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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특권이자 모험" 《고맙습니다》-올리버 색스 [북적북적]

삶은 "특권이자 모험" 《고맙습니다》-올리버 색스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405: 삶은 "특권이자 모험" 《고맙습니다》-올리버 색스
내게 원소와 생일은 늘 하나로 얽혀 있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내가 원자번호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랬다. 열한 살 때 나는 "난 나트륨이야"라고 말했고(나트륨은 11번 원소이다), 일흔아홉 살인 지금 나는 금이다. 몇 년 전 내가 친구에게 여든 살 생일 선물로 수은이 든 병을 주었더니-새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는 특수한 병이었다- 친구는 별 희한한 걸 다 준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중에 내게 멋진 편지를 보내어 이런 농담을 전했다. "건강을 위해서 매일 아침 조금씩 섭취하고 있다네."
올리버 색스, 《고맙습니다》 中

이 글을 처음 읽었던 몇 해 전 연말, 저도 찾아보았습니다. 새해에 저는 무슨 원소인지를요. 이후로도 매년 '올해 나는 무슨 원소인가' 확인해보곤 하는데요, 2024년의 저는 '은'입니다. 금보다 매력적인 것 같아 흡족합니다. 새해엔 요란하진 않지만 잔잔히 기분 좋은 일들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올해부터 생일이 지나야 한 살을 먹는 '만 나이'로 바뀌었지만 저는 여전히 한 해가 바뀔 때 다 같이 한 살 더 먹는 시스템이 아직 익숙합니다. 나이에 숫자 하나가 더해지는 것이 한 해를 어쨌든 무사히 보냈다는 매듭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먹는 게 '나이'같지만 우리가 언제까지 '내년'이라는 걸 맞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렇게 지난해와 새해의 오버랩을 기쁜 마음으로 맞게 된 데에는 오늘 소개하는 이 책의 영향도 꽤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2023년 12월 24일 <북적북적>의 책은 올리버 색스의 《고맙습니다》(김명남 옮김,알마 출판사)입니다.

올리버 색스는 신경과 의사이자 작가입니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비롯해 《뮤지코필리아》, 《목소리를 보았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깨어남》, 《온 더 무브》, 《모든 것은 그 자리에》 등 여러 책을 통해 환자들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로 전세계 많은 독자에게 큰 울림을 줬습니다.

1933년생인 그는 2015년 8월 30일,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습니다. 올리버 색스는 2005년에 진단받았던 안구흑색종이라는 암이, 2013년 간으로 전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그가 생의 마지막 2년간 쓴 글 중 4편을 묶은 책이 바로 《고맙습니다》예요. 영어 제목은 《Gratitude》, 한국어 번역본은 2016년에 나왔습니다. 전체 페이지가 62쪽인 아주 얇고 작은 책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절대 작지 않습니다.

이 책 속 네 편의 글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응축돼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 <수은>과 <나의 생애> 중 일부를 읽어드립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올리버 색스, 《고맙습니다》 中

이 부분은 언제나 뭉클합니다. '특권이자 모험'- 우리도 이걸 누리고 있는 것이구나 싶어집니다. 특권을 특권인지 모르고, 모험이 두려워 동굴 속에 웅크리고 있을 게 아니라 마음껏 누려야 하는 것이구나 하고 말이죠.

저자는 삶에 대한 초연함, 이제 곧 이 삶을 마무리한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 갖게 되는 태도에 대해 썼습니다. 삶에서 명확한 한 가지는 '유한성'이지요. 누구나 끝이 있지만 우린 그걸 대부분 잊고 마치 삶이 계속될 것처럼 착각해 굉장한 욕심을 부리기도 하고 더 지혜로울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해버리기도 합니다. 유한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조금 더 초연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초연하다'는 건 포기나 냉소가 아닙니다. 올리버 색스의 표현대로 '초점과 시각이 명료해'지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죽음을 앞두고 썼지만, 어둡기보다는 온화한 책, 매년 다시 읽어도, 그 나이의 나만큼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책, 오늘 함께 읽어본 책 《고맙습니다》였습니다.

북적북적 청취자 여러분 모두 행복한 성탄절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편집- 강소진 PD
*출판사 '알마'의 낭독허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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