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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피격 전말…사망했는데 '생존' 발표하며 "자진월북 정황 알려라"

서해피격 전말…사망했는데 '생존' 발표하며 "자진월북 정황 알려라"
▲ 서해 최북단 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후 북한군에 피격·사망한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이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

2020년 9월 서해를 표류하던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가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할 때까지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감사원이 오늘(7일) 발표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주요 감사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통일부, 합동참모본부(합참), 해양경찰청(해경) 등은 사건 당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이 씨 피살 후 정부 당국자들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기밀 자료를 삭제하고, 불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이 씨의 사망이 '자진 월북'에 의해 초래된 것으로 몰아간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2020년 9월 22일 오후 5시 18분, 안보실은 '우리 공무원이 북한 해역에서 북측에 발견됐다'는 군 보고를 받았습니다.

전날 새벽 서해 소연평도 인근에서 실종됐다가 이날 오후 북한 황해남도 해역에서 발견된 이 씨는 당시 약 38시간 동안 바다를 표류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습니다.

북측은 이 씨를 구조하지 않고 방치했습니다.

안보실도 이런 정황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상황의 심각성을 판단하기 위한 '최초 상황 평가 회의'는 열지 않았습니다.

국방부는 이 씨의 신변 안전 보장을 촉구하는 대북 전통문을 즉각 발송하지 않았습니다.

안보실에서 상황을 전달받은 해경은 경찰 등 관계기관에 협조를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이 씨의 실종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이 씨가 북측에서 발견된 사실조차 모른 채 수색을 이어갔습니다.

경찰이 수색한 해역은 이 씨가 발견된 곳에서 27㎞ 떨어진 실종 해역이었습니다.

통일부 담당 국장은 오후 6시쯤 관련 정황을 파악하고도 이를 장·차관에게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안보 사령탑이었던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과 서주석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오후 7시 30분이 되기 전에 퇴근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강건작 전 국가위기관리센터장은 오후 7시 30분쯤 퇴근했습니다.

그로부터 2시간여가 지난 오후 9시 40분부터 10시 50분 사이, 북한군은 이 씨를 사살하고 소각했습니다.

안보실은 이튿날인 9월 23일 오전 1시 관계장관회의에 서해 공무원 피살 사실에 대한 보안 유지 지침을 내렸습니다.

같은 날 2시 30분 국방부는 합참에 관련 비밀 자료 삭제를 지시했고, 합참은 3시 30분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밈스·MIMS) 담당 실무자를 사무실로 호출해 영구 보존용 첩보 보고서를 삭제했습니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 1시 30분 이 씨가 생존 상태(실존 상태)인 것처럼 작성한 안내 문자를 기자들에게 발송했습니다.

이어 오후 4시 35분에는 이 씨 생존 당시에는 발송하지 않았던 대북 전통문을 띄웠습니다.

나아가 안보실은 이 씨의 자진 월북 정황을 언론에 알리라는 지침도 내렸습니다.

국정원과 국방부는 초기에는 시신 소각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나중에 '소각 불확실' 또는 '부유물 소각'이라고 말을 바꿨습니다.

해경은 다음날인 9월 24일 1차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 "이 씨의 자진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해경은 이 씨가 슬리퍼를 벗어둔 채 실종됐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어 자진 월북 가능성을 제시했으나, 이 슬리퍼가 이 씨의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국정원은 9월 27일 이 씨의 자진 월북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도 월북 판단을 기초로 한 안보실의 대응 지침을 방치했습니다.

이후 이어진 9월 29일 2차 수사 결과 발표에서 해경은 "이 씨가 월북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해경은 이 씨가 인위적인 노력으로 북한 해역에 도달했다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표류 예측 결과 분석과 수영 실험 결과를 왜곡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기자단 백브리핑에서는 이 씨의 도박 사실과 도박 빚 등 사생활을 추가로 공개했습니다.

나아가 10월 22일 3차 수사 결과 발표 때는 비공식 심리분석 결과 등을 근거로 내세워 "이 씨는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이때 해경은 이 씨에게 어린 딸과 아들이 있다는 점은 밝히지 않고 도박·이혼 등의 부정적 환경만을 제시해 심리분석을 받아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조류 예측 분석 관련 정보공개청구에도 "자료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거짓 답변을 내놨습니다.

감사원은 "관계 기관은 서해 공무원 생존 당시 매뉴얼에 따른 신변 보호 및 구호 조치를 검토·이행하지 않았다"며 "서해 공무원의 피살·소각 사실을 인지한 뒤에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비밀 자료를 삭제하고 부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자진 월북 여부를 부당하게 판단·발표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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