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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휴대폰 개통"…명의도용 사기에 신용불량자 전락

명의도용 당한 A씨가 받은 통신 요금 납부 촉구 메시지 (사진=A씨 제공, 연합뉴스)
▲ 명의도용 당한 A 씨가 받은 통신 요금 납부 촉구 메시지

A 씨는 2년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서민금융 대출 광고를 보고는 게시자에게 신분증 사진과 연락처, 계좌번호 등을 넘겼습니다.

그러나 A 씨에게 돌아온 건 대출 실행이 아닌 '휴대전화 개통' 소식이었습니다.

누군가 몰래 A 씨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했습니다.

A 씨는 엿새 뒤 KT에 "명의도용을 당했다"고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KT 상담원은 A 씨에게 문제의 휴대전화가 온라인 인증 방식으로 개통됐기에 민원 접수가 불가능하다며 경찰서로 사건을 접수하라고 안내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휴대전화를 개통하기 위해 인증한 휴대전화는 '대포폰'이었고, 단말기 배송지 역시 '존재하지 않는 주소'였기에 경찰에서도 손쓸 방법이 없었습니다.

'개인정보 탈취 후 휴대전화 불법 개통→배송지 허위로 입력→중간에서 가로채기'하는 수법의 치밀하게 짜인 범죄.

A 씨는 전자상거래와 비대면거래가 활성화된 현대 사회의 전형적인 개인정보 도용 '사기 피해자'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기곗값, 이자, 위약금, 소액결제 등 230만 원에 이르는 통신 요금을 내지 않아 독촉받는 '채무자'였습니다.

가까운 직영점에 찾아가 보기도, 고객센터로 전화하기도 여러 차례.

이리저리 전화만 돌아갈 뿐 어느 곳 하나 속 시원하게 책임 있는 설명을 해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경찰에서도 사건을 관리미제(피의자를 특정할 단서를 확보하지 못해 추가 단서가 확보될 때까지 수사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관리하는 사건)로 분류하면서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자 A 씨는 결국 '법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법 개통 과정에서 인증한 휴대전화가 대포폰이고, 배송 주소지가 실제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점에 대해 KT가 주의를 기울였다면 당연히 알 수 있었던 만큼 전자문서법이 규정한 적법한 '전자문서 송수신'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할부거래법을 봐도 일주일 안에 명의도용 사실을 KT에 알렸으므로 청약을 철회했다고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A 씨 주장을 뒷받침할 'A 씨가 아닌 성명불상의 제삼자가 개통한 것'이라는 취지의 경찰 수사관의 진술서도 있었습니다.

A 씨는 이 같은 법률 근거와 증거를 갖고 KT를 상대로 '통신요금 230여만 원을 값을 이유가 없다'(채무부존재 확인)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A 씨 측은 법정에서 "KT에 본인인증을 해준 사실이 없으므로, KT가 A 씨에 관한 본인 인증 서비스 패스(PASS) 인증과 계좌인증을 한 구체적인 과정에 관해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KT는 "온라인으로 계약을 체결하면서 PASS 본인확인 서비스에 의한 본인확인 절차와 계좌인증 절차를 거쳤다"며 유효한 계약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양측 주장을 살핀 춘천지법 원주지원은 지난달 초 A 씨 손을 들어줬습니다.

KT가 온라인 개통 시 본인인증 절차를 거치도록 요구하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경찰 수사관 진술서나 KT가 낸 신규 가입 신청서를 보면 A 씨가 아닌 제삼자에 의해 본인인증이 이뤄졌다고 볼만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그사이 계약과 얽힌 신용정보회사로부터 하루에 두세 통씩 납부를 독촉받으며 채권추심을 당한 A 씨는 통신 요금 체납을 이유로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습니다.

사건 발생 2년 6개월 만에 '1심 승소' 판결을 받아 든 A 씨 가족은 오늘(7일) "비대면 계약을 범죄자가 악용한 경우 피해자를 보호할 수단이 충분하지 않다"며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누구나 범죄의 희생양이 될 수 있어, 기업에서 이런 위험을 제거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KT 관계자는 "통신사들이 명의도용 관련 담당 부서를 갖추고 있으나 고객이 도용 피해를 주장할 경우 조사 권한이 없어 경찰로 사건을 신고, 접수하도록 안내하고 있다"며 "경찰 조사 등을 통해 본인 정보가 탈취되고, 이를 통해 온라인으로 명의도용이 발생했다는 확인서를 받아오면 적극적으로 구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A 씨 사례처럼 사건사고확인서를 받는 데 장시간이 걸리는 경우 채권 회수를 보류하는 등 이렇다 할 구제 방법이 없다는 지적에는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답했습니다.

(사진=A씨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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