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 그린 갓 쓰고 도포 휘날리는 예수…김기창 성화집 눈길

갓을 쓰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구름 위에 선 한 인물을 중심으로 찬란한 햇빛이 쏟아져 내립니다.

역시 갓을 쓴 남성들이 무릎을 꿇거나 앉아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그를 향해 손을 모으고, 근처에는 장옷을 입은 여성들이 이 광경을 지켜봅니다.

구름 위에 선 인물은 바로 운보 김기창(1914∼2001, 호적상 출생은 1913년) 화백의 1953년 작 '승천'에 등장하는 예수입니다.

김기창 화백이 예수의 일대기를 소재로 1952∼1953년 그린 작품 30점을 모은 성화집 '예수의 생애'(쿰란출판사)가 최근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예수의 탄생, 세례, 수난, 죽음, 부활 등 일련의 사건을 한국 풍속화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습니다.

미국에서 파견된 선교사 앤더스 젠슨의 제안이 이처럼 독특한 스타일의 성화를 그리는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 잉태를 예고한 '수태고지'에서 마리아는 녹색 치마와 노랑 저고리 차림으로 물레를 앞에 두고 앉아 있습니다.

마리아를 찾아가 예수를 낳을 것이라는 계시를 전하는 천사는 옛 동화 속 선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탄에게 시험을 받는 예수는 갓을 쓴 선비의 모습과 흡사하고 사탄은 민화 속에 등장할 법한 도깨비를 연상시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흰옷을 입고 상투를 틀고 있으며 예수가 어린이들을 축복하는 장면에서는 연중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가 한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작품은 당시 화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현대의 감각으로 살펴도 새롭습니다.

성화집은 독자의 이해를 돕도록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을 지낸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의 해설을 김기창 화백의 그림과 나란히 실었습니다.

소 목사는 "'갓을 쓰신 예수' 그림은 현대 한국 화단에 떨어진 원자폭탄이었다"며 김기창 화백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열었다"고 서문에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는 "운보 김기창 화백을 통하여 한국 기독교는 우리만의 문화와 사유의 방식으로 복음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기 시작했고 예술적 토착화를 이루어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진=쿰란출판사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