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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군에 맞선 군인들…고통의 삶 '재조명'

<앵커>

44년 전 12월 12일. 마지막까지 신군부 세력을 막으려 애썼던 '주요 지휘관'들이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도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장태완 당시 수도경비 사령관과 김진기 헌병감 등이 핵심 인물인데요.

끝까지 고통받았던 그들의 생전 목소리를 김종원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12.12 군사 반란에 끝까지 맞섰던 장태완 당시 수도 경비 사령관은 신군부 반란 후 누구보다 불행한 가족사를 겪었습니다.

[장태완/12·12 당시 수도경비사령관 (1993년 9월 국회 증언) : (가택 연금 당시) 술만 한 잔 먹으면 뭐 아령이고 역기고 다 보이는 대로 보안사 이놈들 때려죽인다고 하고 막 난리를 치고. 그런 분탕을 지켜보는 가운데서 그놈(아들)이 서울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로 차츰 저도 그놈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고 했는데. 이놈이 떡 죽어버렸다 이겁니다. 눈에 보이는 게 하나도 없죠.]

갑자기 실종된 아들이 석연찮은 이유로 시신으로 돌아왔을 때 삶은 더 지옥이 됐습니다.
장태완

[장태완/12·12 당시 수도경비사령관 (1995년 11월 인터뷰) : 그걸 안고 이제 이 차에 올라오는데 얼굴이 찌부러져 있는데 지 어머니가 어떻겠느냔 말이야. 그래서 내 혀로 내 침으로 내가 그거 참 이 훈기로서 그놈 눈을 녹이고 이렇게 해서 막 이렇게 하다 보니까 그놈 눈 안에서 이만한 얼음덩어리가 튀어 나오더라고. 이놈이 세상을 마지막 하직하면서 애비를 원망하면서 흘린 마지막 애비에게 주는 가슴 아픈 눈물인가.]

반란 당시 전두환 체포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김진기 당시 육군본부 헌병감.

군사 반란 세력의 전리품이 되고 싶지 않다며 스스로 군복을 벗고 예편을 합니다.

신군부가 득세하는 꼴이 보기 싫다며 섬에 들어가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노태우 정권이 제안한 여러 보직을 모두 거절했습니다.

[김진기/12·12 당시 육군본부 헌병감 (1993년 9월 국회 증언) : 그때 그 반군에 가담을 했거나, 또 그것을 진압하는 쪽에 있었던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 정정당당하게 법 앞에서 진실을 가려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것을 역사에 맡긴다고 해서 유야무야 하게 넘어가 준다면 국가에 대한 범죄에 대해서 그것은 면죄부를 줄 뿐만 아니라 그 반란을 정당화시켜주는 결과가 됩니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체포를 막다 반란군 총탄에 숨진 김오랑 중령은 야산에 암매장됐습니다.

뒤늦게 현충원으로 옮겨졌지만, 부모님과 아내 모두 세상을 떠난 한참 뒤인 2022년에야 뒤늦게 전사자로 인정됐습니다.

(영상취재 : 김현상, 영상편집 : 유미라)

▶ '12·12' 육군본부 지키다 전사…44년 지나도 여전한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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