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트럼프 측 "한국 핵 무장 카드로 김정은 끌어낼 수도"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이스라엘 지역에서 또 전쟁이 터졌습니다. 이 세계적 분쟁들에 모두 발을 담근 나라가 있습니다. 미국입니다. 얼핏 오지랖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미국 입장에서 어느 것 하나 자국의 이익과 무관한 게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런 국제 이슈들은 하나하나가 미국 국내 정치 상황과 맞물려 있습니다.

당장 이번 하마스와 이스라엘 격돌은 바이든 정부에게 악재가 될 전망입니다. 외교적 성과로 공들여온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수교에 차질이 불가피해졌고 가뜩이나 전쟁 피로감으로 지원에 난항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공화당 유력 주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외교 참사라며 바이든 정부를 연일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고령 논란에 외교적 악재, 여기에 미국 서민들이 가장 민감하다는 유가 문제까지 얽히면서 내년 대선을 준비 중인 바이든 대통령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박빙이라던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차 범위 밖으로 벌어지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난해 여름만 해도 의회 난동과 성추문, 선거 조작 등 각종 의혹으로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을 높게 보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이라는 기소를 무려 4차례나 당하고도 트럼프 지지율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공화당 대선 후보 토론회에는 참가조차 하지 않고 있는데도 토론회 때마다 주인공은 트럼프가 될 정도입니다. 공화당이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간신히 되찾은 하원도 친트럼프 성향 소수 강경파가 일으킨 쿠데타로 자당 소속 의장이 해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워싱턴 정가 역시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을 더 높게 보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고 있습니다. 트럼프 재집권에 대비한 우리 정부의 물밑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간 외교 안보와 경제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트럼프 재선 시 우리나라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게 주한미군 철수나 방위비 분담금 인상, 대북 관계, 대중 규제 강화에 따른 한국 피해 등입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전문가들 견해로 실제로 트럼프 생각이 어떤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다만 이를 엿볼 수 있는 곳은 있습니다. '트럼프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 연구소'(American First Policy Institute)입니다. 1기 트럼프 정부와 백악관 고위 인사들이 주축이 돼 미국 국가 안보와 국내 문제 등 모든 분야에서 트럼프의 접근 방식을 알리기 위해 만든 연구기관입니다. 현재 트럼프 선호 정책을 신속히 추진할 수 있게 2기 정부 직원용 안내서까지 제작 중입니다.
  트럼프 정부 때 백악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 사무총장을 지낸 프레드 플라이츠 부의장을 만나 한국은 물론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정책 전반에 대해 물었습니다. NSC에서 중국과 북한 문제 등을 다룬 전문가로 관련 현안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먼저 거의 기정사실처럼 언급되고 있는 주한미군 철수나 규모 축소 가능성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답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였습니다. 트럼프가 실제로 그런 말을 한 적은 있지만 사업가로 일하다 외교 안보 정책을 다루게 된 사람으로 이를 배워 가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트럼프가 가장 걱정하는 건 중국과 북한의 위협으로 한미 관계의 전략적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트럼프 2번째 임기에서 방위비 인상의 초점은 NATO가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조약에 따라 GDP의 2%를 군사비로 지출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공정한 몫을 기여하도록 NATO 회원국과 유럽 국가들에게 실질적 압력이 있을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에 5배 인상을 요구했던 적이 있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첫 임기 말에 방위비 인상 추진을 중단했었다며 외교 정책 전문가가 아닌 그가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접근 방식을 바꾼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트럼프에게 주요 위협은 중국이 될 것이고 중국에 맞서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중국 견제를 위해 1기 정부 때처럼 방위비 문제로 한국과 일본을 압박하기보다 협조를 얻으려 할 거라는 겁니다.
  다음으로 한국의 핵 무장 가능성에 대해 물었습니다. 바이든 정부도 한국 내 핵 무장 여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확장억제강화를 위해 핵협의그룹 신설을 포함하는 '워싱턴 선언'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트럼프가 한국의 핵 무장에 적극적인 것처럼 보였다는 뉴욕타임스 백악관 출입기자 매기 하버만의 회고록 글을 예로 들며 재집권 시 트럼프가 한국의 핵 무장을 지지할 가능성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플라이츠 부의장은 트럼프가 김정은 위원장을 끌어내는 카드로 한국 핵 무장을 꺼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김 위원장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목적이라고는 하나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핵 무장 가능성을 언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트럼프식 화법을 빌자면 '북한 너희가 핵 포기 안 하면 한국에도 핵을 쥐여주겠다' 뭐 이쯤 되는 셈입니다. 그게 한국의 독자 핵 개발이 될지,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가 될지 그건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핵에는 핵으로 압박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플라이츠 부의장이 말한 대북 정책의 핵심이 한국 핵 무장은 아닙니다. 그는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미국과 북한, 북한과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과의 관계가 크게 개선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사견을 전제로 당선 즉시 긴장 완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국무장관을 북한으로 보낼 걸로 믿는다고도 말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핵 무장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게 될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상당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이 7차 핵 실험을 미루고 있는 이유는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미국과의 협상 여지를 남겨놓기 위해서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협상을 시작한다고 해도 이미 2차례 북미 협상에서 빈손 굴욕을 당한 북한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입니다. 비핵화 대가로 북한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답은 다소 뻔했습니다.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포함해 체제 안정과 제재 완화 같은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제재 완화가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는 현재 미국은 북한에 다수의 독자 제재를 부과 중이라며 이는 의회 승인 없이 대통령이 철회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철회를 요구했던 유엔 제재의 경우도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에 부정적인 만큼 안보리를 통해 제재를 완화하는 게 가능할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트럼프는 미국 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안보리가 막도록 허용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중러 밀착에 대해선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 많은 포탄이 불량인 걸 이미 지켜봤다며 이런 수준 이하의 군수품을 구매하는 건 러시아가 얼마나 절박한지를 보여주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북한이 미래를 원한다면 경제가 망가진 러시아와 함께 고립된 길을 가기보다 한미일 보여주는 다른 길을 갈 수 있을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경제 문제에서는 대중 수출 통제부터 물었습니다.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로 중국 내 한국 기업들의 고충이 큰데 트럼프 집권 시 수출 통제가 더욱 강화될 걸로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답은 명확했습니다. 중국에 대한 수출 통제와 관세는 상당히 엄격해질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유감스럽지만' 미국의 경제와 일부 동맹국 기업에게 타격을 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타이완 위기 등을 예로 들며 이런 압박은 트럼프가 중국의 행동을 바꾸도록 하는 수단이 될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중국 내 한국 공장이 문을 닫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좀 더 직설적으로 물었습니다. 여기에는 그에 대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며 즉답을 피하면서도 트럼프 재집권 초기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동맹국 기업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 될 거라면서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 동맹국과 협의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트럼프가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붙여야 한다고 말한 대상에 한국이 포함되는지도 물었습니다. 플라이츠 부의장은 미국이 한국에게 그렇게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고율 관세는 중국을 포함해 통상 문제를 일으키는 다른 나라들에게 해당하는 일이 될 거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중국이 더 많은 관세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해 관세 문제 역시 주요 타겟은 중국임을 내비쳤습니다.

솔직히 4건의 기소로 잊을만하면 법원에 출석해야 하는 트럼프가 한국 관련 정책까지 꼼꼼히 따져볼 여유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럴수록 그의 주변에서 관련 정책을 다듬는 사람들을 미리미리 파악해 우리 편으로 만들어 놓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인 만큼 그의 재집권 가능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