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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체감상 불경기'? 미국 경제가 직면한 더 큰 문제들

[뉴욕타임스 칼럼] This Economy Has Bigger Problems Than 'Bad Vibes,' By Tressie McMillan Cottom

스프 뉴욕타임스 칼럼
 

*트리시 맥밀란 커텀은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 임금은 꾸준히 오른다. 실업률은 낮다. 소득 불평등은 완화되고 있다.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비관적인 전망은 대부분 지나친 걱정으로 판명됐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지금의 경제 지표라면 미국인이 바이든 행정부에 감사 메시지와 함께 희망의 선물 보따리를 보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여당인 민주당도 다음 선거에서 잘 나가는 경제 덕분에 많은 표를 기대해도 좋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소비자 신뢰도 조사 결과는 전혀 딴판이다. 최근 뉴욕타임스와 시에나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등록된 유권자 가운데 현재 경제 상황이 "아주 좋다"고 답한 응답자는 2%에 불과했다. "좋다"고 답한 응답자도 16%에 그쳤다. 각종 경제 지표를 보면 현재 미국 경제는 분명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이를 전혀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우선 언론이 현실을 오도했다는 가설이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경제가 별문제 없이 잘만 굴러가고 있는데 언론에서 하도 경제가 안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사람들이 정말 경제가 안 좋다고 착각하게 됐다는 거다. 카일라 스캔론은 지난해 "체감상 불경기(vibe-cession)"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실제 경제 지표와 사람들이 체감하는 경기 사이의 차이를 뜻하는 말로, 특히 실제 경기는 좋은데 사람들이 안 좋다고 느끼는 상황을 가리킨다. 그때부터 소비자 신뢰도는 경제 기사에 단골로 등장했다. 언론은 사람들의 잘못된 현실 인식이나 정치적 양극화를 탓했다. 뉴스레터 오프 메시지(Off Message)를 발행하는 브라이언 뷰틀러는 아예 소셜미디어와 가짜뉴스가 '경제가 나쁘다'는 믿음을 강화하는 주범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경제학자였던 클라우디아 삼도 부정적인 정보에 더 잘 반응하는 인간의 편견과 관심 경제의 잘못된 조합이 소비자 비관론을 낳는다고 썼다.

바이든 행정부는 튼튼한 경제를 이번 임기의 성과로 내세워 2024년 선거에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 만약 지금처럼 경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가시지 않는다면, 도널드 트럼프가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다. 트럼프는 늘 하던 대로 경제에 대한 비관론을 십분 활용해 바이든을 공격할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성공한 사업가 출신이며, 임기 때 경제도 잘 이끌었다는 점을 늘 치적으로 내세우곤 했다. 현재 공화당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인 트럼프는 법정 공방을 치르고 있지만, 2024년 선거 전에 트럼프가 감옥에 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바이든 캠프는 경제에 관한 한 바이든보다 트럼프가 낫다고 답한 사람이 더 많았던 최근 뉴욕타임스/시에나 여론조사 결과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왜 사람들은 지금의 경기 호황을 바이든의 공으로 돌리는 데 이토록 인색한 걸까?

'체감상 불경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겉보기엔 일리가 있지만, 미국인을 다소 수동적으로 그린다는 점에서 아쉽다. 우선 이 설명은 유권자들이 실제로 느끼는 불만을 철저히 외면한다. 또한, 문제를 지적할 뿐 앞으로 나아가는 법에 관해선 아무 말이 없다. 경기가 나쁘게 느껴지면 뭘 어떡해야 한단 말인가? 퇴마사라도 고용해 경기에 드리운 음침한 기운을 몰아내는 굿이라도 벌여야 하나?

거시경제 지표에 매몰되지 않고 그 너머를 통해 경제 전반을 바라본다면 지금의 경제 상황을 좀 더 짜임새 있고 정확하게 진단, 설명할 수 있다. 만약 사람들이 언론에 휘둘리지 않고, 경제의 펀더멘탈에 관해 헷갈려하지 않으며, 민주당을 향한 편견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 경제가 누구를 위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기제가 변화한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미래에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설명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런 설명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정확히 무엇을 소비하며, 이를 소비하는 과정이 얼마나 비싸고 번거로운지에 주목한다. 경제 활동의 중요한 축이 되는 소비는 대개 의식주와 연료로 쓰는 에너지 등 우리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행위다. 거시경제 지표만 보면, 펀더멘털이 튼튼한 만큼 이런 품목에 관해서도 긍정적인 신호만 드러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에게 생필품을 구하고 소비하는 과정이 얼마나 불편하고 고통스러운지 생각해 보면, '체감상 불경기'라는 표현은 문제의 심각성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치솟은 대출 이자에 만연한 공급 부족 때문에 집을 사는 과정은 엄청난 스트레스다. 장바구니 물가도 너무 비싸다. 의식주가 생필품의 전부는 아니다. 비싸고 관리하긴 어려운 보육비, 의료비에 식비, 교통비, 각종 주문과 배달비 등 편의 비용까지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한둘이 아니다. 설사 가격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비싸지 않아도 소비 과정에서 꼭 크고 작은 문제가 발목을 잡곤 한다. 소비자 경험이 형편없다는 말을 좋게 표현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원하는 시간에 서비스를 예약하는 건 가끔 운이 아주 좋을 때나 가능하다. 고객센터는 늘 먹통이다. 내가 소비한 물건이나 서비스가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기도 어렵고, 문제를 발견해도 이를 해결하거나 보상받을 길은 처음부터 막혀 있다. 업계 전문가들이 현재 소비자 브랜드 충성도는 매우 낮고, 반대로 소비자들의 분노가 매우 높다고 분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긴급히 시행된 미국 구제계획(American Rescue Plan)은 근래 미국에 없던 사회적 안전망을 일시적으로나마 구축하는 계기가 됐다. 수많은 미국인은 세금이 이렇게도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맛보기'로 깨달았다. 경기 부양책의 일환으로 투입된 대규모 자금은 현재 젊은 세대의 조부모, 증조부모 세대가 맛본 위대한 사회 시절의 투자에 버금가는 일이었다.

육아에 드는 비용을 정부가 책임졌고, 각종 지원금이 현금으로 내 통장에 바로 입금됐으며, 식료품비마저 정부가 일부를 지원했다. 세입자들은 월세를 마련할 길이 막막해져도 월세를 못 낸다고 세입자를 쫓아내지 못하도록 재빨리 개정된 법 덕분에 거리로 쫓겨날 걱정을 덜었다. 회사들은 사무실로 출근을 강제하지 않는 유연한 재택근무 규정을 도입했다. 이 모든 게 합쳐져 저소득층은 팬데믹으로 경제가 갑자기 멈췄음에도 급격히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었고, 나아가 잠시나마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중산층 노동자들도 내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경제 정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미국 구제계획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부 지출이 크게 늘면서 경제 전반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거세지자, 의회는 법안에 명시된 투자들을 줄줄이 철회하거나 예산 지급을 중단했다. 몇 세대 만에 처음으로 (육아비 지원을 포함해) 미국 정부가 사회의 재생산에 세금을 대대적으로 투입했던 실험은 그렇게 끝이 났다.

사회의 재생산은 비단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 유형의 돌봄노동과 사회가 굴러가는 데 필수적인 모든 인간관계는 사실 정부 지원이 있든 없든 사회가 유지되려면 필요한 것들이다.

학자금 대출 상환 유예가 끝나 다시 빚을 갚아야 하게 된 사람을 생각해 보자. 이 사람은 육아 비용으로 책정해 둔 돈을 줄여서라도 빚을 갚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육아에 한 푼도 돈을 안 쓸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대출을 갚기야 하겠지만, 이 상황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육아에 쓰는 돈을 줄이면 신경 쓸 게 훨씬 많아진다. 새로 등록한 어린이집이 괜찮아야 하고, 갑자기 터무니없는 의료비 청구서가 날아오지 않아야 하며, 월세가 갑자기 올라도 곤란하다.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할 때만 각종 정부 지원금이 사라지더라도 부담이 덜하고 불만이 덜 쌓인다. 그러나 정부 지원금 지급이 중단되자 예상대로 사람들이 의존하던 수많은 서비스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괜찮은 가격에 살 수 있는 물건이나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들도 금세 씨가 말랐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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