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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꼬꼬무' 2004년 대구 경산 주택가 연쇄방화사건…유령이었던 방화범의 정체는?

꼬꼬무

24번의 방화를 저지른 방화범은 누구?

28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무적가족과 스물네 번째 불'이라는 부제로 2004년 대구 경산 주택가 연쇄 방화사건을 조명했다.

지난 2004년 대구와 경산을 중심으로 연이은 화재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누전이나 과열을 의심했으나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화재 사건들에 공통점이 있었던 것. 노령의 집주인이 거주하는 단독 주택을 대상으로 대부분 집주인이 집을 비운 오전에 화재가 일어난 것이다. 또한 발화지점은 안방이나 거실이었고, 집 안의 옷가지들과 이불을 쌓아두고 식용유, 간장, 식초, 밀가루 등 양념을 뿌린 흔적이 존재했다. 게다가 현장에 용변까지 본 흔적이 포착되어 눈길을 끌었다.

이에 경찰은 이 사건들을 연쇄 방화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무려 6월부터 10월까지 단 5개월 동안 24번의 방화가 일어났던 것.

경찰은 현장의 지문과 족적 등을 찾아 범인을 추적했다. 그러나 족적은 의미가 없었고, 지문은 어떤 데이터 베이스와도 일치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도난도 일어났는데, 도난당한 것들은 현금, 귀금속을 포함해 돼지 저금통, 담배, 술, 면도기, 향수, 헤어 드라이기, 믹서기 등 생활용품들이었다.

연쇄 방화 사건의 추산 피해액은 총 6억 원. 이에 경찰은 방화범을 찾기 위해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피해자들이 부동산 벽보를 붙인 경험이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젊은 청년이 방을 보러 오겠다고 연락을 해왔고, 직접 방문을 하거나 전화 통화를 통해 집의 구조와 가족이 몇 명인지 현재 몇 명이 거주하는지도 모두 확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 청년은 바로 이사를 하겠다며 짐을 먼저 가지고 왔고, 이삿짐 차가 접촉 사고가 나서 급하게 합의금이 필요하다는 등의 핑계를 대며 집주인에게서 돈을 빌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 청년은 돌아오지 않았고, 한 달 뒤 화재가 발생했던 것,

이에 경찰은 피해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방화범의 몽타주를 만들었다. 그리고 키는 160cm 정도에 2, 30대 남성의 몽타주를 완성했다. 그런데 이때 피해자들이 또 다른 인물을 거론했다. 이는 남성이 아닌 5, 60대 중년 여성이었다.

특히 피해자들은 젊은 청년이 중년 여성에게 엄마라고 불렀다고 말해, 모자지간일 수 있는 방화범들을 잡기 위해 몽타주를 전국적으로 배포했다.

사건 발생 4개월 후 배포된 몽타주를 중심으로 수사도 급물살을 탔다. 그리고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되자 방화 또한 중단됐다. 그런데 방화가 중단된 후 대구, 경산 지역에 빈집 털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해 눈길을 끌었다.

11월 6일, 김상래 경장은 방화범을 찾기 위해 귀가 전 몽타주를 배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몽타주 속 여성과 비슷한 인상착의의 여성을 만났고, 이에 여성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런데 이때 한 남자가 미친 듯 뛰어와서 김경장을 덮쳤고, "엄마 도망쳐"라고 외쳤다. 이어 그는 흉기를 꺼내 김경장을 찌르고 여성과 함께 도주했다. 김경장은 흉기에 찔린 복부를 움켜쥐고 범인을 끝까지 쫓았고, 이들은 김경장의 지원 요청에 달려온 경찰들에게 체포됐다.

체포된 이들은 24살의 박 모 씨와 68살 김 모 씨, 이들은 모자지간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잡는데 공을 세운 김경장은 급히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사망하고 말았다.

경찰들은 방화범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은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무적자였다. 무적자란 국적, 호적이 없는 이들로 김 씨는 70년대부터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고, 박 씨는 24살이 되도록 출생신고 조차 되어 있지 않은 무적자였다. 이에 지문 조회를 했음에도 기록에 없는 두 사람을 찾을 수가 없던 것이었다.

불을 왜 질렀냐는 질문에 이들은 먹고살려고 절도를 했는데 증거가 남을까 봐 방화를 했다고 주장했다. 경산에 살며 대구를 오가며 방화를 저지른 두 사람. 경찰은 이들과 함께 두 사람의 집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김 모 씨의 아들 둘을 만났다. 엄마와 형이 훔친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고 있던 이들은 수갑을 찬 엄마를 보고 "엄마 잡힌 거야?"라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유일신이었던 엄마의 범행을 아이들도 분명 알았을 터.

세 아들의 엄마인 김 모 씨는 자신의 고향을 충청도라 밝혔다. 그리고 과거 산부인과 간호사로 집도 있었지만 어떤 이유로 집을 나오게 됐고 이후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삼 형제의 친부가 등장했다. 그는 왜 아들들의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아들들이 혼외자임을 밝혔다. 그는 두 집 살림을 하며 김 씨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호적에 올려준다 말만 하며 차일피일 미뤘던 것.

특히 삼 형제의 친부는 직업이 전직 경찰로 드러나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이에 이 사건은 경찰 아들이 현직 경찰을 칼로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삼 형제는 껍데기만 인간인 유령 같은 생활을 했다. 호적이 없으니 학교에 가는 것도 물론이고 취직도 할 수 없는 상황. 부모의 무책임한 결정으로 유령처럼 살아야 했던 것이다.

홈스쿨링으로만 교육이 이뤄지고 집 밖에도 잘 못 나간 삼 형제. 이들은 그냥 집에 있었다며 학교 이야기를 꺼내자 눈물을 흘렸다.

무적 가족의 어머니인 김 씨는 삼 형제의 생계를 책임졌다. 그러다 큰 아들이 성인이 되며 공장에서 일을 해 생계에 보탬이 되려 했다. 그러나 호적이 없어 신분증도 통장도 없던 이들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결국 범죄로 먹고살기 시작했다.

이웃과도 분리됐던 가족들. 하지만 이들 간의 유대감은 그 어떤 것보다 단단하고 견고했다. 영화 '어느 가족' 속 실제 가족 같은 모습이었던 것. 서로만을 의지하며 절도한 것으로 생계를 이어간 무적 가족.

연쇄 방화 전문가는 이들에 대해 "범죄라는 것을 저지르기 위해서 공통의 이익이나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특정한 욕구를 갖고 불을 저지르고 그런 것을 반복해서 같이할 공범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라며 "사적이고 과잉된 감정이 필요한 범죄인데 증거 인멸을 위해 방화를 했다는 것 앞뒤가 맞지 않는다. 평소에 억눌려 있는 감정을 '나는 힘이 없지만 불이 도와주면 할 수 있어'라는 마음으로 표출했던 게 아닐까"라고 증거 인멸이라는 합리적인 행동 이면에 범죄자의 감정적인 측면들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피해자들의 연령과 비슷했던 김 씨. 그는 피해자들의 집에 들어갈 때마다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들은 신분증, 통장, 도장, 대학생 수첩, 졸업 메달 같은 것도 훔쳤는데 이들이 진짜로 훔치고 싶었던 것은 평범한 삶이 아니었을까.

사기 절도 40회, 방화 24회. 수많은 범죄에도 아들 박 씨는 피해자보다 가족들을 걱정했다. 이에 피해자들을 향해 진심 어린 사죄나 피해보상을 하지 못했고 결국 박 씨는 무기징역, 김 씨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형을 받는다.

범죄 피해자 구제 대안이 부실했던 당시 피해자들의 고충도 상당했다.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어 쉼터를 전전했던 것. 그러나 이들은 방화범들을 보며 복잡한 마음이 됐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방화범들은 재판 과정에서 호적이 생기고, 주민등록증이 살아나 눈길을 끌었다.

이후 경산으로 돌아간 엄마 김 씨는, 남은 두 아들과 살다가 어느 날 깨끗이 방을 치우고 떠났다. 그리고 그 후 감옥에 있던 장남은 어떻게 됐는지 엄마 김 씨와 아들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방송은 지금 이 시간 유령처럼으로 살아가고 있는 무적자가 있다면 반드시 주변에 도움을 청하라고 조언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더불어 살아야 하며 스스로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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