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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이태원 참사 트라우마가 남긴 것

[더 스피커] 참사 당일을 기록한 김태훈 SBS 영상취재기자 인터뷰

스프 더스피커 이태원참사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에 대해 들어보고자 했을 때 생각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날 밤 SBS 보도국에서 참사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취재진입니다. 영상취재팀 김태훈 기자가 밤새 촬영한 그날의 장면은 꽤 오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 생존자, 목격자, 구급대원, 경찰, 의료진만큼 현장 취재진도 트라우마 위험군에 해당됩니다. 카메라 앞에 앉는 것은 처음이라는, 17년 차 영상취재기자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야근 중 쏟아진 제보

지난해 10월 29일 밤. 야간 당직이었던 김태훈 기자는 경찰의 마약 단속 합동 취재를 위해 이태원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함께 이동하던 취재기자에게 "이태원 일대에서 응급환자가 다수 발생했다"는 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사고인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응급환자는 심정지 환자"라는 소식이 이어지며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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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몇십 명 단위가 되면 저 혼자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일단 회사에 상황을 전파하고 인력 충원을 요청했어요. 삼각지역에 다다랐을 때 이미 차량 소통이 안 됐어요. 거기서부터 녹사평역까지 장비를 들고 그냥 뛰어갔습니다.

녹사평역에서 한강진역까지, 이태원 거리는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인파를 뚫고 들어가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처참했습니다.
119 구급차가 급하게 나오고, 도로 위에 5~10명 단위의 사람들이 앉아서 계속 CPR을 하고 있었어요.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더미처럼 눕혀져 있었어요. 그나마 CPR을 하는 건 생체 반응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아닌 사람들은 한쪽으로 빼놓은 상황이었고요. 정말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순간 무슨 생각을 했나요?)
현장이 너무 처참하고 광범위했기 때문에 '혼자서 이걸 커버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제일 많이 했고. 인파가 많이 몰려서 전화가 잘 안 되는 상황이다 보니까 취재기자와도 떨어져서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냥 각자 위치에서 역할을 다할 뿐이었고, 그렇게 취재를 정말 정신없이 밤새도록 했던 것 같아요.

몰려온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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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기자는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꼬박 10시간 가까이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9킬로그램짜리 카메라를 밤새 어깨에 걸쳐 메고 있으면서도 하도 정신이 없어서 무거운 줄도 몰랐다고 합니다. 교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지만 도통 잠들 수 없었습니다.
씻고 쉬는데 자꾸 그 생각이 나는 겁니다. 몸은 녹초가 돼 있는데 정신이 너무 멀쩡한 거죠. 잊기 위해서 음악도 듣고, 멍 때리기도 하고, 애들이랑 놀이터 가서 놀기도 했는데 계속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때 한 선배가 전화로 "며칠 쉬는 게 어떻겠냐"라고 하더라고요. 이 상황이 지속되면 정말 이 일을 더 못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되는 거예요.

짧은 휴식 끝에 평정심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한동안 보지 않기로 다짐했던 뉴스를 다시 보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계속 나는 거예요. 여러 가지 복합적인, 표현할 수 없는 거였는데. 뭐 때문에 눈물이 나는지 알았으면 제어를 할 텐데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휴가가 끝나고 그런 상황을 회사에 보고했고, 이후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현장은 되도록 안 가도록 업무를 배정해 줬어요.

수많은 사고 현장을 취재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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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기자는 입사 후 광우병 집회, 쌍용차 사태, 연평도 포격 사건,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 사건사고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2018년엔 한강에서 구조작업 중 실종된 소방관 시신을 해상취재 과정에서 발견해 기자상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일수록 상처도 남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 제가 있던 곳이 진도 체육관이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거기서 대기를 하다가 신원이 확인된 실종자가 발견되면 '몇 번 실종자 누구'라고 호명이 돼요. 그럼 오열하면서 가족들이 팽목항으로 가는 거예요. 오열하는 모습을 봤을 때 굉장히 큰 아픔이고 상처라고 생각하거든요.

참혹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마주한 이태원 참사는 그래서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가 취재하는 현장은 초기 대응이 끝난 상황이 많거든요. 응급 환자들은 이송하고, 시신은 수습한 뒤 현장 잔해라든가 사고 원인을 취재하지 이렇게 다 노출된 상황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심지어 세월호 참사 때도 수습된 시신은 소방에서 담요로 가림막을 쳐서 운구되는 모습만 제한적으로 취재했어요.

트라우마가 남긴 것

김 기자는 여전히 이태원 참사 뉴스를 보지도, 이태원 주변을 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상처만 남은 것은 아닙니다. 참사 현장의 사람들을 더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게 됐습니다. 몇 년 전 받은 언론인 대상 트라우마 이해 교육도 도움이 됐습니다.

예전에는 참사 현장에 가면 목격자한테 인터뷰를 막 요청했던 것 같아요. 우리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하고... 세월호 참사 이후 자성 노력으로 재난보도 준칙도 마련했고, 이태원 참사 때도 목격자 인터뷰를 시도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거든요. 제가 언론인 트라우마 교육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그들도 우리도 모두 사람이다"라는 말이에요. 피해자나, 그 가족들이나, 현장을 취재하는 언론인이나, 뉴스를 소비하는 이용자들이나 모두 다 사람인 거고 인권을 존중해야 된다는 거였어요. 그런 교육이나 제도를 통해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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