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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헛소리 전성 시대…도둑맞은 집중력

집중력이 갈수록 떨어져 ‘몰입의 즐거움’을 맛본 지 오래, “도둑맞은 집중력”이란 책을 펴 들었다. 지난 4월 말 출간된 이 책은 교보문고에서 6월부터 줄곧 종합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올라 있다. ‘집중 맞은 도둑력’이라는 재미있는 별칭도 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요한 하리가 쓴 이 책의 요지는 ‘도둑맞은(stolen)’이라는 수식어에 있다. 내가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집중력은 알고 보면 누군가가 훔쳐 간 것이다. 누가 도둑일까? 실리콘 밸리의 IT기업들이다, 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물론 당신은 알림 설정을 바꾸거나 아예 꺼버리고, 이메일은 하루에 두 번만 확인하며, 휴대폰을 되도록 멀리함으로써 도둑맞은 집중력을 되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면 반대쪽에는 우리의 자제력을 꺾으려고 노력하는 천여 명의 엔지니어들이 있습니다.” (트리스탄 해리스 · 前 구글 엔지니어, “도둑맞은 집중력” 240쪽)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 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나는, 
미국 케이프코드 프로빈스타운 해변가의 한 작은 방에서 저자가 석 달 동안 스마트폰과 컴퓨터 없이 지내면서 했던 대로, 멀티태스킹을 줄이고, 소설과 같은 긴 텍스트를 읽고, 이따금 ‘딴 생각’을 하며 지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또한 “거의 한 시간마다 뉴스를 확인하며 불안을 일으키는 불확실한 정보를 끊임없이 접하”는 대신 “아침마다 신문 세 종을 사서 일어난 일에 대해 심도 있는 엄선된 정보를 제공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나는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일어난 일에 대해 심도 있는 ‘엄선된 쓰레기’를 제공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처 생각하지 않은 것 같은데, ‘엄선된 쓰레기’ 역시 사회를 망가뜨린다.
 
* * *

“도둑맞은 집중력”은 우리의 집중력을 망가뜨리는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이 어떻게 우리의 공동체마저 시나브로 무너뜨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나는 알림 설정을 바꾸라는 얘기보다 이 지점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언론과 뉴스 업계에 대해 던지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인정하자. 알고리즘 자체는 죄가 없다.
 
“알고리즘이 신경 쓰는 것은 단 하나, 즉 우리가 계속 스크롤을 내릴 것인지다.”(203쪽)

그런데 불행히도 인간에게는 부정 편향이 있다. 긍정적인 뉴스보다는 부정적이고 충격적인 뉴스에 끌린다. 

기사 작위를 받은 프랑스의 재기 넘치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The News: A User's Manual)”라는 책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뉴스를 확인하는 이유는 공포와 관련이 있다고 썼다. 뉴스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재앙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우리의 염두에 자리 잡은 생각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안테나 철탑 쪽으로 휴대전화를 돌려놓고 기사 제목이 뜨기를 기다릴 때 희미하게 잡히는 두려움의 맥박을 해명해 준다. 그 맥박은 우리의 먼 조상이 동이 트기 직전의 싸늘한 순간, 태양이 변함없이 창공에 떠오를지 궁금해하면서 느꼈을 게 분명한 불안이 모습을 바꿔 나타난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 표지
소셜 미디어들은 인간의 취약한 고리를 공격한다.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뉴스를 추천한다. 그래야 계속 스크롤링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자주 분노 상태에 빠진다. 

‘격노’, ‘압수수색’, ‘고소’, ‘철거’, ‘1급 살인죄’, ‘사형’… 요즘 ‘심도 있는 엄선된 정보를 제공’한다는 기성 언론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보는 단어들이다. 이런 어휘는 다른 데서 나오는 게 아니다. 시민들의 이성적 사고를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 냉정해야 할 '국가 기관'들(개개인이 곧 국가 기관인 이들을 포함해서)이 분노 유발자가 되고 있다. 확산된 분노는 시민들의 집중력을 흩트려 놓는다.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분노하면 주변에서 벌어지는 논쟁에 평소만큼 집중하지 못하며 ‘정보 처리의 깊이가 얕아’짐을 발견했다.”(같은 책, 207쪽)

시민들은 겨우겨우 시간과 노력을 들여 중요해 보이는 뉴스를 쫓아가 보지만, 소셜 미디어를 통해 증폭되는 막말과 헛소리에 결국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정확한 사실 확인도 안 하고, 때로는 천연덕스럽게 사실과 반대되는 말을, 또는 말단지엽적인 부분적 사실을 마치 진실인 양, ‘지르고 보는’ 사실상 '헛소리'들이 좀비처럼 시민들에게 달려든다. 

심지어 자신이 과거에 했던 말을 염치도 체면도 없이 180도 뒤집으면서도 그럴듯한 해명도 없다. 물론 생각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근거나 배경 설명 없이 입장을 정반대로 바꾸는 것은 자신의 말이 과거나 지금이나 헛소리에 불과함을 증명할 뿐이다. 

게다가 이런 헛소리들을 중계하는 미디어의 ‘극중주의’는 위정자와 언론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 집중력과 아이디어는 내가 안전하다는 심리 상태에서 나오는데, 수시로 말을 바꾸고 극언을 서슴지 않는 위정자들이 불안과 공포를 조장한다. 
 
“웹사이트들은 우리가 분노와 적대감으로 가득한 환경에 있다고 느끼게 만들고, 이로써 우리는 더욱 각성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집중력은 위험을 찾는 상태로 바뀌고, 책을 읽거나 자녀와 함께 노는 활동처럼 더 느린 형태의 집중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요컨대,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은 분노를 일으키는 뉴스를 부각하고, 뉴스 제공자들은 그런 알고리즘에 부응하는 뉴스를 점점 더 많이 생산한다. 분노의 알고리즘에 길들여진 대중은 점점 더 자극적인 뉴스를 찾고, 진득하게 무언가를 들여다볼 기회를 빼앗긴다.

정치인들은 이에 편승해 점점 더 자극적인 언사를 날린다. 집중력뿐 아니라 분노조차 피상적이라, 앞의 분노를 뒤의 분노가 곧바로 덮는다. 이를 잘 아는 정치인들은 의혹을 의혹으로 물타기하고, 분노를 분노로 덮는다.

일러스트 곽내원
‘양평’, ‘오염수’, ‘해병대’, ‘홍범도’, ‘뉴스타파’... 불과 두 달여 동안 이슈가 이슈로 덮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생업에 바쁜 시민들이 집중력 있게 중요한 이슈를 검토하고 생각해 볼 수가 없다. 맥락을 상실한 ‘갑툭튀’ 뉴스 때문에 사안의 경중과 시급성, 시의적절성, 사회적 가치 따위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이슈를 취재하고 경중을 판단해 시민들에게 ‘엄선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언론도 집중력을 잃기는 마찬가지다. 알랭 드 보통이 오늘날의 정치 뉴스를 분석한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언론은 결코 민주주의의 부수적 존재가 아니다. 언론은 민주주의의 보증인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앞에 놓인 뉴스는 조율, 선별, 관리 작업에 있어 한심하리만치 서투르다. 우리는 뉴스 의제가 계속 바뀌는 바람에 정신이 너무 산만해져서 어떤 정치적 입장도 개진할 수 없게 될 위험에 처해 있다. 어쩌면 그 수많은 잔인무도한 사건 중에 나에게 정말 문제시되는 게 무엇인지 놓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정치적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진을 빼는데 검열보다 훨씬 더 교활하고 냉소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이 힘은 사람들 대다수를 혼란스럽고, 따분하고, 정신 사납게 만들어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일에 관여한다. 그리고 이는 가장 중요한 사항의 맥락을 대다수 대중이 단 한순간도 붙잡을 수 없도록 무질서하고, 복잡하고, 단속적인 방식으로 사건들을 보도하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 * *

이제 결론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필자의 마음에는 먹구름이 몰려왔다.

“도둑맞은 집중력”에는 유튜브의 영상 추천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엔지니어 이야기가 나온다. 그 대목에 따르면 우리가 홀로코스트 관련 영상을 보면, 유튜브는 이후로 여러 개의 홀로코스트 관련 영상을 더 추천하는데, 영상을 볼수록 영상은 점점 극단적으로 변해서 나중에는 홀로코스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영상이 자동 재생될 수도 있다. 

책에 따르면 前 구글 엔지니어 트리스탄 해리스의 결론은 이렇다.
 
“어디에서 시작하든 말도 안 되는 것에서 끝이 납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헛소리를 증폭하는 시스템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다. 정신줄을 놓으면 하루에 서너 시간씩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집중력이라 부르지 않는다. 차라리 “인생의 낭비(알렉스 퍼거슨)”라 부를지언정. 
 
“트리스탄은 현재 우리가 ‘인류의 집단적 퇴화와 기계의 진화’를 목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18쪽) 

너무 나간 것 같은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더 나아가 보고 싶다. 트리스탄은 미 상원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우리가 우리의 집중력을 퇴화시키고, 복잡성과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능력을 퇴화시키고, 공유된 진실을 퇴화시키고, 우리의 신념을 음모론적 사고로 퇴화시키면, 그래서 의제를 구축하고 공유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현재 전 세계의 가장 긴급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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