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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우리 집에 왜 왔니?"…'침입'에 떨고 있는 한국 영화들

[스프칼럼] (글 : 홍수정 영화평론가)

스프칼럼 홍수정
자꾸 모르는 이가 들어온다. 어디에? 한국 영화의 집에. 모르는 사람이 문을 쾅쾅 두드리고, 일상의 평온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 한국 영화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최근 한국 영화계에는 '모르는 이의 침입'을 소재로 삼은 작품들이 늘었다. 추석 시즌에 개봉해 흥행에 성공하며 '추석 대전'에서 승리한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침입에서 시작된다. 유경(이솜), 유민(박소이) 두 자매가 살아가는 집. 초대받지 않은 누군가가 온다. 침입자는 바로 범천(허준호). 그는 제 발로 찾아오는 대신, 유민을 통해 온다. 마치 빙의되듯이 유민의 몸에 씐 것이다. 유경은 어린 동생을 밧줄로 꽁꽁 묶어놓고, 범천이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린다. 천박사(강동원)의 도움을 받아 범천을 물리치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다.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스틸컷 / 출처: CJ ENM
한편 추석 시즌이 오기 전까지 9월 극장가를 달군 영화가 있다. 바로 <잠>. 유재선이라는 신인 감독의 첫 장편 영화다. 하지만 신선한 설정과 깔끔하고 정밀한 스토리, 주연 배우들의 열연으로 100만이 넘는 관객이 들었다. 이 영화도 침입으로 시작된다.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암시된다.

어느 날 잠을 자던 남편 현수(이선균)가 잠꼬대하듯이 말한다. 누가 들어왔어. 아내 수진(정유미)이 묻는다. 누구? 대답 없는 현수. 그의 나직한 한마디는 평온했던 부부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러니까 <잠>은 '침입'의 감각으로 추동되는 영화다. 그 감각은 착각일까, 실재일까. 현수는 몽유병에 시달리는 것일까, 아니면 귀신에 씐 것일까. 명확히 가늠할 수 없는, 침입에 대한 희미한 의심이 수진을 미치게 한다.

이 외에도 영화에서 끊임없이 무언가가 수진을 찾아온다. 소리가 벽을 넘어 들려오고(층간소음), 소중한 생명이 생긴다(임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부부에게는 경계를 넘어 들어오는 것들이 많다. 현수는 방문을 밖에서 걸어 잠근 채로 잔다. 자는 동안 돌아다니다가 사고를 치는 일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꼭꼭 걸어 잠근 방문은 자꾸만 열린다. 이 이미지는 상징적이다. '함께라면 극복 못 할 문제는 없다'던 부부는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침입을 막는 데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영화 <잠> 스틸컷 /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8월 초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관객 수 400만에 육박하며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이 영화에서도 '침입'은 중요한 소재다. 대지진이 발생해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 세상. 오로지 황궁 아파트만 멀쩡하다. 그 소식을 듣고 외부 생존자들이 아파트로 몰려든다. 이때부터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은 똘똘 뭉쳐 외부 생존자를 배척한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침입을 미연에 막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침입은 기어이, 여러 층위로 발생하고 만다.

이 영화의 시작과 반전은 모두 침입을 소재로 하고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묻는다. 과연 침입자는 누구인가. 당신이 지켜야 할 선은 어디에 있나. 물리적인, 정치적인 침범을 두루 짚으며 한국 사회를 조망하는 영화가 바로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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