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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영화 '서울의 봄', 뒷이야기도 흥미진진

(SBS 연예뉴스 김지혜)

스프 주즐레
*이 글에는 영화의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 편의 영화에서 오프닝과 엔딩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오프닝과 엔딩은 관객이 이야기로 들어갔다가 빠져나오는 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관객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빨아 당기는 건 감독과 배우의 몫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향을 감독이 정한다면 배우는 그 안에서 연기라는 춤으로 관객에게 희로애락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좋은 영화는 이 모든 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질 때 탄생한다.

여기,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아는 영화 한 편이 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10.26으로 시작해 12.12로 결말을 맺은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이다. 사건의 시작과 끝은 교과서에서도 배웠다. 그러나 그 일촉즉발의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관심도 크게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김성수 감독
1979년 12월 12일, 사건의 주무대인 육군참모총장의 한남동 공관 근처에 살았던 김성수 감독은 44년 후 목격자에서 스토리텔러가 됐다.

그는 단순히 역사를 재연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서울의 봄'은 익히 알려진 사건에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했다. 사건이 벌어진 9시간의 타임라인에 반란군과 진압군의 대결이라는 큰 틀을 짰다. 여기에 캐릭터를 파고들며 김성수가 가장 잘하는 '인간에 대한 탐구'를 보여줬다.

영화는 후반부에 들어 전두광(황정민)과 이태신(정우성)의 대립을 액션 영화의 스케일과 박진감으로 묘사한다. 전방의 공수부대를 서울로 진입시켜 권력을 장악하려는 전두광의 반란군과 남은 병력을 끌어모아 반란군을 막아내려는 이태신의 진압군이 서울 광화문에서 마주하기까지의 스펙터클은 이 영화의 백미다. 빠른 컷 편집과 분할화면, 조명의 뚜렷한 명암대비 등을 통해 관객이 사건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게끔 한 영화적 테크닉도 훌륭하다.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가 이토록 뜨겁고 역동적인 장르 영화로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영화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의 확고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재미가 없으면 그냥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생각했어요. 무려 44년 전의 사건이에요. 요즘 사람들에겐 관심이 없는 옛날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죠. 전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고, 스토리텔러잖아요. 이야기를 재밌게 전달해야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관객이 영화를 통해 '와, 내가 이 상황에 들어와서 현장을 목도하고 있구나'라는 긴장된 흥분상태를 유지시켜줘야 한다는 게 저나 배우들, 스태프들의 목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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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9시간에 걸쳐 벌어진 쿠데타 끝에 반란의 주역들은 국가 권력을 찬탈했고 민주화를 역행했다. 그러나 그 사건은 다른 결말을 낼 수도 있었다. '서울의 봄'은 일촉즉발의 현장에 영화적 상상력을 부여해 어떤 사람들은 역사의 퇴보를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던 건, 현재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동시대성이 없기 때문이었다. '서울의 봄'이 가진 영화적 힘은 박제된 역사를 끄집어내 새로운 평가를 하게 하는 데 있다. 어떤 관객들은 과거를 통해 현재의 거울을 보기도 한다. 이 영화를 향한 관객의 열광에는 분노, 울분의 감정이 크게 포함돼 있다. 사법부는 역사의 죄인에게 제대로 된 심판을 하지 못했지만 영화라는 대중 예술은 그날의 사건을, 그 사람들을 재심하는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김성수 감독은 '비트', '태양은 없다'로 1990년대와 2000년대까지 충무로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로 불렸다. 최근 '아수라'를 만들며 녹슬지 않은 연출력과 감각을 선보인 김성수 감독은 '서울의 봄'으로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최고의 역작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의 봄'은 김성수 감독에게도 조금은 이례적인 영화다. 데뷔 이래 단 한 번도 실화 기반의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이 없으며 근·현대사를 조명한 영화를 연출한 적도 없다. 김성수 감독은 한 차례 고사 끝에 이 영화의 연출직을 수락하며 "운명처럼 여겨졌다"라고 말했다.

김성수 감독과 배우들이 만든 '서울의 봄'의 뒷이야기를 공개한다. "역사가 스포일러"라지만, 영화를 만든 이들이 전하는 제작 비화는 알고 보면 더 재밌다.
 

10.26 다룬 '남산의 부장들'보다 먼저 기획됐다

'서울의 봄'은 12.12 군사반란을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상업영화다. 물론 과거에도 전두환 시대를 다룬 영화들은 있었다. 1987년 6월의 민주화 운동을 다룬 '1987'(2017)이 있었고,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화려한 휴가'(2007), '택시 운전사'(2017)가 있었다. 또한 '그 사람' 암살 시도를 그린 '26년'(2012)과 '헌트'(2022), '그'의 태동을 알린 '남산의 부장들'(2020)도 만들어졌다. '서울의 봄'은 전두환을 주변 인물이거나 '보이지 않은 힘'으로 다룬 것이 아니라 핵심 인물로 등장시킨 첫 번째 극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작품은 '남산의 부장들'을 만든 영화사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제작했다. 이로 인해 하이브의 근·현대사 시리즈도 조명받고 있다. 1979년 10.26 사건을 다룬 '남산의 부장들'이 시간적으로는 조금 더 앞선 이야기이지만 기획은 '서울의 봄'이 먼저 됐다.

영화를 제작한 하이브미디어코프의 김원국 대표는 "개인적으로 근, 현대사에 관심이 많다. 12.12 군사반란은 내가 학생 때 벌어진 일이고 아버지 친구 중 하나회 회원도 계셔서 남다르게 다가왔다. 하룻밤, 단 9시간 만에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급작스럽게 바뀌지 않았나. 매우 중요한 사건이고, 영화의 소재로서도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남산의 부장들'보다 앞선 10년 전부터 이 시나리오를 개발했다"라고 밝혔다.

김성수 감독은 배우 캐릭터를 연출하는 데 탁월할 역량을 가진 연출자다. 특히 전작 '아수라'에서는 수많은 악인들이 한데 엉키는 아사리판을 매력적으로 연출하며 극찬을 받았다. 김원국 대표는 주저 없이 김성수 감독에게 '서울의 봄' 연출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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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를 받은 김성수 감독은 거절 의사를 전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초고부터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이었다. 뛰어난 작가들이 그날의 이야기를 굉장히 단단하게 썼더라. 다만 역사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있었다. 나는 영화적인 상상력을 더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김성수 감독은 고사 이후에도 이 이야기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약 10개월 후, 김원국 대표에게 장문의 메일을 보내 시나리오의 방향성을 새롭게 제시했다.

'서울의 봄'은 홍인표, 홍원찬, 이영종, 김성수 총 4인이 각본을 썼다. 김성수 감독이 연출하기로 결정하고 각본에 참여하기 전까지 약 20고의 수정본이 있었다. 현재의 이야기틀이 완성된 건 김성수 감독이 각본에 참여하고 난 뒤다. 김성수 감독이 각본에 있어 가장 많이 힘을 준 캐릭터는 이태신이다.

"이 영화가 승리의 기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역사에 있는 인물이지만 좀 더 영화적인 캐릭터를 부여해 그들이 승리하는 순간에 "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도, 군인으로서도 자격이 없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관객들이 그 사람을 통해 호흡할 수 있고, 단순히 그들의 승리를 자축하는 영화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실존 인물에서 이름도 바꾸고, 상황도 바꾸고, 인물이 움직이는 동선도 바꿨다."
 

"악의 끝판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황정민의 결기·정우성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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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은 전두광의 영화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놀라운 결과물이다. 이태신이라는 인물이 반대 축에서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밖에 약 60명의 군인 캐릭터들이 각각 전두광과 이태신의 진영에서 명령과 회유, 겁박의 가해자이자 분열과 변심의 대상자로 훌륭한 연기 앙상블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전두광 캐릭터의 존재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황정민의 전두광이 있었기에 '서울의 봄'이 지금과 같은 완성도로 완성될 수 있었다. 김성수 감독 역시 "황정민이 캐스팅을 수락하면서 영화 '서울의 봄'이 시작된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위대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이 캐스팅을 수락하기 전에 적잖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를 만났을 때는 아무 말 없이 '할게요' 한마디만 하더라. 배우의 결행이었다. 그래서 난 '정민 씨가 이 역할을 해주면, 정말 영화를 잘 만들 자신이 있다. 믿어 달라'라고 했다. 그러니 '알겠어요. 감독님이 영화 잘 만들어 주시겠다고 했으니까 저는 '악의 끝판왕'을 보여주겠습니다'라고 하더라. 나에 대한 격려였으나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모든 리스크를 안고 할 테니까 너 영화 잘 만들어'라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정민 씨가 출연을 수락했을 때 심지에 불이 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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