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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소설"

'프랑스 메디치 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인터뷰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 (사진=연합뉴스)

한강 작가가 2021년작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로 불리는 '메디치 문학상' 외국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영국 최고 권위의 부커상을 수상했을 때처럼,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수상입니다. 심사위원단은 "소설의 아름다움과 깊이에 심사위원 모두가 매료됐다"며 "한강 작가는 훌륭한 작가이고, 그에게 상을 수여할 수 있어 영광"이라는 내용의 심사평을 밝혔습니다. 수상식이 있던 날 오후, 한강 작가를 파리에서 만났습니다. 취재파일을 통해 <작별하지 않는다>에 담긴 한강 작가의 생각과 마음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곽상은 취재파일_한강 작가 현지 인터뷰 현장

Q. 소감부터…
[한강 : 제가 가장 최근에 낸 장편소설이 상을 받게 돼 굉장히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Q. 이 작품이 작가에게 갖는 의미는?
[한강 : 이 소설은 '작별하지 않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예요. 정말로 헤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고 헤어짐을 짓지 않겠다는 각오도 있어요. 작별하지 않겠다고 각오했기 때문에 실제로도 작별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긴 거예요. '끝까지 애도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고요. … 이 소설은 세 여자의 이야기로 진행이 되는데, 처음에는 일인칭 서술자인 '나' 경하가 주인공인 듯 시작됐다가 그다음에는 경하의 친구인 인선이 주인공인 것처럼 흘러가다가 마지막에서 인선 어머니인 정심이 진짜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게 돼요. 정심의 마음은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이고, 사랑 때문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고, 그런 인물을 그린 소설이라서 '포기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4.3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한강 : <작별하지 않는다>는 2014년 출간된 <소년이 온다>와 짝을 이루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실제로 <소년이 온다>를 출간한 직후에 꾸었던 꿈이 있는데, 이게 <작별하지 않는다>의 앞 두 페이지를 이루고 있어요. 2014년 여름에 꾸었던 꿈을 일단 적어 놓았고 그 후 7년에 걸쳐서 이게 어떤 소설이 될지 다듬어보다 그러다 결국 이 이야기가 된 것이에요. 그 꿈을 처음 꾸었을 때는 이것이 4.3에 대한 이야기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요, 어떤 학살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만 알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여러 가지 기억들과 생각들이 만나고 교차하면서 마침내 제주 4.3을 다룬 소설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 소설은 4..3만을 다루고 있다기보다는 나중에는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학살에 대해서'까지 뻗어나가는 소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의 차이점은?
[한강 : 일부러 <소년이 온다>와 차별화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쓰지는 않았고요, <소년이 온다>를 쓰고 나서 꾸었던 그 꿈에서 출발하는 소설을 쓸려고 했어요. 또 <소년이 온다>를 보면 에필로그에 작가가 화자로 등장해서 과거를 현재와 이어주는 역할을 하거든요, 마찬가지로 제가 꾸었던 꿈이 이번에는 소설의 첫머리에서 현실과 픽션을 이어주는 그런 역할을 하게 돼요. 하지만 방식은 전혀 다르죠. <소년이 온다>는 과거에서 출발해 현재로 오는 것이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현재에서 점점 과거로 내려가는 형식을 띠고 있어서, 쓰다 보니 다르게 되었어요.]

곽상은 취재파일_메디치 문학상 받은 한강 작가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 해외판 표지

Q. 4.3 취재는 어떻게?
[한강 : 저는 <소년이 온다> 때도 그랬고, 소설을 쓴다는 이유로 그분들의 상처를 다시 열고 싶지 않아서 주로 증언들을 읽는 방식으로 취재를 했어요. 특히 <작별하지 않는다> 같은 경우엔 7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많은 연구들이 이뤄졌고 자료도 많이 모아져 있었어요. 예를 들어 4.3 연구소에서 출간된 자료들을 많이 참고했고 도움도 받았습니다. 단행본으로 나온 자료들도 많이 읽었고. 무엇보다 제주에 자주 가서 많이 걷고 그곳의 날씨를 느끼고 그런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Q. 이 작품도 이전 작품들처럼 고통 속에서 집필했나?
[한강 : 소설은 고통에서 시작을 하지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소설은) 정신이라는 인물의 마을을 향해서 나아가는데, 그 인물의 마음이 너무나 뜨겁고 끈질기고 강해요. 그 마음이 되려고 매일 그 인물에 대해서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고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저에게는 그냥 고통스러운 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가지고 있다고 믿고 싶은 밝음과 힘을 향해서 나아가는 소설이라고 느껴졌어요. 고통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소설 첫머리에 등장하는, 제가 실제로 꾼 꿈에서 시작된 제 이야기는 '나'라는 인물이 눈 쌓인 벌판을 혼자서 걸어가고 있는데 검게 칠해진 밑동만 있는 나무들이 끝없이 있고 그 나무 뒤에 무덤들이 있고 리고 언제부터 들어왔는지 모르는 바다가 점점 밀려 들어오고 있는 그런 순간이었거든요. 계속 이렇게 바다가 들어오고 나가고 있었다면 그 무덤들의 뼈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서, 나란 인물이 달리면서 꿈이 끝나게 되는데요. 이 꿈을 꾸고 나서 이 꿈이 무엇인가를 저에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고 그게 중요한 것 같고, 그래서 그다음을 이어서 써보고자 이런저런 시도를 했던 것입니다.]

Q. 역사적 특수성이 강한 내용인데, 프랑스 문단의 공감을 받는 이유는?
[한강 :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일을 다룬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질문하는 일이기 때문에, 설령 역사적 배경이 다르다고 해도 인간으로서 공유하는 게 있기 때문에 누구든 이해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Q. 학살을 소재로 소설을 썼는데, 최근 전쟁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한강 : 학살에 대해서 쓴다는 것 자체가 인간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 것이라서 요즘 일에 관심이 있어요. 요즘엔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한테 희망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먼저 하게 돼요. 아직 답을 잘 모르겠고, 지켜보고는 있는데 굉장히 무거운 문제라고 느끼고 있어요.]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 (사진=연합뉴스)

Q. 소설 번역 과정에서 기억나는 일은?
[한강 : 이 소설을 번역한 분은 두 분인데(최경란, 피에르 비지우), 저한테 단 한 번도 질문을 하신 적이 없어요. 최경란 번역가 님과 시상식 때 잠깐 이야기 나눴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모든 게 굉장히 분명해서 아무것도 물어볼 게 없었다고 하시더라고요.]

Q. 현재 집필 중이거나 준비 중인 작품은?
[한강 : 지금 제 마음으로는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는 그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요. 다음에 제가 쓰고 싶은 것은 좀 더 개인적이고 현재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쓰고 싶어요. 아직 쓰고 있는 소설이라서 어떤 것이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운데요.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도 쓰고 싶고, <흰>에서도 그랬고 <작별하지 않는다>도 그렇고 겨울 이야기가 많았는데, 겨울 이야기를 완성하고 나면 봄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좀 다른 결의, 다른 느낌의 소설을 쓰고 싶어요. 지금 준비하는 것은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이야기일 것 같고, 바라건대 다음에는 봄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하면 좋겠는데, 뜻대로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곽상은 취재파일_메디치 문학상 받은 한강 작가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 해외판 표지

Q. 해외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비결은?
[한강 : 저는 글을 쓸 때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감각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니까요. 제가 문장을 쓸 때 저의 감각을 그 안에 전류처럼 흘려 넣으면 그게 읽는 사람한테 전달이 되는 것 같고, 그건 문학이 가진 굉장히 이상한 현상인 것 같아요. 내면으로 들어가서 저의 감각 감정 생각을 쓰면, 그게 번역이라는 터널을 통과해서 읽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이죠. 그게 그냥 문학이 만들어내는 힘인 것 같아요.]

Q. 작가로서 독자에게 바라는 것은?
[한강 : 제목이 <작별하지 않는다> 인데, 결국 제가 닿고 싶었던 마음은 그 마음이거든요. 작별하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을 느껴주시면 그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또 소설이 물론 무겁고 고통스러운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제가 이 소설을 쓸 때에는 아주 가볍고 부드러운 것들에 대해 많이 묘사했어요. 예를 들면 눈이라든지, 눈송이의 질감이라든지, 촛불의 불빛이라든지,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라든지, 우리의 몸이 닿을 때 느끼는 체온이라든지. 그런 부드러움과 온기에 대해서, 그런 질감들에 대해서 많이 묘사를 했거든요.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그 사건에 다가가고 있는지 감각을 느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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