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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바늘구멍 뚫고 합격한 '철밥통' 공무원, 2년 만에 그만둔 사연

[복면제보] 전·현직 공무원이 제보한 공무원의 현실 (글 : 배윤주 작가)

스프 대나무슾 복면제보 CG
저는 27살, 퇴직 공무원입니다. 대학시절부터 일찍이 공무원이 되겠다며 진로를 정하고 공시생 생활 2년 만에 합격증을 거머쥐었습니다. 당시엔 취업시장이 얼어붙어 공무원이 각광받고 있을 때라 경쟁률도 치열했습니다. 암흑 같던 수험 생활 끝에 '합격'이란 두 글자를 보니 힘들었던 수험생활이 눈 녹듯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저는 지역에서 수험생활을 했지만 서울 행정직으로 합격한 터라, 취업과 동시에 서울로 올라가야 했는데요. 성공했다는 느낌도 들었고 진짜 어른이 되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것 같았죠.
 

기대와는 너무나도 달랐던 현실

제가 처음 근무하게 된 곳은 서울 한 구청의 '복지정책과'였습니다. 그곳에서 복지급여를 관리하고, 수급 대상의 적합 여부를 살피는 일을 했었는데요. 생활이 어려운 기초수급자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돈과 관련된 민원도 많았습니다.
 

공무원이라서 마주해야 했던 민원들

"미친 X아, 네가 뭘 알겠어. 윗사람 불러와. 네가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 내가 세금을 냈기 때문이야."

지원금은 법이 정해놓은 절차와 기준에 따라 지급됩니다. 저는 그걸 안내할 뿐이고요. 지원금을 달라는 요구를 무작정 들어줄 수 없어, 매번 화가 난 민원인을 응대해야 했습니다. 욕설은 일상이었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하대하기도 했습니다. 뚜렷한 해결책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 사람들에게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무력감도 느꼈습니다.

"하루 종일 걸려오는 전화 민원에 업무가 마비된 적도 있어요."

한 사람이 연달아 열 통 이상씩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게 되어도 받아야만 합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민원 응대를 하지 않은 게 되어 응대 점수도 깎이고 일도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반복적인 전화 민원을 대응하느라 다른 업무를 하지 못한 적도 많습니다.

"칼 들고 위협하기도 하고, 자해한다고 협박도 했어요."

민원은 폭언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행주에 식칼을 감싸고 온 뒤에 갑자기 꺼내 들고 위협을 하거나, 할복하겠다며 소리를 지르는 민원인도 있었습니다. 민원의 해결방법은 딱히 없습니다. 그저 민원인이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죠. 그러기 전까지 저는 종일 자리를 지키며 쏟아지는 폭언이나 협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민원응대 매뉴얼이 있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아요."

물론 민원이 발생할 경우, 담당 주무관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매뉴얼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실제 상황들이 발생할 때마다 매뉴얼대로 대처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죠. 일을 시작한 이후로 매뉴얼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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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피해를 보다 못해 대신 고발했어요"라는 또다른 제보

▶ 전과 14범의 상습적 악성민원인

보조금 지급과 관련해 '사회복지과'를 찾은 전과 14범의 민원인이 있었습니다. 조건이 맞지 않아 원칙에 따라 보조금 지급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 순간부터 악몽의 시작이었어요. 담당 주무관의 개인번호까지 알아내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전화로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욕들을 퍼부었습니다.

"네 엄마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어? 네 엄마가 XX라서 그래."

부모까지 들먹여가며 모멸감 주는 말들로 괴롭히며 수백 통의 전화를 했습니다. 그렇게 당한 기간만 3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고발을 선택했습니다. 이례적으로 고발까지 간 케이스이지만, 고발하기까지도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정작 피해를 당한 주무관들이 고발을 꺼려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이 일보다 훨씬 심하지만 조용히 묻히는 사례들이 훨씬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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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고발까지 갔고 결국 이 사람에겐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1천만 원의 벌금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악성민원으로 분류되어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판결받는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는데요. 한 사람에게 최소 300통 이상의 전화를 걸어야 괴롭힘이라고 분류되는 높은 기준 때문입니다.

이 악성민원인은 사회복지과뿐만 아니라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에도 1,000통이 넘도록 전화를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은 담당자가 여러 명이라 한 명당 할당되는 통화가 300통 미만이라 성립이 되지 않았죠. 더 안타까운 점은 이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집행방해죄는 성립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괴롭힘을 당해야 '악성민원'으로 구분될 수 있는 걸까요?
 

'참아라'식의 공무원 문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악성민원보다, 악성민원을 대하는 상급자들의 자세입니다. 조직 내 상급자들은 무조건 참으라고 합니다. 실제로 폭언을 듣고 있는 담당주무관에게 부서장이 다가와 그냥 민원인에게 사과를 하라고 권유하는 게 현실이죠. '공무원이니 참아라, 일을 키우지 말아라' 부서장이 늘 하는 소리입니다. 민원인에게 맞아 고소, 고발까지 이어진다 해도 돌아오는 것은 왜 참지 못했냐는 질타뿐입니다. '참는 것'은 이제 공무원의 문화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나도 그런 시절을 겪어왔어. 너도 부서장이 되면 내 마음을 이해할 거야. 네가 참아야지 어떡하겠어."

시장, 부시장 등 간부진들에게 더 잘 보여야 해서일까요? 부서장은 직원을 보호한다기보다 무능한 부서장으로 낙인찍힐까 두려워합니다.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부서가 시끄러운 부서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더 강하죠. 그 과정에서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직원들은 보호받지 못하곤 합니다.
 

보호받을 수 없는 공무원들

민원에 시달리던 어느 날 출근길에서부터 심장이 두근대고 답답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도 무섭게 여겨지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게 힘들어졌어요.

증상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고 우울증,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업무로 오는 스트레스가 큰 것 같으니 담당 정신과 전문의는 휴직을 권했죠. 당시에 퇴사도 고려해 봤지만 가족들이 반대해 휴직을 하기로 했습니다.
 

현실적인 대안은 휴직이나 다른 부서 발령?

복직하면서는 새로운 부서로 발령받았습니다. 새 부서는 기존 부서보다도 더 민원이 극심한 곳이었습니다. '가로경관과' 였는데 길거리 노점상, 불법으로 거리를 점령한 사람들을 단속하는 일이었습니다. 현장으로 나가면 매일 저에게 욕이 쏟아지고, 흥분한 상인들이 던지는 의자나 소주병에 맞는 일도 많았어요.

"이 사람을 다른 부서로 그냥 발령을 내는 게 다인데요, 그마저도 본인이 원하는 부서로 가지 못하죠. 그리고 악성민원을 유발한 사람으로 조직 내에 낙인찍힙니다."

휴직이나 부서발령 외에 도움을 받을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요? 사실 어떤 방법으로 도움 받을 수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알려준 사람도 없었고,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나마 고충 상담을 지원해 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고충 상담을 해볼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저만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것도 아닌데 유난 떤다고 생각할까 봐, 조직 내에서 튀어 보일까 봐 활용할 생각을 못했어요. 병가, 휴직 정도가 저에게는 유일한 수단이었어요.

"설사 소송까지 가더라도 실질적으로 도움받긴 어려워요."

만일 행정소송으로 가더라도 구청에 있는 변호사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받는 건 어렵습니다. 법원에 출석해야 하고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 모든 자료는 담당 주무관이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변호사에게는 자문을 구하는 정도로만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악성민원에 시달리다 설사 고소·고발로 이어지더라도 민원인에게 두고두고 괴롭힘을 받을까 두려워 번번이 취하하기 마련이죠.
 

MZ세대가 퇴직을 선택하는 이유

안정적인 직장을 꿈꿔 공무원이 됐지만 하루하루 지내는 것도 불안해해야 했습니다. 결국 저는 퇴직을 선택했습니다. 더 이상 끊임없이 이어지는 악성민원을 감당할 자신도, 업무에 성과를 낼 이유도, 사명감을 느낄 만큼의 금전적인 보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저는 퇴직했지만 사명감을 갖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동료 공무원들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공무원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그리고 공무원을 대하는 태도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의 복면제보는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정훈 서울시 감정노동센터 소장,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함께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지속적으로 악성 민원을 넣는 악성 민원인의 심리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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