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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라진 비트코인 1,000억 원 미스터리

[취재파일] 사라진 비트코인 1,000억 원 미스터리
몇 달 전 제보를 하나 받았습니다. 불법 비트코인 마진 거래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던 한 피의자 측의 제보였습니다. 경찰이 압수수색을 집행하던 도중 피의자의 전자지갑에 있던 1,000억 원 넘는 비트코인이 사라져 버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경찰이 비트코인이 보관돼 있는 전자지갑에 대한 피의자의 접근을 완전히 차단한 상태였고, 이 과정에서 누군가 비트코인을 가져갔다는 겁니다. 피의자의 전자지갑에서 발견된 비트코인 1,798개 가운데 사라진 비트코인은 모두 1,425개. 압수수색 당일 개당 비트코인 시세인 7,966만 원을 적용하면 자그마치 1,100억 원에 달하는 거액입니다.
 

압수수색 도중 사라져 버린 비트코인

A 씨 측과 경찰 측 이야기를 토대로 상황을 재구성해보면 이렇습니다.

지난 2021년 11월 9일 오전 9시, 경찰은 도박공간등개설 혐의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피의자 A 씨 휴대전화를 압수합니다. 경찰은 40여 분에 걸쳐 135개의 비트코인을 현장에서 우선 압수했습니다. 하지만, 기술적 문제로 전체 비트코인에 대한 압수가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았고 일단 다른 장소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에 착수합니다. 3시간 뒤 추가 압수수색에 필요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봉인해 두었던 휴대전화를 꺼내 이를 작동시킵니다. 한 시간 반 뒤, 압수수색을 어느 정도 진행한 경찰은 A 씨 휴대전화를 비행기모드로 전환한 후 다시 밀봉합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전자지갑에 대한 배타적 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A 씨의 전자지갑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임의로 바꿨습니다. A 씨의 동의서를 받고, 압수수색 종료 후 사무실에 복귀해 압수를 이어갑니다. 그런데, 경찰이 A 씨의 전자지갑에 로그인해 수사기관의 전자지갑으로 비트코인을 이체하려고 하자 또다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체하려는 비트코인의 개수를 지정해야 하는데, 개수 입력이 자꾸 안 되는 겁니다. 사이트에서 지정해 주는 임의의 개수만 이체가 가능했고, 그마저도 여러 번 연달아 이체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경찰은 코인 전문가와 경찰청 등에 자문을 구했지만 해결은 요원했고, 자정부터 다음날 저녁까지 고군분투한 끝에 전날 압수한 135개의 비트코인을 포함해 총 320개의 비트코인(당시 시세 약 250억 원)을 수사기관 명의의 전자지갑으로 보내는 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이후부터 경찰의 비트코인 압수 작업에 또다시 문제가 생겼고 1천억 원 넘는 비트코인이 정체불명의 전자지갑으로 이체돼 버립니다.

그렇게 사라진 비트코인의 행방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리무중입니다.
 

"경찰이 가져간 것" vs "피의자 측이 빼돌린 것"

비트코인 그래프

수사 과정에서 A 씨는 담당 경찰 중 누군가 외부 세력과 짜고 비트코인을 빼돌린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비트코인이 보관된 전자지갑에 접근하는 데는 거래소 계정으로 로그인을 하는 방법과 고유 암호인 '프라이빗 코드'를 입력하는 방법이 있는데, 두 방법 모두 A 씨에겐 불가능했다는 겁니다. 경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계정 비밀번호를 임의로 변경해 자신은 로그인이 불가능한 상태였던 데다, 12개 단어가 무작위로 조합된 매우 복잡한 프라이빗 코드를 메모해 둔 휴대전화도 압수당해 이를 기억해 낼 방법이 없었다며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2년여 동안에 걸쳐 수집한 증거들이 모두 A 씨 측을 가리키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경찰은 A 씨가 압수된 휴대전화뿐 아니라 가족과 공유하고 있는 구글 계정에 프라이빗 코드를 메모해 뒀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또 비트코인이 이체된 전자지갑이 우크라이나 IP라는 점도 경찰이 눈여겨보는 대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A 씨 아버지가 지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해당 국가에서 누군가가 도움을 줬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사라진 비트코인을 이체받은 전자지갑의 우크라이나 IP에 대한 국제 공조를 요청해 놨지만 불안한 현지 상황 탓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A 씨 측은 관리 권한을 양도받은 경찰의 부주의 탓에 범죄수익 여부가 확실치 않은 비트코인이 순식간에 유실되는 '사고'가 발생했다며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수사팀장부터 팀원까지 7명을 상대로 민사소송까지 제기해 경찰 수사관들은 변호인을 선임하고 소송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코인을 두고 가상자산 전문가들은 여러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변창호 코인사관학교 대표는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단정하긴 어렵다"면서도 "비트코인 개수를 입력하게 되어있는 사이트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면 누군가 사전에 바이러스나 피싱 앱을 심어놨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등지에 IP를 두고 전자지갑을 해킹하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에 전문 해커의 소행일 가능성도 열어놨습니다.
 

법원, "범죄 수익" 추징금 선고했지만…

비트코인

사라진 비트코인 1천억 원의 행방은 여전히 미궁인 가운데 지난 7월 A 씨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1심에서 도박공간개설과 범죄수익은닉 사실 등이 인정돼 징역 5년의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법원은 이미 압수된 비트코인 320개를 몰수하는 것과 별개로 A 씨에게 약 600억 원의 추징금을 납부하라고 명령했습니다. 2년 전 압수수색 당시 사라져 버린 바로 그 비트코인을 지난 7월 1심 재판 당시 비트코인 시세로 환산한 액수입니다. 비트코인은 주식처럼 가격이 등락을 거듭하기 때문에 사실심 변론 종결 당시를 기준으로 추징금 액수를 산정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입니다.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비트코인 시세는 반값 가까이 폭락했고 사라질 때 1,100억 원에 달했던 1,425개의 비트코인은 2년 뒤 1심 변론 종결일을 기준으로 600억 원에 그치게 된 겁니다.

A 씨 측은 자신이 비트코인을 빼돌렸다는 증거도 없이 추징금을 선고했다며 1심 판결에 반발해 항소했습니다. 검찰도 항소하며 현재 2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A 씨의 변호인은 SBS와의 통화에서 "A 씨 측 가까운 사람들이나 지인들이 탈취한 것은 전혀 아니"라며 사라진 비트코인과의 관련성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그러면서 "압수수색 과정에서 비트코인이 사라진 것은 형사사건의 본질이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항소심에서는 A 씨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이용자 간 거래를 중개한 것뿐이며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게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사라진 비트코인과 관련한 사실관계는 형사소송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된 후 민사소송을 통해 정리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좀 더 단단한 대비되어 있었다면…"

지난 2021년 A 씨를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저희도 어떻게든 빨리 범인을 찾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상자산 수사에 있어 보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단단한 대비가 되어 있었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라며 과거 수사 과정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A 씨의 항소심 재판과 A 씨가 경찰을 상대로 건 민사소송, 국가배상청구소송 등이 남아있어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가상자산 관련 사건에 대한 우리 형사사법기관의 대응 체계를 되짚어볼 필요성이 제기됐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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