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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은 '대국민 사기극'? 집값 통계가 나아갈 길

부정확한 집값 통계가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이어져

[취재파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은 '대국민 사기극'? 집값 통계가 나아갈 길
국토교통부를 출입하면서 가장 의아했던 보도자료는 매주 목요일에 나오는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자료였습니다. 한국부동산원은 매주 각 광역자치단체는 물론 200개 남짓한 시군구 단위 주택 가격 동향까지 세부적으로 공표하는데, 의미하는 바가 모호했기 때문입니다. '도봉구 0.01% 상승, 강남구 0.01% 하락'과 같이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집값 변동 흐름을 짚었지만, 한 채 당 수 억 원이 넘는 가격에 수십 만 원 상당의 변동 폭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도입된 아파트 가격 주간 조사의 효용성과 정확성에 대해 전문가들 역시 꾸준히 회의적이었습니다.

한국부동산원·KB '실거래가-호가' 혼용…집값 흐름 정반대로 분석하기도

아파트, KB, 한국부동산원

한국부동산원의 통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본격적으로 나온 시점은 집값이 한참 뛰던 2020년 즈음입니다. 특히 민간 통계인 KB국민은행 조사와 한국부동산원이 집값의 흐름을 정반대로 분석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두 통계 중 어떤 것이 정확한 것이냐는 갑론을박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집계 방식과 표본이 차이에 더해, 공공과 민간 모두 실거래가와 호가가 뒤섞인 조사대상 가격을 활용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조사하는 대상의 가격 기준이 제각각이다 보니 같은 시기, 같은 아파트 단지에 대한 조사에서도 차이가 컸던 겁니다.

미국, 집값 공표 주기 길고 구역도 광범위


'정확성'은 통계의 생명과도 같습니다. 이를 담보하려면 조사 과정의 신속성은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합니다. 조사기간이 짧아서 생기는 문제는 다름 아닌 '부정확함'입니다. 월, 화 이틀 동안 전국의 주택 가격을 조사해서 목요일에 결과를 발표하는 사례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주택 가격 지수는 연방주택금융청에서 생산하는 FHFA 지수와 민간 기관인 S&P가 생산하는 케이스-실러 지수입니다. FHFA 지수는 월, 분기, 연으로 나뉘는데, 월간 지수 공표는 전국을 9개 센서스 구역으로 묶어 매우 광범위한 결과를 발표합니다. 케이스-실러 지수는 매월 공표하지만, 전국 및 20개 대도시권 통계권역의 지수만 공표되며 소지역별 지수는 공표되지 않습니다. 한국부동산원이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를 209개 시군구 단위까지 공표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일기예보처럼 발표되는 집값 통계? 표본 가격 신뢰성부터 높여야

(사진=연합뉴스)

한국의 부동산 가격 통계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표본 가격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도 부족합니다. 부동산 통계 작성 시 한국처럼 호가와 실거래가를 혼합하여 지수를 작성하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캐나다와 미국과 영국 모두 공공기관에서 작성하는 가격 지수는 실거래가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는 집값 통계 작성에 있어 어떤 걸 중점에 두고 있을까요. 2013년 ILO, IMF, OECD 등 6개 국제기구가 공동으로 출간한 책이 있습니다. ' 주택가격지수에 대한 핸드북(Handbook on Residential Property Prices Indices)'. 전 세계적으로 주택가격지수 생산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책으로 손에 꼽힙니다. 여기선 주택 통계의 기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 정확한 자료 생산을 위해서는 조사 결과 그대로를 집계하는 것이 아니라 오류 수정, 지나치게 값이 높거나 낮은 이상치(outlier) 처리 등을 위한 자료 처리(data editing) 및 보정(revision)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보정은 정확한 가격을 측정하기 위해 사후적으로 데이터를 수정하는 과정이다. 글을 쓸 때 퇴고를 거듭할수록 좋은 글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료 생산 과정에서 자료 처리와 보정을 많이 할수록 좋은 자료가 생산된다." 조사 수행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조사된 표본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후속 작업이 주택 가격 산정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조사원에 의한 비표본 오차를 줄이고 오류를 재차 검증하는 방식입니다.

부정확한 통계는 잘못된 주택 정책으로 이어져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집값 통계의 오류는 잘못된 의사결정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정부가 발표하는 큰 주택 대책은 1년에 한두 번인데, 이를 위해서 신속성보다는 정확한 자료 생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실시간 집값 호가를 발표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확한 실거래가를 토대로 각각 입력된 자료들이 맞는지 검증 혹은 보정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지금의 통계 논란은 감사원이 문제 삼는 보정 작업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잘못된 통계 생산 구조가 문제다. 신뢰도가 극히 낮은 '주간 단위 주택 가격 동향' 발표는 모두가 오랫동안 묵인한 대국민 사기극이다."

* 자료 참고 )
한국도시연구소, 실거래가 분석을 통해 본 주거 정책의 현안과 과제
ILO, IMF, OECD, UNECE, The World Bank, Eurostat , '주택가격지수에 대한 핸드북(Handbook on Residential Property Prices Ind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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