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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회사 옮기더라도 '일본' 떠나지 않도록…민간의 노력

일손전쟁② '죽을 때까지 살고 싶은 나라'로…이민 사회 도약하는 일본

[취재파일] 회사 옮기더라도 '일본'  떠나지 않도록…민간의 노력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취재하면서 '그래서 더 나은 대안은 뭘까?' 고민이 깊었습니다. 이미 지방을 중심으로 농업과 제조업 등에서는 외국 일손 없이는 일이 제대로 돌아가기 어려울 만큼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온 존재이지만 외국인 노동자를 진정한 우리의 이웃으로, 동료로 바라보고 있는지는 물음표가 따라붙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숙소와 열악한 처우, 높아지는 외국인 산재 비율은 여전히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었습니다.

외국 인력 확보는 '사람이 오는 일'…사회문화적 권리도 중요

일본, 외국인 인력 유치

일본에서도 외국인 노동자 도입에 대한 다양한 찬반 의견이 존재합니다. 고용주에 의한 폭행 문제나 일터 이전을 둘러싼 갈등이 종종 언론에 다뤄지기도 하고요.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문화도 남아있습니다. 다만 일본이 우리와 달랐던 점은 '이민 사회로의 도약'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는 겁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내국인 직원과 동일하게 대하는 것은 그들이 '사람'이기에 당연한 것일 뿐, 어떤 시혜나 배려의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본국보다 급여를 많이 받는 셈이니 이 정도 대우는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 일부 남아있는 우리와 대조적이었습니다. 일본에 정착할 외국인 노동자를 '한 사람으로' 어떻게 대우하는지는 한 개호 시설을 취재하면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 개호 인력 늘리되 "서비스 질 저하 없도록"


일본이 외국인 도입 정책을 가장 집중하는 분야는 '돌봄 서비스'입니다. 우리의 요양 서비스와 비슷한 말인 '개호' 분야 인력 부족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가 65세 이상의 고령자를 돌보는 '노노(老老)개호' 비율이 63.5%를 기록했고, 간병이 필요한 상태지만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도시지역 '개호난민'도 2025년에는 13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본, 이민, 해외 인력

그렇다고 인력을 무조건 많이 받아들이겠다는 건 아닙니다. 고령자 돌봄 노동은 다른 산업 분야에 비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어서 더 높은 수준의 의사소통 능력과 전문성을 요구합니다. '더 많은 개호 인력을 확보하되,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는 것'. 일본 정부가 세운 원칙입니다. 대신 숙련된 외국 인력이 들어올 수 있는 경로는 다양화했습니다. 2008년부터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3국과 협정을 맺어 개호 관련 학교 졸업 인력을 들여오는 ‣EPA 제도 ‣기능 실습생 분야 ‣개호 재류 자격, 2019년에는 ‣특정 기능 비자까지 신설해 개호 외국 인력 확대에 힘을 쏟았습니다.

시즈오카현 후지시의 소규모 거택개호시설을 찾아갔습니다. 우리나라의 주간보호센터와 비슷한 노인요양시설로 서른 명 정도의 노인이 머무는 시설입니다. 이 시설의 이름은 '2인 3각', 후지산과 그 앞을 지나는 신칸센이 한눈에 보이는 산골에 위치한 시설입니다. 이곳엔 미얀마 출신 노동자 3명이 기능실습생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기능실습생으로 3년 일하면 향후 특정 기능 비자 자격을 충족할 수 있습니다. 개호복지사 자격증을 획득하면 영주권을 획득할 수도 있어서 미얀마 출신 기능실습생 소소에이 씨는 퇴근 후 자격증 공부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개호복지사 합격률은 일본인의 경우 60%, 외국인은 아직 10%가 채 되지 않지만 자격증 취득을 적극 장려하는 분위기입니다.

쾌적한 기숙사 제공…"고급 인력 확보하려면 이 정도는 당연"

일본 기능실습생이 머무는 기숙사

기능실습생이 머무는 기숙사에도 직접 방문했습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이어서 이들이 머무는 숙소 역시 어느 정도 낙후됐을 거라는 생각은 완전한 선입견이었습니다. 요양 시설에서 걸어서 2분 거리 기숙사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월세 약 2만 엔, 우리 돈 20만 원으로 전체 2층 건물 1인 1실에 공유주방까지 한눈에 봐도 깨끗한 숙소였습니다. 개호시설 관계자는 최근 심해지는 인력난으로 숙소 비용을 더 낮춰줄 고민도 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기능실습생은 '가능하면 오래 일본에 머물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민 사회' 향한 민간의 노력…진정한 이웃으로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모습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도쿄에서 약 130km 떨어진 도치기현 우츠노미야 시에 있는 오리온전문학교는 IT에 특화된 일본의 고등교육기관입니다. 한국의 전문대학과 비슷한데 개교 20년을 맞은 이 학교에는 현재 외국인 56명이 재학하고 있습니다. 파이썬과 자바 등 IT 전문 교육을 주로 하는데, 이곳 졸업생의 취업률은 90%를 웃돕니다. 기술직이 아닌 관리자로 취직하는 비율도 높습니다.

오전 수업이 시작되기 전 교장 이사카와 히사코 씨를 만났습니다. 히사코 씨는 얼마 전 경기도 안산을 찾아 우리나라 제조업의 외국인 고용 현황에 대해서 살펴보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향후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일본 사회는 내국인 만으로는 분명한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학교의 목표는 '사람과 세계와 기업의 연결'. 일본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을 본국에서 직접 데려올 뿐 아니라 교육을 통해 고급 인력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기업이 이 학교에 직접 인력 소개를 부탁하기도 합니다. 앞서 찾아갔던 후지센 기공 역시 이 학교 졸업생들이 다수 재직 중이었습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외국인 채용이 다소 주춤했지만, 최근 들어 다시 구인 문의가 늘고 있다고 했습니다.

후지센 기공

'기업 구인표' 읽는 법 가르쳐…좋은 직장 구하기도 이들의 권리

일본 수업 시간

수업 내용도 인상적이었습니다. 1교시에는 기업 구인표를 정확히 읽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1년에 두 번 월급 인상'과 같이 급여 조건과 각종 복지 혜택을 정확히 읽는 법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겁니다. 어차피 일본어 수업을 하는데 굳이 이런 것까지 왜 수업하는지 물었습니다. 담당 교사는 외국인 노동자 입장에서 기업에 일일이 질문하기 어려운 정보인 데다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알 권리가 외국인에게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외국인을 들여오는데 그치지 않고 이들이 좋은 직장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지역 고용 센터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각종 불법 처우 문제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과도 대조적인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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