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스프] '빈티지' 대신 '밀레짐'? 넓고도 깊은 샴페인 양조의 세계

[와인의슾] (글 : 김민정 대표)

스프 와인의슾 김민정
'빈티지' 대신 '밀레짐'…샴페인의 밀레짐이 궁금해?

(좌)빈티지가 적혀 있는 레드 와인들의 라벨과 (우)빈티지가 적혀 있지 않은 샴페인 라벨
와인을 즐겨 마시는 분들은 빈티지*(Vintage)라는 용어에 익숙하실 겁니다. '포도의 수확 연도'를 의미하는 빈티지는 와인의 주재료인 포도가 어떤 해에 수확되었는지를 알려줍니다. 라벨에 적힌 '2000년', '2015년' 네 자릿수를 통해 우리는 해당 와인의 나이를 가늠하지요. 대부분의 프랑스 와인 산지들에서는 한 해에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제작하고 라벨에 빈티지를 적어놓습니다.

반면 샴페인 라벨에는 왜 빈티지가 잘 안 보일까요? 그럼에도 혹시 빈티지가 적힌 샴페인을 보신 적이 있나요? 짐작하셨듯이 일반적으로 샴페인 라벨에는 빈티지가 적혀있지 않습니다. 대다수가 생산 연도가 없는 '논 빈티지*(Non-Vintage)' 샴페인이지요. 간혹 빈티지가 적혀있는 경우, 이 샴페인을 '생산 연도'의 프랑스어인 '밀레짐*(Millésime)'을 붙여 밀레짐 샴페인이라고 부릅니다.

밀레짐 샴페인은 논 빈티지 샴페인에 비해 고급 샴페인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밀레짐 샴페인을 좀 더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 때입니다.

샴페인의 빈티지를 둘러싼 이야기를 자세히 알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샴페인의 양조 과정과 관행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샹파뉴의 '양조'입니다. 수확 → 착즙 → 발효 → 1차 숙성 → 2차 숙성의 과정을 거치며 샴페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개해 드립니다. '포도'가 '샴페인'으로 거듭나는 일련의 과정을 따라가 보며 자연스럽게 샴페인의 용어들을 하나씩 만나봅시다.

*빈티지(Vintage): 와인의 생산 연도로 해당 와인의 재료인 포도를 수확한 연도를 가리킨다. 라벨이나 와인 병에 빈티지가 적힌 와인들은 당해 연도에 수확된 포도로만 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논 빈티지(Non-Vintage): 여러 해에 수확된 포도를 블렌딩 하여 제작했다는 뜻으로, 빈티지가 없다는 의미의 논빈(NV)이라고 축약해 부르기도 한다.

*밀레짐(Millésime): 프랑스어로 제조 연도를 가리키는 말로 빈티지와 동일한 뜻을 가진다. 밀레짐이 라벨에 표기된 샴페인은 빈티지 와인과 마찬가지로 단일 해에 수확한 포도만으로 양조한 샴페인을 의미한다.


샴페인 양조 과정 인포그래픽
 

[Step1. 수확] 오로지 두 손으로 포도를 딴다…샹파뉴의 농번기 벙덩쥬

1년 중 와인 산지들에게 가장 바쁘고 중요한 시기는 언제일까요? 바로 포도를 수확하는 시기, 9월입니다. 샹파뉴에서도 9월 초에서 중순까지*가 포도를 수확하는 시기입니다. 프랑스어로 포도 수확철을 '벙덩쥬(Vendange)'라고 합니다. 바캉스 철이 끝나고 8월 말이 되면 샹파뉴의 와인 메이커들은 이미 포도 수확을 준비하느라 분주해집니다.

* 과거에는 벙덩쥬가 9월 중순에서 말까지였지만, 기후변화로 최근에는 이 시기가 앞당겨지는 추세다.

포도 수확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단 하루의 차이로 포도의 당도와 숙성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포도 재배자들은 포도의 상태를 시시각각으로 체크하며 최적의 시기에 최상의 포도를 수확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포도밭의 상태를 모두 체크해서 최상의 포도 수확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 포도 재배자들의 몫입니다.

샹파뉴에서는 한 가지 더 까다로운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포도를 오로지 손으로만 수확해야 한다'는 AOC 규정입니다. 최상의 포도를 수확하기 위해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는 동시에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만 포도를 수확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포도 수확철 샹파뉴 지역에 많은 인원들이 동원됩니다. 특히 포도 재배도 직접 하고, 양조도 하는 와인 메이커들에겐 포도 수확철 시기가 무척이나 고된 기간입니다.

포도 수확철 샹파뉴의 와이너리 포도밭의 모습. 손으로 직접 포도를 수확한다.(왼쪽) / 벙덩쥬를 무사히 마무리했음을 축하하며 작은 파티를 열기도 한다.(오른쪽) / 출처: 샴페인 오귀스탕
수확한 신선한 포도를 곧바로 착즙기에 넣어 착즙하고, 이를 발효통에 넣어 발효를 시작합니다. 그제야 샹파뉴의 포도 수확철은 마무리가 됩니다. 고생을 함께 나누고, 수확에 참여하며 모두가 마치 한 가족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던 이 시기가 마무리되면, 사람들은 그간의 고생을 서로 축하하며 축제와 같은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Step2. 착즙] 착즙도 정해진 양만큼만? 샴페인의 까다로운 착즙 기준

포도 수확이 끝났으니, 이제는 착즙의 시간입니다.

와인을 마시다 보면 간혹 이런 의문점이 생깁니다. '피노누아와 피노뮈니예는 적포도 품종인데 어떻게 샴페인의 색은 화이트일까?'

발효 과정에서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을 가르는 차이점은 단 하나입니다. 발효에 '포도 껍질을 함께 발효하느냐' 아니면 '포도의 즙만 사용하느냐'입니다. 레드와인은 포도의 붉은색과 타닌*을 얻기 위해 껍질과 씨를 함께 발효합니다. 화이트와인은 색을 얻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즙만을 이용해 발효합니다. (간혹 매우 드물지만 화이트와인도 껍질과 함께 침용해서 양조하기도 합니다.)

*타닌(tannin): 떫은맛을 내는 성분으로 식물, 씨앗, 과일의 껍질 등에서 자연 발생한다.

피노누아와 피노뮈니예와 같은 적포도 품종도 포도의 즙만 사용한다면 화이트 와인, 샴페인이 되는 것이지요. 물론 껍질에서 색이 배어 나오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즙을 짜내야 합니다.

샤르도네와 같이 백포도 품종으로만 만든 샴페인이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이었다면 이렇게 적포도 품종으로만 만든 샴페인을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s)라고 부릅니다. 블랑 드 누아는 피노누아 100%이거나 피노뮈니예 100% 혹은 이 두 가지가 블렌딩되기도 합니다.

*프랑스어 블랑(Blanc)은 '백색'을 의미하고, 드(de)는 '~로 만든'을, 누아(Noirs)는 '검은색'을 의미한다. 때문에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은 백색 포도로 만든 백색 샴페인이 되고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s)는 검은 포도로 만든 백색 샴페인이 된다.

착즙 과정도 기계를 사용하는 방식과 재래 방식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기계를 사용해 압착을 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겠지만, 샹파뉴에서는 아직도 나무틀과 나무 뚜껑으로 만들어진 재래 방식의 압착기를 이용해서 즙을 짜는 곳들이 많습니다. 때문에 벙덩쥬 시기의 샹파뉴 와이너리에서는 오래되어 보이는 압착기에 포도들을 부어 넣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샹파뉴의 와이너리에서 사용하는 수동식 포도 착즙기. 나무 소재의 틀과 뚜껑이 붙어있다.
샹파뉴에서는 포도의 양에 따라 뽑아내는 포도즙의 양도 AOC에 규정이 되어 있습니다. 만약 일정한 포도에서 너무 많은 즙을 뽑아낸다면 즙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수확, 발효 과정에도 적용되는 세세한 규정에 의해 샴페인의 품질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손으로만 수확해야 하고 즙도 정해진 규정만큼만 짜내야 하니 샴페인이 비싸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해됩니다.

착즙 과정에서 처음으로 뽑아낸 것과 두 번째로 착즙한 즙은 따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이 또한 즙의 질 때문입니다. 이 두 개의 즙을 섞어서 양조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좀 더 섬세하고 우아한 샴페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뽑아낸 즙만을 사용합니다.
 

[Step3. 발효와 1차 숙성] 스테인리스 통은 포도 본연의 맛, 오크통에선 오크의 풍미…숙성 통에 각자의 철학을 담다

포도즙이 완성되면 와인 메이커들은 즙들을 마을이나 포도밭별로 나누어 숙성 통에 담아 발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몇 주의 발효 기간이 지나면 장기간의 숙성을 시작합니다. 이 1차 숙성 기간을 지나게 되면 포도즙들은 드디어 '스틸 와인'으로 거듭나게 되지요.

이때 발효와 숙성에는 스테인리스, 시멘트, 오크 등 다양한 소재의 통들이 사용됩니다. 어떤 통을 이용해서 양조할지는 오로지 와인 메이커의 선택입니다.

샹파뉴 와이너리들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소재의 숙성(발효) 통. 한 와이너리에서 오크와 스테인리스 소재의 숙성 통을 모두 사용하기도 한다.
스테인리스 통이나 시멘트 통을 사용하면 포도가 갖고 있던 본연의 맛의 특징을 살리게 됩니다. 반면 오크통을 사용하면 바닐라 향을 풍기는 오크의 풍미가 와인에 배게 됩니다. 오크통도 새 오크통인지, 사용했던 오크통인지에 따라 맛의 차이가 있습니다. 새 오크통은 오크 향이 더 강하게 배고, 이미 한번 사용했던 오크통은 새것보단 오크향이 약하게 배게 됩니다.

그 밖에도 1차 숙성 과정에서 인공 효모를 사용할지 혹은 그곳에 자생하는 토착 효모만으로 발효할지, 온도 조절 장치를 사용할지 말지 등 다양한 선택지들이 존재합니다. 와인 메이커들에겐 1차 숙성 과정이 무척 중요합니다. 2차 숙성에 쓰일 원재료가 되는 스틸 와인은 최종적인 샴페인의 맛을 좌지우지할 중요한 요인이 될 테니까요. 와인 메이커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담아 본인들이 상상하는 샴페인의 맛을 구현해 나갑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더 깊고 인사이트 넘치는 이야기는 스브스프리미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콘텐츠의 남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하단 버튼 클릭! | 스브스프리미엄 바로가기 버튼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