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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첫차 타고 '빅5 병원' 몰린다…환자도, 의사도 '지방 외면'

KTX 첫차 타고 '빅5 병원' 몰린다…환자도, 의사도 '지방 외면'
전남 순천에 사는 A(40) 씨는 2주에 한 번 서울로 가는 오전 5시 27분 KTX 첫차에 몸을 싣습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담도암으로 진단받은 어머니의 항암 치료를 위해서입니다.

첫차를 타려면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합니다.

둘 다 녹초가 돼 늦은 오후에나 집에 돌아옵니다.

서울에 오가기 위해 하루를 꼬박 써야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서울에 있는 이른바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서울아산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수도권은 물론 전국 곳곳에서 몰려듭니다.

반면 지방에서는 환자와 의사 모두 서울로 빠져나가는 탓에 의료 시스템이 붕괴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환자들은 지방에 있는 병원을 찾지 않고, 환자가 없으니 의사들도 지방에 자리 잡으려 하지 않는 '악순환'에 갇힌 모습입니다.

암 환자들이 정보를 나누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KTX 첫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다녀왔다는 후기가 줄을 잇습니다.

'출근 시간과 겹치면 차가 막히지 않을지', '택시 타고 오전 진료 시간에 맞춰 갈 수 있을지' 등은 암 환자들 사이에 나오는 단골 질문입니다.
서울 강남 일대 대형 종합병원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 등 이용객들이 병원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워낙 지역에서 서울로 오는 환자가 많은 탓에 세브란스병원은 서울역에, 강남세브란스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수서역에 각각 셔틀버스를 운행합니다.

삼성서울병원 셔틀버스는 수서역에서 8분에 한 대씩 출발하는데도, 환자가 많아 아침마다 줄이 길게 늘어설 정도입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병원을 찾는 환자의 40% 정도는 지방에서 오시는 분"이라고 전했습니다.

복지부 조사 결과에서도 지역의료기관 입원환자 중 해당지역 환자의 구성비를 나타내는 지역환자 구성비가 서울이 59.7%로 가장 낮았습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40%는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왔다는 뜻입니다.

지방에 살면서 서울로 올라와 빅5 병원에서 진료받는 환자 수는 나날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국회 보건복지위 김원이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경기·인천을 제외한 지방 거주자 중 빅5 병원에서 진료받은 인원은 2013년 50만 245명에서 지난해 71만 3천284명으로 42.5% 급증했습니다.

환자들은 의료 인프라가 모두 서울에 집중돼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한목소리를 냅니다.

지방에서 진료받고 싶어도 양질의 진료 서비스를 받기 어렵고, 막상 찾은 병원에서조차 "서울에 있는 큰 병원 가보세요"라고 하니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지역 간 의료 서비스의 격차가 크다"며 "환자들이 더 나은 진료 환경과 양질의 서비스를 받고자 지방에서 서울로 찾아오는 걸 질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습니다.
병원, 의사

환자만이 아닙니다.

의사들도 서울로만 몰려들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 의사 수는 10만 9천937명이고, 이 가운데 서울에만 3만 2천45명이 있습니다.

전체 의사의 29%입니다.

한마디로 의사 3명 중 1명은 서울에 있다는 얘기입니다.

신현영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14∼2023년 23개 진료과목 전공의 모집정원 중 61.6%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몰려있었습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젊은 의사들은 전공의 수련 자체를 수도권에서 하겠다고 떠나버리고, 지방 병원은 당직 설 전공의가 없어 다음 세대가 또 지원 안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모습"이라고 전했습니다.

반면에 지방에서는 연봉 수억 원을 내걸어도 의사를 구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올해 초 강원 속초의료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모집하려고 세 차례나 공고를 내야 했습니다.

연봉을 4억 원대로 올리고, 전공의 4년 수료자까지 응시 자격을 확대하고서야 겨우 구할 수 있었습니다.

충북 청주의 한 종합병원에서는 연봉 10억 원이라는 파격 조건으로 두 차례나 전문의 채용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는 '0명'이었습니다.

공중보건의사(공보의) 급감은 더욱 큰 문제입니다.

공보의는 현역병 대상 중 의료 취약지에서 공중보건업무에 종사하는 의사 자격자를 뜻하는데, 2013년 2천411명에서 올해 1천432명으로 10년 만에 40% 넘게 급감했습니다.

공보의 감소는 지방 의료 인프라의 근간을 이루는 보건소와 지소의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8월 말 공보의 배치 대상 보건소 중 의과 공보의가 없는 보건소는 7곳, 보건지소는 337곳에 달했습니다.

보건복지위 최혜영 의원은 "육군 현역병 복무기간은 18개월이지만, 공보의는 36개월이나 된다"며 "병사 월급 인상으로 급여 차이마저 줄어들면 공보의 입대는 더욱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환자와 의사의 서울 집중과 지방 의료 인프라의 붕괴가 서로 맞물리는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적절한 인력이 충원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의사들에게 당직 등 과중한 업무가 부여되고, 이로 인해 또다시 이탈률이 높아지는 악순환을 타개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주진형 강원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는 지방 국립대병원에 대한 과감한 지원을 주문했습니다.

그는 "국립대병원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지원으로 국립대병원이 지역 의료기관에 전공의, 전문의, 간호사를 파견하는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서울 강남 일대 대형 종합병원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 등 이용객들이 병원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국립대병원 의사 인력의 정원·임금 규제가 풀어줘 우수한 의사 인력을 국립대 병원으로 끌어모을 수 있도록 할 방침입니다.

의대 정원 확대도 지방 국립대와 지역인재 전형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윤석준 고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연고도 없는 의사들이 지방의 정주 여건을 견딜 수 있겠느냐"며 "한시적으로라도 '지역인재 100%'까지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역인재 전형은 해당 지역에서 고등학교 전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만 그 지역 내 의대에 지원할 수 있는 전형입니다.

보건소 의료 인프라 확충은 전향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윤 교수는 "지방 보건소는 공보의뿐 아니라, 은퇴한 의사 등 그 지역에서 머물며 성실하게 주민을 돌볼 수 있는 의사를 고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혜영 의원은 "공보의의 복무기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면 부족 문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공보의 복무기간을 2년으로 단축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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