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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성희롱 피해 후 쫓겨나듯 나간 공공기관 여직원…회사도 가해자였다

발명진흥회 사내 성희롱·성폭력 사건, 특허청 감사 결과 보고서 입수

[취재파일] 성희롱 피해 후 쫓겨나듯 나간 공공기관 여직원…회사도 가해자였다
지난 5월 SBS 8뉴스를 통해 한국발명진흥회(이하 발진회) 여직원 2명이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으로 사직했다는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발진회는 발명 사업을 추진하는 특허청 산하의 공공기관입니다. 보도 직후 특허청은 발진회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고, 해당 성희롱·성폭력 사건 주변에 다른 문제들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번 취재파일은 감사 결과 보고서에 드러난 문제점들을 정리해 전해드리겠습니다. 여기에는 여직원들이 어렵게 취업한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담겨 있습니다.
 

공공기관 여직원 2명의 '돌연 사퇴'

지난해 10월 발진회 여직원 2명이 사표를 냈습니다. 한 직장 상사에게 당한 지속적인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이 원인이었습니다. 여직원들은 그동안 당했던 피해를 회사에 신고한 뒤 징계위원회가 열리기도 전에 회사를 떠났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정도로 그동안 많이 견뎌왔다는 겁니다.

사공성근 취재파일_0040 말 CG

피해자들은 같은 팀의 A 팀장이 회식 자리 나 복도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고 호소했습니다. A 팀장은 회식 자리에서 피해자들에게 자취 여부를 물으며 "독립해라, 여자가 자취해야 남자친구가 행복하다. 자취를 해야 남자가 좋아한다"는 등의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피해자가 "제가 이거 녹음해서 신고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A 팀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어넘기기도 했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해 4월, 한 피해자는 팀원들에게 "가족이 코로나에 걸려 함께 식사를 못할 거 같다"며 혼자 식사하겠다는 의사를 전했습니다. 그러자 A 팀장은 "○○ 연구원(피해자)은 코로나 안 걸렸나? 코로나 걸렸으면 뽀뽀라도 한 번 할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A 팀장은 이 전부터 코로나에 걸리고 싶다고 수차례 말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는데, 해당 발언에 피해자는 상당한 수치심을 느꼈다고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다른 직원 C 씨에게도 "카디건 단추가 풀렸다. 무슨 큰일 날 짓을 하려고"라는 등 옷매무새를 지적하며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말을 했습니다.

피해자들은 A 팀장이 특히 회식 자리, 회사 복도 등에서 마주쳤을 때 불필요한 종아리, 허리 등 신체 접촉도 잦았다고 호소했습니다. 또 사무실, 술자리 등에서 여직원들에 대한 외모 평가를 지속적으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기사에 담을 수 없는 성적인 단어도 상습적으로 사용해 주변 여직원들이 수치심을 느끼며 힘들어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단독] 성희롱 발언 한둘 아닌데…결과는 '솜방망이' 징계 (5월 11일)
 

피해자들은 '사직'…가해자는 '정직 1개월'

사공성근 취재파일_0117 정직 1개월

결국 A 팀장은 발진회 자체 징계위에 회부됐습니다. 하지만 이미 피해자들은 회사를 그만둔 뒤였습니다. 징계위에서 A 팀장은 자신의 언행이 성희롱임을 인지하지 못했고 사건이 신고된 이후에야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A 팀장은 "일부 신체 접촉은 선의로 했는데, 받아들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해서 이후에 행동이나 말이나 굉장히 조심했었다. 고의성은 없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징계위는 A 팀장의 성희롱은 면직까지 가능한 수준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최종 처분은 '정직 1개월'에 그쳤습니다. 고의적인 신체적인 접촉이 없었고, 부서 업무 공백을 최소화 등을 고려했다는 게 판단 이유였습니다.
 

특허청 감사 보고서…"회사가 '2차 가해자'"

특허청의 한국발명진흥회 감사 결과 보고서

특허청은 SBS 보도 직후 발진회에 대한 감사를 진행했습니다. 감사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들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진흥회는 내규에 따라 사내 성희롱·성폭력 문제를 접수하기 위해서 고충상담원을 지정하고 직원들에게 고충상담원의 존재를 알려야 합니다. 하지만 고충상담원은 지정만 돼 있었을 뿐 직원들에게 공지가 되지 않았습니다. 고충상담원을 임명하고도 필요한 전문 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피해 여직원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공식적으로 알리지 못했습니다. 같은 부서도 아닌 다른 지역에 근무하는 동료 여직원에게 피해를 상담했는데, 그 피해를 전해 들은 동료 직원도 성희롱·성폭력 신고 처리 절차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부서장에게도 이후에 보고가 됐지만 부서장도 발진회 내부 고충상담원과 본부에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피해자들의 호소는 공론화되지 못했고, 피해자들은 문제 제기 후 퇴사하기까지 4개월 간 같은 공간에서 근무를 이어가야 했습니다.

결국 피해자들은 퇴사라는 방식을 택했고, 이들이 퇴사하면서야 고충신고서가 접수됐습니다. 진흥회에서는 해당 신고를 바탕으로 진상 조사에 실시했는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견됐습니다. 진흥회는 진상 조사를 위한 외부 전문가를 섭외하면서 성희롱·성폭력 사건 경험이 없는 노무사를 위촉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진흥회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성문제 관련 등에도 경험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해당 노무사의 상세 이력을 살피지 못했던 겁니다. 진상 조사뿐 아니라 이후 개최된 고충심의위원회에서도 성희롱·성폭력 사건 경험이 없는 노무사와 변호사가 위원으로 참가했습니다. 또 발진회는 사내 직원 성교육 및 성폭력 예방 교육도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신규 직원 채용 시 두 달 이내 관련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데, 분기별로 기존 직원들이 교육을 받을 때 함께 교육받도록 했습니다.

한국발명진흥회 사내 성교육
한국발명진흥회 사내 성교육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해당 감사 결과에 대해 "발진회는 이번 사건의 '2차 가해'를 막지 못한 '2차 가해자'다"라며 "진흥회는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인 만큼, 진흥회의 비위 및 부패와 관련해 면밀히 살피고 책임을 묻겠다"라고 밝혔습니다.

감사를 끝낸 특허청은 한국발명진흥회장에게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임직원 교육을 실시하고, 추후에 사건 발생 시 관련 절치를 준수하는 등 성희롱·성폭력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주의했습니다. 특허청 관계자는 "감사 이후 발진회는 고충삼당원을 기존 6명에서 8명으로 늘리고, 기관 내 고충상담원 존재에 대한 공지를 했으며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성희롱·성폭력 교육을 실시하는 등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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