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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서행 KTX'는 왜 핵심 쟁점이 되었나

[취재파일] '수서행 KTX'는 왜 핵심 쟁점이 되었나
나흘간의 파업을 마친 철도노조는 당분간 협의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이번 파업의 쟁점이 됐던 사안들에 대해 다음 달부터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당장 준비했던 2차 파업 일정을 중단한다고 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파업의 핵심 쟁점에 대해 노-정이 평행선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의 갈등 스토리는 1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파업 핵심 쟁점 '수서행 KTX 도입'…왜?

이번 파업의 핵심 쟁점은 바로 수서행 KTX 도입이다. 현재 KTX는 서울역, SRT는 수서역을 기반으로 운행되고 있는데, 일부 구간에 대해 'KTX도 SRT 노선으로 다니게 하자' 그러니까 서울역이 아닌 수서역에서 KTX가 가도록 하자는 게 철도노조의 주장이다. 언뜻 손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은 문제인데, 파업으로까지 이어진 이유는 뭘까.

지난 1일부터 수서고속철도(SRT)가 노선을 확대해 경전선과 전라선, 동해선에도 운행을 시작했다. 노선을 확대하면서 기존 경부선, 수서-부산 노선은 11.2%, 하루 최대 4,920석이 감축됐다. 당연히 이용객들의 불만이 생겼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대가 부산참여연대 등과 설문조사를 시행해 '부선-수서역 이용자 10명 중 7명(71.2%)이 부산-수서 KTX 도입이 필요하다'는 설문조사 결과 내놓기도 했다. 국토부는 '수서-부산' SRT 노선 대신 '서울-부산' KTX 노선을 왕복 3회 증편했는데, 철도노조는 서울이 아닌 수서역을 출발역, 혹은 종착역으로 하는 KTX 노선을 투입해달라고 주장한다. 목적지가 서울 강남지역인 SRT 이용객들이 서울역에서 내려 다시 강남으로 이동하거나 부산에서 KTX를 탄 뒤에 중간에 SRT로 갈아타는 불편을 막자는 거다.
 
최명호 철도노조 위원장(지난 13일, 교섭 결렬 직후)
"수서행 KTX를 통한 국민 불편 해소, 좌석 증대 등 국민 편익과 공공철도 확대를 요구했지만 국토부와 철도공사는 국민 편익을 외면했다. 이제 국토부는 왜 KTX는 수서로 갈 수 없는지 답해야 한다."

철도노조 파업

반면, 국토부는 KTX와 SRT의 선로 사용료와 요금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어렵다고 설명한다. 코레일은 운송수입의 34%, SRT를 운행하는 ㈜SR은 50%를 한국철도시설공단에 내고 있고 요금도 SRT가 KTX보다 10% 정도 저렴하다. 이렇게 정부가 가시적으로는 선로 사용료, 요금체계 등을 거론하고 있지만, 실제론 철도노조의 위와 같은 주장이 2013년부터 시작된 KTX와 SRT의 이원화 체계를 근본부터 흔들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 '철도 경쟁체제'라는 정부 정책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힌 이유기도 하다.
 
박지홍 국토교통부 철도국장(지난 13일)
"노사 간 교섭 사항 외 정부 정책 사항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

"현 정부는 철도 민영화는 전혀 검토한 바가 없다. 철도 통합 여부는 장기간 논의 거쳐 현 경쟁 체계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수서행 KTX는 이런 경쟁체계 위반할 뿐 아니라 선로, 용량, 차량 부족 등 운행 여건과 제도적 기반이 미비하기 때문에 당장 시행하는 건 어렵다."

철도노조 파업

'철도 경쟁체제' 대립…'철도 민영화' 연관

'철도 경쟁체제'에 대한 노-정의 대립은 오래된 '철도 민영화' 논란과도 맞닿아있다. SRT는 코레일의 만성 적자와 막대한 부채가 방만한 경영 탓이라고 본 박근혜 정부 때 도입됐다. 2013년 12월 고속철도 간에도 경쟁이 필요하다며 ㈜SR을 설립했고 2016년 12월부터 SRT가 운행하면서 철도 공기업 경쟁체제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후 철도운영사가 2개인 탓에 인력이나 물자 등에서 중복 비용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철도노조 파업

여기에 국내 철도는 고속철도에서 낸 이익으로 무궁화호나 새마을호 같은 공공적 성격의 일반 열차의 적자를 메우는 구조다. 즉, 흑자를 내는 고속철도 노선을 떼어내 SRT를 만든 것에 대해 철도노조는 코레일의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나아가선 민영화로 가기 위한 수순으로 보고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는 '철도 공공성 강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면서 코레일과 SR 재통합을 검토했고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2017년 6월 인사청문회에서 '공공성 강화' 입장을 표명했다.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2017년 6월, 인사청문회)
"철도 민영화 논란 이후에 SR을 만들면서 이원화 체계로 갔다. 근데 이게 진정한 경쟁 체계인지 아니면 민영화 논란을 피하기 위한 정책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이 있다. 그래서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이 마땅하지 않나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SR의 강한 반발과 KTX 강릉선 탈선사고 등의 여파로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다.
 

1년 9개월간의 논의…결론은 '유보'

국토부가 2021년 3월 '거버넌스 분과위원회'를 구성해 코레일과 SR의 경쟁 체제 관련 이슈를 논의했지만 1년 9개월 만에 낸 결론은 결국 '유보'였다. 2022년 12월 윤석열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경쟁-통합 사이의 입장 차이가 첨예하고, 경쟁체제가 정상 운영된 기간이 3년에 불과해 분석에 한계가 있으므로 경쟁 또는 통합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당시 거버넌스 분과위에서 경쟁체제를 찬성한 이유는 승객들에게 1년 평균 1,506억 원의 추가 할인 혜택이 주어졌고, SRT가 KTX보다 10% 낮은 요금을 책정했고, KTX도 마일리지를 도입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SRT가 KTX보다 더 많은 선로 사용료를 냈다는 부분도 언급됐는데, 이 같은 내용은 사실 국토부의 정책이지 경쟁의 결과라고 보긴 어렵다. 이번 노-정 교섭에서도 정부는 선로사용료와 운임체계의 차이로 KTX를 SRT 노선에 투입하긴 어렵다고 밝혔지만, 철도노조는 국토부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들이라며 노선 투입을 위해 선로사용료와 운임체계를 조정해야 한다면 수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거버넌스 분과위 안에서도 "코레일과 SR을 통합할 경우 경쟁체제로 발생하는 연간 406억원 상당의 중복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여기에 "이원화된 서비스 제공으로 인한 이용자 불편사례도 해결될 수 있다"며 통합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위원들이 있었다. 여기에 철도노조는 SRT와 KTX를 통합하면 현재 상황에서도 하루 52회를 추가 운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좌석만 3만 석을 추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정 갈등 불씨 여전…'시민' 중심으로 협의하길

철도노조는 '철도 경쟁체제' 유지를 위해 매년 수백억 원의 중복 비용이 발생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고 강조한다. 당장 2차 파업을 중단한다고 밝혔지만, 다음 달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다시 강등의 불씨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통합 유보' 결정이 난 만큼 2027년까지는 현 체제로 가겠다는 생각이다. 아직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 있지만, 고속철도 이원화로 인한 효과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다. 이견이 큰 만큼 타협점을 찾긴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이들 모두 시민들의 편익이 최우선이라고 밝히고 있는 만큼 이후에도 '시민'을 중심으로 협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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