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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머리카락이 많이 드러났다"며 죽음 당한 22살 아미니, 그 후 1년

[더 스피커] '더 많이 가리지 않아서'라는 게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22살 마흐사 아미니가 숨진 이유

지난해 9월 13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한 여성이 갑자기 체포됐습니다. 여성의 이름은 마흐사 아미니. 당시 가족과 함께 테헤란에 있는 친척집에 방문하던 중이었습니다. 아미니는 '공공장소 복장 규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21세기에 '복장 규정 위반'이라니, 생소한 걸 넘어서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아미니는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아서 체포됐습니다. 히잡을 안 쓰고 있었던 게 아니라, 아미니가 착용한 히잡 아래로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드러났다는 이유였습니다.

체포 사흘 뒤인 9월 16일, 혼수상태에 빠졌던 아미니는 숨졌습니다. 당시 아미니의 나이는 22살이었습니다. 경찰은 "아미니에게 기저질환이 있었고, 이 때문에 사망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말 아미니는 기저질환이 있었을까요? 유족의 말은 다릅니다. 가족들은 아미니의 머리와 팔, 다리에 구타 흔적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의 각종 고문과 폭행으로 아미니가 숨졌다는 겁니다.

마흐사 아미니
22살 여성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수많은 의문을 남겼고, 곧 분노로 번졌습니다. 아미니의 사망 원인을 두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열렸습니다. 동시에 여성에게 히잡 착용을 강요하지 말라는 시위도 일어났습니다. 이른바 '히잡 시위'입니다. 시위는 주로 여성들이 이끌었습니다. 히잡 시위에 참석한 여성들은 히잡 속에 꽁꽁 감춰뒀던 머리를 보란 듯이 잘랐고, 히잡을 공개적으로 불태웠습니다. '나에게 히잡을 강요하지 말라'는 표현이었죠. 수개월간 이어진 히잡 시위는 반정부 시위로 확대됐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용기가 이란 전체를 흔들었습니다.

분노가 들끓을수록 이란 정부의 진압은 더 강경해졌습니다.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이란 정부의 진압으로 550여 명이 숨지고 2만 2천여 명이 체포됐습니다. 정부의 강경한 진압에 시위는 점점 동력을 잃었고, 서서히 잊혀져 갔습니다.

아미니가 사망한 지 1년이 넘었습니다. 히잡 시위 역시 1주년을 맞았죠. 이란 정부는 히잡 시위 1주년을 맞아 다시 시위가 촉발할 것을 우려해서인지 아미니 유가족에 대한 감시 강도를 높였습니다. 비정부단체 쿠르드인권 네트워크는 이란 정부가 최근 몇 주 동안 아미니의 유가족을 갑자기 소환하거나 체포하고, 위협을 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아미니를 추모하려는 최소한의 움직임조차 막은 겁니다.

이란서 히잡 규칙을 위반한 혐의로 사망한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시위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정치적 수단이 되어버린 히잡

이쯤에서 한 가지 궁금해지죠. 이란 정부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 왜 이렇게까지 히잡 착용을 강요하는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히잡은 '가리다(또는 격리하다)'를 뜻하는 단어에서 파생됐습니다. 이슬람 경전에는 '여성은 아름다운 곳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라'라고 돼 있습니다. 남성을 유혹하지 않기 위해서 여성이 천 등으로 신체를 가리라는 겁니다. 히잡은 본인의 종교적 신념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도 쓰였지만, 남성이 유혹에 빠지지 않게끔 여성이 셀프로, 또 알아서 조심하라는 의미도 곁들여져 있었죠.

사실 이란 정부가 이전부터 쭉 히잡 착용을 강요해 왔던 건 아닙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히잡을 꼭 착용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짧은 치마를 입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 등 현재와 달리 꽤나 자유로웠습니다. 하지만 1979년 발생한 이슬람 혁명으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서구 문화 철퇴, 이슬람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혁명에 이슬람 신도임을 드러내는 히잡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복장을 규제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4년 뒤인 1983년부터는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이 의무화됐습니다.

히잡 착용을 강요하는 건 국가가 '개인에 대한 영향력'을 드러낼 수 있는 아주 쉬운 수단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여성에겐 태형 같은 직접적인 처벌이 가해졌습니다. 정부는 길거리에 지도순찰대라고 불리는 도덕경찰을 배치해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착용했는지 감시했습니다. '히잡을 제대로 착용했는가'를 판단하는 주체는 국가였습니다. 기준도 국가가 정하고, 판단도 국가가 하고, 처벌도 국가가 했습니다. 개인의 선호, 자유는 고려되지 않은 채 말이죠.

히잡 자체가 여성에 대한 억압은 아니었지만, 국가가 여성에게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것은 억압으로 작용했습니다. 핵심은 자기 결정권이 박탈됐다는 겁니다. 여성에게 히잡을 착용하지 않을 자유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선택도 불가능했습니다. 좋든 싫든, 개인의 의사가 무엇이든 간에 무조건적으로 히잡을 착용해야 했죠.

정부의 '히잡 착용 의무화' 선언 → 위반 시 처벌 의사 밝힘 → 처벌 피하기 위한 개인이 무조건적으로 히잡 착용

이 현상은 정부가 개인, 특히 여성을 어떻게 통제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통제를 강화해 국가의 정치력을 드러내려고 했던 겁니다.

더 스피커 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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