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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회평균법관'과 반지성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

한국 민주주의의 기로가 될지도 모를 오늘과 내일

대법관에 취임한 권영준 전 서울대 교수

최근 잇따른 교사들의 죽음을 통해 일부 학부모들의 과도한 교권 침해 행위가 사회적 논란이 되면서 대통령도 대책 마련을 지시했습니다. 지난 9월 12일 윤석열 대통령은 교권 침해 현상의 해법 중 하나로 '형법상 정당행위 규정에 따른 교권행사 가이드라인' 설정을 주문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정당행위'란 형법 20조에 규정된 것으로,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社會常規)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는 벌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사회적으로 상식선에 들어온다고 판단된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적인 상식'을 의미하는 '사회상규'는 무엇을 기준으로 정하는 것일까요? 우리 법은 이에 대해 '평균인이 건전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옳다고 승인할 만한 정상적인 행위규칙'이라는 정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법은 '사회적으로 봤을 때 평균적인 사람', 즉 '사회평균인'의 생각을 기준으로 '상식'의 기준을 정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평균인'은 누구인가?

하지만 또 다른 의문이 남습니다. '대체 어떤 정도의 사람을 <사회평균인>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의 사람들을 지능 순으로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워 놓은 뒤 중간 언저리의 사람을 '평균인'으로 정의할 것인지, 지능이 전부는 아니니 도덕성을 기준으로 성인군자와 흉악범 사이 어느 언저리의 사람 정도를 '평균인'으로 정의할 것인지, 우리 법은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사회평균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 대법관들부터 법학자들까지 우리 사회 내로라하는 지성들의 논의가 있어왔습니다. 그 논의들 중 꽤나 흥미로운 자료가 있습니다. 서울 법대 교수 재직 시절 대형 로펌들에게 의견서를 써주고 초 고액 보수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대법관에 취임한 권영준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불법행위의 과실 판단과 사회평균인>입니다.

권영준 대법관에게 임명장 수여하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여러 판례와 철학적 고민을 종합한 이 논문에서 권 대법관은 '평균인은 그 사회구성원의 산술평균값에 해당하는 사람(실증적 평균인)이 아니라, 그 사회구성원이 마땅히 따라야 할 속성을 지닌 사람(규범적 평균인)'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수능 등급으로 따지면 평균 5등급 정도의 '실증적 평균인'이 아닌, '누구나 일정한 안정감과 신뢰감 속에 따를 수 있는 규범'을 내재한 '규범적 평균인'이 법적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권 대법관은 그러면서도 '규범적 평균인'이 현실에 존재하는 '실증적 평균인'과 너무나 동떨어져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실증적 평균인의 역할은 거기까지'라며 '실증적 평균인이 즐겨 따르는 관행이 늘 규범적으로 올바르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어디까지가 음란물이고 어디까지가 음란물이 아닌지를 법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법관은 '사회평균인'을 판단 기준으로 삼게 되는데, 이때 법관은 현재 사회에 존재하는 '실증적 평균인'들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외설'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은 바뀌었는데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던 시절의 규범을 적용해 음란물 판정을 내린다면, 범죄자를 대량 양산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실증적 평균 남성' 대다수가 외설적인 야동을 본 적이 있다고 해서 이를 기준으로 음란물을 판단해서도 곤란합니다. 법관이 '규범적 평균인'의 관점을 도외시한 채 '사회평균인'을 설정할 경우, 과도한 성적 대상화를 야기하거나 성착취로 이어질 수 있는 제작물까지 법적 제재를 피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법에 세세하게 규율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안마다 판단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 법관은, 이처럼 실증적 평균인과 완전히 괴리되지 않으면서도 사회가 지켜야 할 규범을 내포한 '사회 평균인'을 정교하게 설정해야 합니다.
 

'사회평균법관'과 '실증적 평균법관'의 괴리

그런데 법률가들의 논의에서 고려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법관들로부터 판단을 받는 사회 구성원들 또한 마음속으로 법관들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속에서 시간을 지나며 형성되는 법관들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비록 곧바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법부의 권위에도 장기적이고도 근본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맹자가 얘기한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처럼, 사법부의 권위와 영향력은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에 떠있는 배와도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법의 적용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들이 상정하는 법관에 대한 판단 기준을 뜻하는 '사회평균법관'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볼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사회평균인'과 '실증적 평균인', '규범적 평균인'과의 관계를 적용해 본다면, 구성원들이 기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평균법관' 또한 법관들의 산술 평균치라고 할 수 있는 '실증적 평균 법관'을 출발점으로 하되, 우리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법관상인 '규범적 평균 법관'에 가까워야만 할 것입니다. 구성원이 법관을 선출하지 않아 사법부의 민주적 대표성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사회평균법관'의 의미는 더욱 중요합니다.

근무 시간에 성매매를 하다가 적발된 판사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되는 '실증적 평균 법관'의 나쁜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하게는 근무 시간에 성매매를 하다가 적발된 판사부터, 이보다는 가볍지만 정치적 견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자신의 SNS 게시물조차 삭제하지 않고 정치인에 대한 판결을 선고한 판사까지. 미디어에 드러난 법관들을 보며 사회 구성원들은 법관들의 '실증 평균'을 하향 조정 할 공산이 큽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구성원들의 마음속에서는 '실증적 평균법관'과 '규범적 평균법관' 사이의 거대한 괴리가 만들어지고, 우리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사회평균법관'이 자리할 곳은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최근 있었던 두 대법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앤장, 세종, 율촌 등 대형 로펌들에게 수년간 초고액 의견서 60여 건을 써 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자, 대한민국 중요 소송의 대다수를 담당하는 이들 로펌 사건을 모두 회피하겠다는 비현실적 대책을 내놓은 대법관 후보자. 처가 회사의 비상장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고위 공직자 재산 신고를 누락하고, 처가 회사의 세법ㆍ노동법 회피 의혹은 알지 못했다고 해명한 대법원장 후보자. 평판사도 아닌 대법관 후보자들의 이러한 의혹과 해명을 보며, 그저 그렇게 살아온 사회 구성원들은 '저들도 별 것 아니네'라는 생각을 할 것이고, 선량하게 살아온 이들은 '공부는 잘했을지언정 도덕성은 나보다 못하네'라는 생각을 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최고의 지성 집단 중 하나라는 사법부에 대한 이런 인식은 사회 엘리트 집단에 대한 '반지성주의'가 싹트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반지성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

현대 민주주의의 표본이자 모범이라 여겨졌던 미국의 민주주의가 남미의 여느 국가들처럼 무너진 현상을 다각도로 고찰한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읽으며 놀랄 때가 많았습니다. 길게는 20년, 짧게는 몇 년 전 미국에서 일어났던 민주주의의 붕괴 사례는 아시아 민주주의의 표본이자 모범이라던 태평양 건너 대한민국의 정치권에서 반복 재생되고 있습니다.
 
상원 내 민주당 인사들은 조언과 동의에서도 자제의 규범에서 점차 멀어졌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반대하거나, 혹은 청문회를 열지 않는 방식으로 부시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을 전례 없이 강력하게 저지했다. 연방대법원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는 대통령 권한에 대한 존경의 규범이 사라졌다. (...) 민주당이 대통령의 행보를 막기 위해 자제의 규범을 저버렸다면 공화당은 그들의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그 규범을 외면했다. (...) 공화당이 대통령을 감시해야 하는 역할을 사실상 포기하면서,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 능력은 크게 위축되고 말았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저, 박세연 역

이균용 후보자 인사청문회

10여 년 전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는 6일(모레)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을 앞둔 한국의 정치권은 극한의 대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과반을 점한 제1야당이자 단독으로도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킬 수 있는 민주당은 부결 시사 메시지를 잇따라 내놨습니다. 민주당 대법원장 인사청문특위 간사인 박용진 의원은 어제 SNS에 글을 올려 "대법원장은 그 어느 자리보다 높은 도덕성과 준법 의식, 책임감, 균형감각을 가져야 하지만 불운하게도 이균용 후보자는 그런 후보자가 아니었다"고 밝혔습니다. 박 의원은 SBS와의 통화에서도 "모든 것이 더 의심스러워지는 인사청문회 과정이었다"며 "의원총회에서 자신 있게 대법원장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으로 우리 시대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 분명하게 국회의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보고했다"고 말했습니다. 새로 민주당 원내대표에 선출된 홍익표 의원도 어제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대법원장의 공백에 따른 혼란보다 부적절한 인물이 대법원장에 취임함으로 인한 사법부의 공황 상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판사 출신인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 (사진=연합뉴스)

여당인 국민의힘은 같은 인물에 대해 정반대의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언론에 "이 후보자에 대한 야당의 지적은 '지적을 위한 지적'에 불과하다"며 "지금껏 판사로서 보여준 역량이 대법원장을 역임하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평가를 내놨습니다. 판사 출신인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여기서 더 나아갔습니다. 장 원내대변인은 어제 국회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결국은 앞으로 닥쳐올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위해서는 사법부 공백은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우리 사회를 지나치게 좌경화시켰다고 평가하는 여당은 윤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을 조속히 취임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원내 대변인이 협상 상대 당 대표의 범죄 혐의를 언급하며 공세를 취한 것입니다.

세계적인 비교정치학자이자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는 앞서 언급한 책에서 '잘 설계된 제도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는 사실 절제와 관용이라는 규범'이라고 말합니다. 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이지만 규범적으로는 자제해 온 정치적 행위들이 하나 둘 실행될 때, 민주주의의 제방은 무너지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법적으로는 실행될 수 있었지만 그동안 규범적으로 거의 실행되지 않았던 '대법원장 인준 부결'을 목도하기 일보직전에 와 있습니다. 기자가 상세히 알지 못하는 '물밑 조율'이 이뤄지고 있으리라고 믿고 싶지만, 오로지 상대를 탓하기에 익숙한 한국의 정치세력들은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서로를 향해 전력 질주 하고 있습니다.
 

모레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정치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긴 추석 연휴가 지났습니다. 연휴를 앞두고 언론은 종종 밥상머리에서의 정치 논쟁이 벌어지는 풍경을 상상하곤 합니다. 그러나 생각이 다른 상대를 적으로 여기고 죽기 살기로 부딪치는 정치권의 행위자들과는 달리, 생각이 다른 대다수의 '평균인'들은 얼굴과 머리를 맞댄 자리에서 싸움보다는 해결의 사잇길을 찾곤 합니다. 우리 생활 세계의 수준이 정치 세계를 빼닮았더라면 연휴 동안 만난 생각이 다른 이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패싸움을 벌여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일구어가는 생활 세계는 정치 세계의 풍경처럼 황폐하지 않았습니다.

국회, 이균용

제가 몸담고 있는 언론계를 비롯, 각계의 지식인 연하는 사람들은 사회와 정치 분야의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을 마주할 때마다 뭇사람들에게 만연한 '반지성주의'를 개탄하고는 합니다. 이런 태도는 뭇사람들의 반지성주의와 낮은 '민도'가 우리 사회 시스템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손쉬운 해석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반지성주의'는 과연 어디에 가장 심각하게 퍼져 있는 것인지 한번 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회 평균인'은커녕 '실증적 평균인'들에게도 존중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사법 엘리트들과, 본연의 조정 기능은 내팽개친 채 흡사 투견장의 개들처럼 싸우고 있는 정치 영역의 엘리트들, 그리고 이를 경마 중계하듯이 실어 나르고 있는 미디어 종사자들은 서로의 상식과 지성을 믿지 못한 채 전투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표결을 앞둔 오늘과 내일, 대한민국 언론과 정치권에서 오갈 논의의 수준은 여기에서 한 걸음, 아니 반의 반 걸음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을까요? 앞으로의 이틀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기념비적인 시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참고문헌]
* <불법행위의 과실 판단과 사회평균인>, 권영준, 비교사법 제22권 제1호(통권 제68호)
*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저, 박세연 역,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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