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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이 아기를 위한 '최선'은 무엇이었을까?

영국의 선택, 이탈리아의 선택

[월드리포트] 이 아기를 위한 '최선'은 무엇이었을까?
▲ 희귀병 앓던 영국 아기 인디 그레고리

지난 13일, 영국에서 한 아기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생후 8개월 된 아기의 이름은 인디 그레고리. '이 아기에게 무엇이 최선인가?'란 질문에 영국과 이탈리아 정부가 엇갈린 답을 내놓으면서 국제적인 논란의 중심에 섰던 아기입니다.

인디는 지난 2월 '퇴행성 미토콘드리아병'이란 질병을 안고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체내 세포가 충분한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하는 희귀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생 직후부터 인디를 치료해온 영국의 퀸스 메디컬 센터는 지난 9월 더 이상의 치료는 아기에게 고통만 안겨줄 뿐이라며 '연명치료 중단'을 권고했습니다. 질병으로 인해 점진적인 뇌 손상이 발생하고, 결국 아기는 생명유지 장치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태가 될 거라고 의료진은 설명했습니다.

부모는 반발해, 병원을 상대로 법적 투쟁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영국 법원은 병원의 손을 들어줬고, 부모의 항소에도 결정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때 아기의 부모는 한 기독교 단체를 통해 희망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교황청이 운영하는 로마의 아동전문병원인 제수 밤비노 병원이 아기가 계속 치료 받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사를 전해온 겁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사진=이탈리아 총리실 제공, 연합뉴스)
▲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이탈리아 정부도 즉각 호응했습니다. 전통적인 가톨릭 가족 가치를 옹호하는 우파 정당 출신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긴급 내각 회의를 열고, 인디에게 이탈리아 시민권을 부여한다고 밝혔습니다. 제수 밤비노 병원의 치료비도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멜로니 총리는 SNS에 "그들은 작은 인디에게 희망이 많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디의 생명을 지키고 인디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려는 부모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영국 항소법원의 결정은 이번에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지난 10일, 인디를 이탈리아로 보내는 것이 아기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결정이 아니라며 연명치료를 중단하라고 최종 판결했습니다. 연명치료 중단은 병원이나 호스피스 병동에서만 가능하다며, 아기가 마지막을 맞이해야 한다면 집에서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인디 부모의 요청 또한 기각했습니다.

법원은 인디가 자신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이며, 계속되는 의학적 치료 과정에서 빈번한 통증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또 제수 밤비노 병원에서 받게 될지 모르는 새로운 실험적 치료들이 인디의 삶의 질을 개선할 거라는 증거가 없으며, 이 과정에서 인디의 고통과 괴로움은 오히려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영국 법원의 최종 판결 이후 인디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져 생명유지 장치가 제거됐고, 만 하루가 지나기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디의 부모는 자신들을 지원해온 기독교 단체를 통해 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화가 나고 가슴이 아프고 부끄럽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NHS)와 법원이 인디로부터 더 오래 살 기회를 빼앗았을 뿐 아니라 집에서 죽음을 맞을 존엄성마저 앗아갔다"고도 비판했습니다.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SNS를 통해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 가능한 모든 일을 했다. 안타깝게도 충분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앞서 연명치료 중단을 최종 결정한 영국 항소법원의 판결이 나온 뒤 "어린 인디와 그의 가족, 그리고 전쟁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전 세계 모든 어린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입장을 냈습니다.
'연명치료 논란' 끝에 하늘나라로 떠난 영국 아기 알피 촛불 추모 (사진=AP, 연합뉴스)
▲ '연명치료 논란' 끝에 하늘나라로 떠난 영국 아기 알피 촛불 추모 

아기의 연명치료 중단 여부를 둘러싸고, 영국과 이탈리아 사이 논란이 일어난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18년에도 23개월 된 영국 아기 알피 에번스를 둘러싸고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에도 제수 밤비노 병원이 알피의 연명치료 지원 의사를 밝히고 이탈리아 정부도 알피에게 시민권까지 발급했지만, 영국 법원은 알피에 대한 사법 관할권이 영국에 있다며 이탈리아 이송을 허락하지 않았고 연명치료 중단을 최종 결정했습니다. 알피는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한 지 닷새 뒤 숨졌습니다.

'연명치료 중단'은 종교적⋅정치적 신념에 따라 입장이 엇갈리는 논쟁적 주제입니다. 특히 당사자가 스스로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없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연명치료 과정에서 당사자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 정확히 가늠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연명'의 가치를 어떻게 봐야 하는 지에 대한 답도 다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디의 마음도, 알피의 마음도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의 부모가 무엇을 원하는 지만 알 수 있을 뿐이며, 각 정부와 법원, 의료진의 판단을 확인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다른 논쟁적인 주제들처럼, '연명치료 중단'에 대해 우리 사회도 달라진 시대와 사람들의 가치를 반영하는 공론화를 이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인디의 사례에서 보듯이 법과 제도는 때로 개인의 선택을 압도하며, 정답 없는 주제에 대한 답을 시민들에게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사진=AP, 이탈리아 총리실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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