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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반도에 드리우는 러시아의 그림자…중국의 행보는?

- 히라이와 슌지 "거리두던 중국에 영향 줄 것"

[취재파일] 한반도에 드리우는 러시아의 그림자…중국의 행보는?
북한과 러시아가 손을 잡았습니다. 그냥 잡은 것도 아닙니다. 아주 꽉 잡았습니다. 양국은 무기 거래를 고리로 연결되는 모양새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창고에 쌓여 있는 재래식 포탄을 러시아에 제공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포탄은 우크라이나 전쟁터로 갈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북한 포탄이 사용되고 있다는 정황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방-122'라고 적힌 포탄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다연장로켓을 '방사포'로 부릅니다. 그리고 다연장로켓에서 사용하는 122mm 포탄은 북한 러시아 등에서만 사용합니다. '방-122'라고 한글이 적힌 포탄은 북한의 포탄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입니다. 러시아는 위성 기술, 핵 잠수함 기술을 북한에 전수하기로 했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러 정상회담 이후 "양국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위성 기술을 북한에 전수할 뜻이 있다는 취지로 읽히고 있습니다. 그럼 북한 대륙간 탄도 미사일, ICBM의 미국 본토 타격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실제로 정찰위성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의 앞마당이 북한에게 그대로 노출되는 상황이 됩니다. 한반도의 긴장감은 더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러시아'가 북한과 공동 주연을 맡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갑자기 한반도 정세의 '키플레이어'로 등장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를 북-러 정상회의가 열린 날 일본에서 만났습니다. 특히,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 권위 있는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히라이와 슌지 난진대 교수입니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주중 일본대사관에서 근무를 했다며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당시 공식적으로는 '탐문학자'였지만, 북한과 접촉을 하는 '전문 조사원'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국내 언론에도 북한 전문가가 주중 일본 대사관에 왔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일본 아베 정부 당시 대북 정책을 자문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대표적인 북한 전문가인 히라이와 슌지(오른쪽) 교수가 한국언론진흥재단, 세종 연구소 주최로 지난 13일 오후 도쿄 뉴오타니 호텔에서 한국기자들과 만나 동북아 안보지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은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히라이와 슌지 교수는 북-러 정상회의가 열리기 전부터 이미 러시아의 그림자가 한반도에 짙게 드리워졌다고 분석했습니다. 지난 7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북한 방문을 주목했습니다. 쇼이구 장관은 6.25 전쟁 정전협정 기념일 70주년을 맞아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쇼이구 장관은 열병식에도 참석했습니다. 이런 행보는 러시아와 북한의 무기 거래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더 있었습니다. 바로 쇼이구 장관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달한 푸틴의 친서에 답이 있었습니다. 친서에는 한반도에서 러시아 '역할'이 달라질 수 있다는 복선이 깔려 있었습니다. 친서에는 '한국전쟁 당시 소련군이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전우애'를 강조했습니다.
히라이와 슌지 / 일본 난진대학교 교수
"러시아가 한국 전쟁에 공식적으로 참전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이는 러시아가 한반도 프로세스에 이제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지가 있다는 선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의가 단순한 양국 간 무기 거래를 위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시작일 수 있다는 겁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종전 선언' 논의가 한창일 때 중국은 종전협정 서명의 당사자라며 종전선언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습니다. 심지어 당시 이승만 정권은 서명을 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중국이 종전협정 논의에서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쳤습니다. 히라이와 교수는 러시아도 한국전에 참전한 나라라는 것을 토대로 한반도 문제 논의에 이젠 본격적으로 개입을 하겠다는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 일본 등이 이 상황이 불편한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상황이 부담스러운 나라가 또 있습니다. 바로 중국입니다.

한반도에서 중국의 역할이 러시아로 대체될 수도 있는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한반도의 정세의 가장 기본적인 틀은 한국, 미국, 최근에 일본까지 형성된 연합과 북한 중국으로 형성된 연합과의 대치였습니다. 그런데, 러시아가 중국 자리를 위협하고 나섰습니다. 중국은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북-러 정상회담이 열린 다음 날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일이고, 북한과 러시아에 관계에만 영향을 준다"고만 밝혔습니다.

한미일 정상회의 이후 북·중·러 연대가 강해질 거란 관측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한미일 정상회의 이후 중국이 내놓은 대외 메시지는 북한과 러시아와는 달랐습니다. 히라이와 슌지 교수는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도출된 캠프데이비드 공약 관련해 러시아와 북한은 '아시아판 나토' '신냉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중국은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이 미국과 한국, 일본과의 관계에 더 많이 신경을 쓰고 있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중국이 달라지긴 했습니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사드를 배치했을 때를 돌이켜 보겠습니다. 사드 배치 이후 삼성 스마트폰을 들고, 현대자동차를 타고, 국내 유통업체를 찾는 중국인의 모습을 중국에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중국의 보복 조치로 국내 기업들은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고 중국에서 발을 빼야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과 미국, 더 나아가 한미일의 밀착 과정에서 중국의 보복은 없었습니다. 이런 변화의 이유를 히라이와 슌지 교수는 한미일 공조 강화에서 찾았습니다.
히라이와 슌지 / 일본 난진대학교 교수
"중국이 옛날과 같이 한국에 대해서 압력을 가한다 해도 효과가 크지 않다고 이제는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한미일 협력이 진전될수록 중국이 압력을 전면적으로 가하는 방법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북한 전문가인 히라이와 슌지(오른쪽) 교수가 한국언론진흥재단, 세종 연구소 주최로 지난 13일 오후 도쿄 뉴오타니 호텔에서 한국기자들과 만나 동북아 안보지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상황이 좀 달라질 수도 있어 보입니다. 북·중·러 연대에 다소 거리를 두던 중국도 이제는 느슨한 형태라도 북·중·러 연대에 발을 담글 가능성이 더 커졌습니다. 북한에게 러시아는 '배신자'였습니다. 한국과 국교를 정상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러시아가 핵우산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자체적으로 핵 개발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러시아도 냉전 때나 한반도가 관심 대상이었지, 냉전이 끝난 후에는 한반도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실상 꽤 오랫동안 북한과 러시아는 연결 고리가 없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북한과 러시아는 '미국'이라는 '공동의 적'이 당장 눈앞에 생겼고, 두 나라 모두 국제사회의 제재 아래에서 궁지에 몰리다 보니 손을 갑자기 너무 꽉 잡아 버렸습니다. 북·중·러 관계 강화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던 중국도 이제는 손을 꽉 잡을 순 없어도 손가락 하나 정도는 잡아야 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북한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순전히 중국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히라이와 교수는 중국의 대외정책의 1순위는 '미국'이고, 따라서 중국에게 북한은 미국과 협상을 위한 '카드'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 중국은 북한에 영향력이 있다는 걸 미국을 비롯해 한국과 서방에 지속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중국이 북한에 영향이 있다는 걸 미국이 믿어야 '협상 카드'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러시아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습니다. 앞으로는 단순한 카메오 출연, 조연이 아니라 주연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핵심으로 하는 평화프로세스 등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까지 내비치고 있습니다. 결국 중국은 북한 편에 서서 어느 정도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게 히라이와 교수의 설명이었습니다.
히라이와 슌지 / 일본 난진대학교 교수
"러시아가 하니까 중국도 어쩔 수없이 같이 가는 겁니다. 왜냐면 중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에 대해서는 영향력이 있다는 걸 미국에 보여야 하니까, 러시아만 북한과 관계를 강화하면, 북한이 중국의 영향력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줄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미국을 상대할 중요한 '카드'를 잃게 되는 것이죠"

북한도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이 북한과 관계를 더 강화하길 내심 바라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중국이 러시아처럼 급격한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보다는 훨씬 더 한국 일본,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면서도 북·중·러 연대도 신경 쓰는, 다소 어중간한 모양새를 당분간은 이어갈 거라는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국내 외교가의 분위기만 봐도 그렇습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해서 우호적인 분위기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다음 달 중순쯤 중-러 정상회담을 열 것으로 전망됩니다. 두 정상이 만나서 내놓는 메시지에서 북·중·러 연대의 속도나 수위의 윤곽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상대방이 있는 외교에서 예측은 참 어렵습니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러시아가 한반도 정세의 강력한 변수로 떠올랐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사진 제공 : 세종연구소, 한국언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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