁신)
"나는 한겨울을 빼고 골프장이 몰려있는 용인 양지 근처에서 콜을 잡기 위해 출근한다. 매일 이곳은 100여 명이 넘는 법인 대리운전기사들이 콜을 잡기 위해 서울에서 인천에서 몰려든다. 내가 곤지암에 도착하는 시간은 빠르면 오전 11시부터 늦어도 13시까지. 이때까지는 와 있어야 골프 치고 집에 가는 손님들의 낮 콜을 잡을 수 있다. 옆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남성 기사들에게 오더가 왔다는 알람 소리와 진동이 울린다. 그러나 여성 대리운전기사에게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린다."
-50세 여성 대리기사 A씨-

지난 7일, 국회의원 회관 회의실에 대리운전기사들이 모였습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여성 대리운전기사들의 노동 현실을 듣고자 간담회 자리였습니다. 통상 '대리기사' 하면 '남성'이 떠오르지만, 이날 모인 대리기사 여럿은 머리를 짧게 자른 여성들이었습니다. 대부분 40대 중후반~50대에 이르는 여성 대리기사들은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입을 모았습니다.

"우리도 차별 없이 콜을 잡고 싶습니다."
 

20년 베테랑 여성 기사에게도... 고객 거절 없어도 작동하는 '노동 펜스룰'

SBS는 이들 여성 대리운전기사들을 다시 한번 만났습니다. 공식 간담회장에서는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더 들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국회, 방송국, 카메라와 같은 것들이 낯설다는 이들은 약간의 머뭇거림 끝에 입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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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다른 사업을 하다가 잘 안되게 됐어요. 그러면서 2009년에서 2010년도 사이에 제가 대리를 처음 시작했고요. 대리한 지는 지금 13년 차입니다. 여자로서 할 수 있는 게 저한테는 대리더라고요."
-50대 후반 여성 대리기사 B씨-
"3개월 정도 호프집을 운영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 사실 잘 안 된 거죠. 그래서 2003년도에 대리운전을 시작하게 됐어요. 술 마신 사람들 차를 여성이 운전한다는 게 처음에는 망설여졌어요. 근데 되게 나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그거를 한번 해보고 그다음부터 거기서 계속 일을 하게 됐는데 운전을 해보니까 저하고 적성이 딱 잘 맞는 거예요."
-50대 초반 여성 대리기사 C씨-

운영하던 호프집이 문을 닫으면서, 혹은 하던 사업이 기울면서 시작하게 된 대리운전 경력이 어느덧 20년. 경력과 능력이 쌓인 이들은 법인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법인 대리기사' 업계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장벽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 벽은 '여자는 운전을 잘 못할 것'이라는 편견에서 자라난 것이었습니다. 일부 고객들은 여성 기사가 배정된 경우 업체에 항의를 했고, 업체들은 아예 여성 기사에 대한 콜 배정을 피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몇몇 한두 분이 여성 기사가 오면 아마 전화해서 무지 화를 내시나 봐요. 몇몇 분들이 상황실에 전화해서 항의하는 것 때문에 콜을 잡아도 상황실에서는 '고객님들에게 여쭤보고 연락드릴게요' 이러는 거예요. 어제도 두 번 있었고, 하루에 한 세네 번씩 그런 일들이 생겨요."
-50대 초반 여성 대리기사 C씨-

실제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하지만, 업체들은 선제적으로 '펜스룰'을 만들었습니다. 경력이나 능력과는 상관없이, 여성 기사들에게 적은 일감 배정되지 않는 일은 그렇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마땅히 항의를 하거나 하소연하기도 어렵습니다.
"밤 시간대도 우리 기사들은 운행을 해야 되는데, 여자 기사들이 잡게 될 경우는 갑자기 배정된 콜을 빼버린다는 거죠.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해요. 거기에 대해서 토를 달게 될 경우 상황실에서 좋은 경우에는 설명을 해주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거의 한 80% 정도가 '락'이라고 해서 회사의 콜을 운행 못하게끔 잠가버리는 거죠. 그러면 이제 거기에 대한 불이익이 또 많기 때문에 저희 대리기사 입장에서는 함부로 말을 못 하는 겁니다"
-50대 후반 여성 대리기사 B씨-

공기처럼 자리 잡은 성차별에 더해, 자존감 자체를 무너뜨리는 성희롱도 종종 일어납니다. 하지만 일감 배정에서부터 눈치를 봐야 하는 이들이 성희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50대 후반의 베테랑 여성 대리기사 B는 노골적인 성희롱을 겪어도 스스로 '별일 아니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고객님께서 뜬금없이 잘 가다가 '뽀뽀 한번 할까' 이제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저 같은 경우는 그거를 나쁘게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야 되니까요. 고객님한테 이제 '저는 이런 말을 들어서 괜찮고 조금 이해는 하겠지만, 다음에 다른 여자 기사들을 만났을 때는 큰 문제가 될 테니 이런 발언은 좀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50대 후반 여성 대리기사 B씨-

'특고'는 노동자 아니다...남녀고용평등법, 노동법 적용도 어려워

설령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결심을 해도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남녀고용평등법>이라는 이름의 법이 존재합니다. 이 법 1조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지만, 적용 대상은 '근로자'로 한정돼 있습니다. 대리운전기사처럼 한 업체에 전속되지 않고 노동을 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는 다른 나라 법이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조
'이 법은 고용에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고 모성 보호와 여성 고용을 촉진하여 남녀고용평등을 실현함과 아울러 근로자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함으로써 모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성 대리운전기사들의 노동 문제를 대변해 온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명숙 상임활동가는 법 밖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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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숙 / 인권운동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여성 대리기사님들은 여성이라고 하는 소수자적인 위치와 '특고'라는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중적 복합 차별을 받는 위치에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려움에 더 취약하죠. 예를 들면 고객으로부터 어떤 성차별 혹은 성희롱성 발언이나 성추행을 당해도 이거에 대한 형법상으로는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남녀고용평등법상의 성희롱 신고 대상은 되지가 않는 거예요."

'여성'과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중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 문제에 대해서는 주무 관청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노동당국은 '노동자'들의 문제가 아니라며 문제 시정에 미온적이고, 인권위나 권익위 진정을 통한 문제 해결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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