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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량 역대 최소' 빌라의 수난시대…아파트 전셋값 자극 우려도

'거래량 역대 최소' 빌라의 수난시대…아파트 전셋값 자극 우려도
▲ 서울 한 빌라촌의 모습

서울 은평구에 사는 직장인 황 모(34) 씨는 최근 소형 아파트 월세 계약을 했습니다.

월세가 부담스러웠지만 현재 거주 중인 빌라 전세금 2억 7천만 원을 돌려받지 못할까 봐 몇 달간 마음 졸이다 내린 결정입니다.

당초 황 씨는 전세 재계약을 원했지만, 보증보험 가입을 갱신하려면 공시가 하락과 보증보험 가입 요건 강화 등으로 전셋값을 7천만 원가량 내려야 했습니다.

집주인은 내줄 돈이 없다고 버텼습니다.

황 씨는 "집주인에게 전세금 반환 대출을 알아보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설득도 해보다가 결국 집을 옮기기로 했다"며 "다시는 빌라 전세를 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민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온 빌라의 '수난시대'입니다.

다세대·다가구를 중심으로 한 전세사기와 역전세난으로 빌라 기피 현상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서울 빌라 전월세 월간 거래량은 35개월 만에 최소치로 떨어졌고, 올해 들어 매매 거래량은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오늘(13일) 부동산통계정보시스템 '부동산거래현황' 통계에 따르면 올해 1∼9월 전국 빌라(다가구·다세대·연립) 매매 거래량은 6만9천417호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41.5% 감소했습니다.

매년 1∼9월 기준으로 이 같은 거래량은 2006년 부동산거래통계(주택) 작성이 시작된 이후 최저치입니다.

빌라 거래량은 2021년 1∼9월 18만8천561호였으나, 지난해 11만8천664호, 올해 6만 호대로 급감했습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올해 연간 빌라 매매 거래량이 처음으로 10만 건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전국 주택 거래량에서 빌라가 차지하는 비율은 올해 1∼9월 16.4%로 역시 역대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작년 같은 기간(28.4%)보다 12%포인트나 낮아졌습니다.

반면 전국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늘었습니다.

올해 1∼9월 31만6천603건이 거래돼 작년 같은 기간보다 30.0% 증가했습니다.

아파트 매매 거래 증가로 이 기간 전체 주택 거래량은 작년 동기보다 소폭 (1.4%) 증가한 42만804호였습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빌라 전월세 거래도 급감했습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통계를 보면 지난달 서울 다세대·연립 전월세 거래량은 8천629호로 2020년 11월(8천381호) 이후 2년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다세대·연립 전월세 거래량은 계속해서 매월 1만 건 이상을 유지하다가 9월부터 월 1만 건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올해 1∼10월 서울 빌라 전월세 거래량은 10만9천338호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2.8% 감소했습니다.

서울 아파트 (사진=연합뉴스)

반면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1∼10월 22만4천495호로 5% 늘었습니다.

특히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 아파트의 전월세 거래량은 1∼10월 11만4천962건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1년(1∼10월 기준) 이래 가장 최대 규모입니다.

정부는 전세사기를 막기 위해 전셋값이 공시가격의 126% 이하일 때만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요건을 강화했는데, 이에 따라 낮춰야 하는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이 늘어난 것도 빌라 기피 현상의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통상 아파트와 빌라 전세가는 비슷한 흐름으로 움직입니다.

지금처럼 아파트 전셋값 상승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빌라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전세사기의 후유증과 상처가 생각보다 깊다"며 "빌라는 현재 공급자도 기피하고, 매수자·임차인도 기피하는 시장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박 위원은 "아파트에서 태어나 자라난 '2030 아파트 키즈'의 아파트 쏠림 현상을 심화한 기폭제가 전세사기"라며 "아파트-빌라 사이 양극화가 깊어지면 전세난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간 빌라가 아파트 대체 주택과 주거 사다리 역할을 충실히 해왔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세 수요가 급감하면 빌라 공급 물량이 줄어들고, 가격도 하락하면서 결국 노후 불량 주택이 늘어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올해 1∼9월 서울 다세대주택 건설 인허가 물량은 1만3천492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6만2천530가구)보다 73.4% 낮아졌습니다.

1∼9월 착공 물량 역시 3천167가구로 작년 동기보다 74.4% 줄어들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전세금을 제대로 돌려받기 위한 안전장치가 없는 이상 전세 수요자들이 아파트로 몰리는 현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임차인 안전장치 강화를 위해선 경매 때 임대보증금의 배당 순위가 국세·지방세보다 앞서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는 제안이 나옵니다.

경매 때는 기본적으로 ▲ 경매 비용 ▲ 소액임차인의 최우선변제금과 최우선 임금채권 ▲ 국세·지방세 ▲ 임차보증금 순으로 배당이 이뤄집니다.

전세사기 피해 방지책의 일환으로 올해 4월 1일 이후 국세, 5월 4일 이후 지방세부터는 확정일자보다 늦게 발생한 세금에 한해서는 세금보다 전세금을 먼저 돌려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국세, 지방세의 법정기일이 확정일자 이전이라면 보호받기 어렵습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세입자가 확정일자를 받고 난 뒤 집주인의 세금 체납이 발생하고, 이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세금이 보증금보다 배당 순위에서 앞서게 된다"라며 "세입자는 고육지책으로 빌라를 '셀프 낙찰' 받아 떠안는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고 대표는 "이러니 누가 빌라 전세를 들어가겠느냐"며 "선순위 권리가 있는 빌라는 전세계약을 막고, 선순위 권리나 근저당권이 없는 빌라에는 매매가의 일정 비율 이상은 전세금으로 받을 수 없도록 캡을 씌우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박 위원도 "아파트는 권리 분석이 어느 정도 가능하고,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사실상 사적 대출을 해주는 개념인데 빌라는 '깜깜이' 계약"이라며 "나보다 선순위인 임차인이 얼마나 있는지, 보증금 총액은 얼마인지 알기 어려운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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