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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참사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날 SBS 뉴스룸

"유가족들은 이곳 분향소를 계속 유지한다는 방침을 유지하면서 서울시와 대화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SBS 김덕현입니다. 유가족은………. 김덕현입니다."

"별다른 충돌 없이 서울광장에 도착한 유가족들은 1주기 추모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지금까지 이태원에서 SBS 박재연입니다. 별다른…….. 박재연입니다."


2023년 10월 29일 일요일 8뉴스 시작 전 SBS 뉴스룸은 평소보다 소란스러웠다. 이태원 참사를 상징하는 두 현장을 연결하는 뉴스가 탑 단락에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청 앞 광장과 이태원에 있는 기자들의 리허설 영상이 커다란 LED 화면에 동시에 펼쳐졌다. 리허설인데도 기자들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렸고, 거기에 맞춰 스태프들의 목소리 톤도 올라갔다.

그런데, 그 순간 리허설 영상의 볼륨이 끊겼다. 아마도 현장의 오디오를 뉴스룸에 맞추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잠시였지만, 뉴스룸은 그 어느 때보다 적막했다. 생방송 전 긴장을 풀기 위해 으레 주고받던 농담들이 그날은 약속이나 한 듯 사라졌고, 주요 뉴스들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던 앵커와 출연 기자들도 조용했다. 소란과 적막, 이태원 참사 1년을 대하는 SBS 뉴스룸에는 양립할 수 없는 두 단어가 공존했다.

스프 주간조동찬
그래서였을까? '희생자 159명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8시 뉴스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앵커의 말로 시작한 뉴스에서 나는 또 다른 역설과 부딪혔다.
 

뉴스에서 마주한 역설

그날 오후 이태원에서 모인 유족들이 서울 광장까지 행진하면서 대통령실 앞에 멈춰 사과를 요구했고, 대통령은 서울 광장 추모제에 마련된 자신의 의자를 끝내 비워 두었다. 원래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태원 참사의 가장 깊은 갈등의 고랑은 유족과 대통령 사이에 파여 있다. 8뉴스 큐시트를 통해 텍스트로 확인했던 유족과 대통령의 두 꼭지 뉴스에도 갈등은 깊게 녹아 있었다. 이윽고 온에어, 이태원 참사 단락의 마지막 꼭지에 생방송 출연이 잡혀 있던 나는 뉴스룸 안에서 생으로 뉴스를 관람했다.

'어, 저 표정과 말투는 뭐지?'

유가족의 경로를 돌아본 두 번째 꼭지에서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둘째 딸을 잃은 유형우 씨의 인터뷰에 대한 감정이 텍스트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스프 주간조동찬
"저희 앞에 와서 사과해 주시기 바랍니다. 추모대회에 꼭 오셔서 함께 슬픔을 나눠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문장을 텍스트로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은 분노와 절규였다. 그런데 온에어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진심으로 대통령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혹시 대통령의 인터뷰도 실제 영상으로 보면 느낌이 다를까? 바로 유튜브를 검색했다.

스프 주간조동찬
"지난해 오늘은, 살면서 가장 큰 슬픔을 가진 날입니다."

역시 달랐다. 텍스트에서는 무미 건조한 것 같았는데, 실제 영상에서는 정말로 슬픔을 전하는 것 같았다. 특히 '큰 슬픔을'과 '가진 날' 사이에 숨어있던 '에~'에서 더욱 그랬다. 대통령의 평소 말 습관이지만, 평소와 달리 작고 가늘어서 인지 정말 슬프게 느껴졌다. 같은 문장을 두고 텍스트와 영상에서 정반대 감정을 느끼는 건 내 독해력의 역설 일지 모른다. 그러나 2022년 10월 29일을 가장 슬프게 생각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대통령과 유족이 서로 손을 잡고 있지 않는 지금의 상황은 내 독해력의 역설만은 아닐 것이다.

트라우마 회복의 조건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 물결
"대형 참사의 트라우마는 저절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아직 트라우마 회복의 조건을 충족하지 않았다고 평가합니다. '나도 거기에 있었으면 큰일 났겠구나'하는 불안감이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의 본질인데, 우리는 재발 방지 대책조차 마련하지 못했잖아요."

"대형 참사는 슬프지만 그래도 그 이후로 우리 사회가 좀 나아졌다고 느껴져야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 후 뭐 나아진 게 있나요?"


일부러 정치적 성향이 다른 전문가 두 명을 찾아 현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집단 트라우마에 관한 질문을 보냈는데 돌아온 대답은 같았다. 대형 참사 트라우마는 저절로 좋아지지 않고, 회복의 조건을 충족해야 하며, 같은 대형 참사라도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2004년 12월에 발생한 쓰나미를 꼽았다. 12개 국가에서 22만 8천여 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였다. 가장 피해가 큰 나라는 인도네시아로 12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두 번째는 스리랑카로 3만여 명이 희생됐다. 30년 동안 내전에 시달렸던 것도 두 나라의 공통점이었는데 참사 이후 두 나라의 길은 크게 달랐다. 인도네시아에는 평화가 찾아왔지만 스리랑카의 내전은 더 악화됐다. 인도네시아는 회복을 우선순위에 두었고, 스리랑카는 정치 세력들이 권력에 천착했기 때문이다.

국내 전문가들은 이태원 참사 집단 트라우마 지표가 아직 낮아지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한국일보 조사에서도 이태원 참사 원인·경과·처리 과정에 대해 50% 넘게 비판적 평가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이유는 이태원 참사의 재발을 막는 대비책을 여태 마련하지 못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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