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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선한 영향력 가게 앱'을 알릴 결심

결식아동에 다 내어주는 자영업자들…가게 위치 알려주는 '앱' 개발됐다

[취재파일] '선한 영향력 가게 앱'을 알릴 결심

배곯는 아이들, 28만 3천858명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현장에 나와서 저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을 꾹꾹 눌러 담은 게 말입니다. 누구 하나 슬픈 표정을 보이는 사람도 없는데, 저 혼자 질문을 던지고 애써 다른 곳을 응시하며 인터뷰를 이어간 날이었습니다. 부끄럽게 왜 그랬을까. '결식아동'이란 단어는 언제 들어도 마음을 쓸쓸하게 합니다. 어릴 적 슈퍼 앞에서 손에 동전을 쥐고 빵을 사 먹을까, 우유를 사 먹을까 한참 고민하던 날이 겹쳐 떠오른 탓일지도 모르겠고, 죄 없는 아이들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배고픔도 참아야 하는 처지에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5살 아이를 둔 엄마가 된 기자로서 마음이 자꾸 아리는 건 어찌할 수 없는가 봅니다. 

요새 누가 밥을 굶고 다니냐고 말하지만, 아직도 밥을 굶거나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결식아동은 2022년 12월 기준으로 28만 3천858명입니다. 기초수급자와 차상위계층, 한부모 가정, 긴급복지지원 가정 등의 아동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들에겐 급식카드로 통상 하루에 1끼, 8천 원이 지급됩니다. 외식 물가가 치솟다 보니, 웬만한 식당 메뉴는 1만 원이 넘는 경우가 많죠. 아이들이 피자, 파스타가 먹고 싶어도 급식카드로는 쉽지 않습니다. 실제, 결식아동들의 급식카드의 편의점 사용 비율이 올해 상반기 기준 41.7%로 절반에 가까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통계자료 출처 : 보건복지부
통계자료 출처 :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실

'이 앱'을 알릴 결심 

오랜만에 외근을 다시 하며 '고발 기사'를 열심히 써야겠다 결심했습니다. 잘못된 것을 고발해 바꾸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기자로서 큰 보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한 취재원으로부터 이 '홍보 기사'를 제안 받았습니다. 바로 '선한 영향력 가게 앱'을 널리 알려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홍보 기사 제안에 시큰둥하게 듣고 있었던 저는 어느새 취재원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날짜와, 장소, 연락처 등등을 묻고 있었습니다. 하루빨리 이 앱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식아동에게 다 내어주는 '선한 영향력 가게' 

선한 영향력 가게 스티커

'선한 영향력 가게 앱'을 알리기 전에, 먼저 '선한 영향력 가게'를 설명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선한 영향력 가게'는 급식카드를 소지한 결식아동에게 식사를 비롯한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자영업자들의 모임입니다. 지난 2019년 홍대 한 파스타집 주인이 "결식아동들에게 밥 한 끼 마음 편하게 먹이자"며 시작한 따뜻한 날갯짓이 전국으로 확산된 건데요. 현재는 미용실, 학원, 안경원 등 전국의 3,500여 명의 자영업자들이 각자의 동기와 의미를 갖고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진우 / 한옥안동국시 목동본점 대표
"제가 외식업을 선택한 이유가 '음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그런 취지였거든요. 그래서, 저희 지역 주민 어르신들을 위해서 무료 식사를 대접하고 있고요. 또 뭘 할 수 있을까 하다가, 제가 마침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거든요. 아이들을 위한 재단에 기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건 결국엔 그냥 돈을 드리는 거니까, 이거보다 뭔가 조금 더 의미 있는 게 없을까?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선한 영향력 가게의 영상 보고, '아, 나도 같이 동참해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달마다 따님이 엄마, 아빠와 오시는 가족도 계셨고요, 빈손으로 오시기 미안하다고 캔 커피 갖고 오시기도 하고요. 남학생이 멀리 인천에서 왔는데, 학교에서 쿠키 만들기 실습했다고 싸갖고 와서 나눠준 적도 있었어요. 그냥 자주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마음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안재희 / 박준뷰티랩 종각역점 원장
"요즘에는 머리 자르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고, 또 주기적으로 잘라야 되고. 그런 부분에서 저희가 도움을 주면 좋지 않을까 해서 신청을 했던 거예요. 처음에 오셨던 학생분은 전화로 먼저 '선한 영향력 가게 배너를 보고 오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원래는 커트만 예약을 하셨는데, 상담하면서 '다운 펌도 같이 해드리겠다'하고 같이 해드렸어요. 학생분들이 오시면 좀 위축돼 있거든요. 그래서 직원분들한테 잘 말씀드려서 좀 부담스럽지 않게 우리가 더 많이 상담해 주고 더 잘해주자 해서 학생들도 되게 만족해하셨고, 한 번 더 방문을 해주셨어요." 

그렇다고 이 자영업자들이 여유가 있어서 선한 영향력 가게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언제 폐업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이진우 / 한옥안동국시 목동본점 대표
"힘들어요. 진짜 저 같은 경우에는 제 인생을 걸고 이 가게 운영을 하는 건데, 저희가 매주 일요일 휴무인데 일요일에도 나오고요. 불안하니까 새벽에도 나오고, 휴일에도 나오고, 연휴 때도 나오고 그렇게 되거든요. 자영업자분들은 아마 다 그러실 거예요."
 

정작 결식아동들이 찾기 힘들었던 '선한 영향력 가게' 

선한 영향력 가게 배너

이렇게 자영업자들이 결식아동들을 위해 좋은 마음으로 동참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정작 결식아동들은 어디에 선한 영향력 가게가 있는지 찾기 어려웠던 겁니다. 선한 영향력 가게의 홈페이지는 있지만, 이는 사실상 자영업자들에게 선한 영향력 가게 신청을 받기 위한 사이트였습니다. 선한 영향력 가게에 동참하는 자영업자들이 많아지며 사무국이 생기기도 했지만 자영업자들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기부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사무국에 번듯한 홈페이지와 앱을 만들 수 있는 재정적 여력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참하겠다고 나선 자영업자들은 결식아동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아 '아쉬움'을, 그리고 '미안함'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안재희 / 박준뷰티랩 종각역점 원장
"선한 영향력 가게에 신청하고, (가게 앞에) 배너도 이렇게 걸었는데 잘 안 오셔서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선한 영향력 가게가 광고나 다른 경로로 많이 알려지면 더 많이 찾아오시지 않을까?'하고 아쉬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이진우 / 한옥안동국시 목동본점 대표
"오히려 저는 선한 영향력 가게라고 (가게 앞에) 스티커를 붙여놨는데 오히려 내 배만 채우는 게 아닌가, 손님들한테만 '우리 이렇게 하고 있어요'라고 하면서 내 이익만 채우는 게 아닌가. 오히려 애들은 줄어들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미안하고 좀 죄스러운 마음이 있었거든요."

이영 / 선한 영향력 가게 사무국장
"자영업자 분들이 '아이들이 많이 오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좀 하시면 제가 마음이 약간 무거워지더라고요. 많은 아이들이 왔으면 좋겠는데 왜 안 될까, 저희가 사무국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느 회사원들의 기발한 재능기부…'선한 영향력 가게 앱'의 탄생  

'선한 영향력 가게' 앱 만든 KT 개발자들. 왼쪽부터 오광규 과장, 조현성 사원, 강민정 사원

이런 사정은 미디어를 통해 어느 회사원들의 귀에 들어가게 됐고, 이들은 밤낮으로 해결책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결식아동들이 가게 위치를 알고 찾아갈 수 있을까. 이 회사원들은 돈 한 푼 받지 않고, 석 달 동안 틈틈이 시간을 쪼개 골몰한 끝에 그동안 상상하지 못한 앱을 개발하게 됩니다. 바로 '선한 영향력 가게 앱'이 탄생한 겁니다. 

이 앱에 접속하면 아이들은 위치기반서비스를 통해 가까운 곳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선한 영향력 가게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 가게 이름을 모르더라도 앱 검색창에 먹고 싶은 메뉴, 필요한 서비스를 검색하면 관련 업체 리스트가 나옵니다. 가까운 지하철역만 검색해도 지하철역 주변에 있는 선한 영향력 가게가 뜨도록 고안됐습니다. 해당 리스트를 누르면, 영업시간과 메뉴 등도 볼 수 있습니다. 

개발자들의 진정성은 의심하기 어려웠습니다. 앱에 광고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닌, 수익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한 재능기부였습니다. 
 
조현성 / KT 강남서부NW운용본부 NIT기술팀 사원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제가 갖고 있는 기술이 아이들한테 도움이 된다면 정말 적극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개발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오광규 / KT 강남서부NW운용본부 NIT기술팀 과장
"좋은 단체가 있음에도 홍보가 제대로 못 되는 점이 너무 아쉬웠어요. 이번에 앱을 개발하면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가맹점을 찾을 수 있게 하자 생각하고 개발을 했습니다. 이 단체를 알게 되면서 이제 저희는 점심 식사를 할 때 주변에 있는 선한 영향력 가게에 가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결식아동들에 대한 애정어린 마음은 앱의 기능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조현성 / KT 강남서부NW운용본부 NIT기술팀 사원
"아이들이 최대한 부담 없이 어떻게 앱을 활용해서 이런 가게들을 찾아갈 수 있을까, 그런 부분을 가장 고민하면서 개발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멀리 가기는 힘들잖아요. 자기 주변에 있는 사용자 위치 기반으로 가게들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한 게 가장 핵심 기능이에요."
 

한결같은 이들의 바람…"미안해 말고 꼭 와주세요!"  

자영업자들과 개발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바람을 물었습니다. 마치 입을 맞춘 듯, 이들의 답은 똑같았습니다. 더 많은 결식아동들이, 더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선한 영향력 가게'에 동참하고 있는 안재희 박준뷰티랩 종각역점 원장
안재희 / 박준뷰티랩 종각역점 원장
"다시 찾아와주셨을 때는 이제 '우리가 크게 어렵게 대하지 않았구나. 편하게 대해줬구나.' 그래서 같이 담당하셨던 선생님이랑 저랑 '오! 다시 오신다!'하고 되게 좋아했었어요. 아이들이 앱을 보고 많이 찾아와서 이제 머리도 하고 저희의 에너지를 받고 기분 전환도 하면서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같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선한 영향력 가게'에 동참하고 있는 이진우 한옥안동국시 목동본점 대표
이진우 / 한옥안동국시 목동본점 대표
"일단 와준다는 것 자체가, 용기를 내주는 것 자체가 너무 고마웠고. 왔는데 또 안 오면 오히려 '내가 뭐 실수한 게 있을까', 우리 직원분들도 '내가 뭐 잘못한 게 있었나, 부족했던 게 있었나?' 오히려 그런 고민을 하게 되고, 미안하게 되고. 학생들은 미안한 마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또 와주면 저 또한 거기에서 얻는 보람도 있고, 행복감이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좀 와줬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어느 집을 가볼까' 하면서, 맛집에 가서 사랑을 느끼면서 좀 스트레스도 풀고, 행복감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앱 켜놓고 '오늘은 어디 맛집 투어!'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저희에게 더 좋은 힘을 줄 수 있는 거니까, 부담 갖지 않고 찾아와줬으면 좋겠어요. 많이 와주세요!"

개발자들은 이 앱을 결식아동만을 위한 것이 아닌, '시민'을 위해 개발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광규 / KT 강남서부NW운용본부 NIT기술팀 과장
"결식아동이 아닌 일반 사용자분들도 이 앱을 많이 다운받으셔서 좋은 일 하시는 사장님들한테 좀 '돈쭐'내주는 그런 일이 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피드백을 좀 많이 주시면 저희가 일을 많이 하더라도 조금 더 개선시킬 수 있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강민정 / KT 강남서부NW운용본부 NIT기술팀 사원
"꼭 결식아동이나 가맹점주가 아니더라도 일반 사용자분들이 '이런 가게가 주변에 근처에 있었네' 하면서 홍보를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실제, 지난 24일 8뉴스 보도 후 많은 시민이 응답했습니다. 
 
[tkdt****]
"이거 진짜 너무 좋은 일이네요! 무조건 동참입니다!"

[alic****]
"이런 게 왜 없었을까요 진짜 개발자님들 넘 감사합니다 저도 저거 보고 맛집 찾아갈래요"

[redl****]
"일반인들에게도 공유돼서 돈쭐 내줄 수 있음 좋겠어요 재능기부 제대로 하시네요"

[logan****]
"혐오를 멈추고 다 같이 서로 돕고 살자"

[edesa****]
"어차피 밥 사먹으러 가는거 조금 더 걸어서 저런 곳만 찾아 다니고 싶다"

[litt****]
"아이들에게 선행 계속 하실 수 있게, 전 가서 많이 팔아드리고 싶어요!"

[user-xm5eb6****]
"멀리서 적은 금액이나마 기부할 수 있는 콘텐츠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이영 선한 영향력 가게 사무국장은 지금의 이 사랑은 아이들에게 귀한 영향력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이영 / 선한 영향력 가게 사무국장
"우리 아이들이 한 번이라도 따뜻한 마음을 받으면 그것이 또 아이들에게는 정서적으로도 또 사회적으로도 굉장히 큰 신뢰가 되고 사랑이 될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또 다른 사람들한테 또 베풀 수 있는 귀한 영향력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들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결식아동들을 위해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꼭 자주 와달라는 자영업자들, 그리고 이 아동들이 가게를 잘 찾을 수 있길 바라며 밤낮으로 앱을 만든 개발자들, 그리고, 기사 댓글을 통해 이 가게들을 찾겠다고 말하는 시민들, 그리고 이 사랑을 받고 커나갈 아이들의 조금 더 밝을 미래, 이게 바로 시민들이 만드는 선한 영향력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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