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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논쟁에 뛰어든 군…정치에 빠져 신뢰 잃을라 [취재파일]

역사 논쟁에 뛰어든 군…정치에 빠져 신뢰 잃을라 [취재파일]
국방부와 육군, 육사가 홍범도 장군 역사 논쟁에 뛰어들었다가 출구를 못 찾고 있습니다. 육사 흉상 이전이 해군 홍범도함 함명 변경 논란으로 번졌고, 국방부 대 야당의 "육사의 뿌리가 신흥무관학교냐, 경비대사관학교냐" 신경전이 새로 연기를 피우고 있습니다. 오늘 당장 신흥무관학교 역사 논쟁이 불붙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군이 무력의 운용이라는 전공과 동떨어진 역사 논쟁에 투신한 꼴이 됐습니다. 논쟁의 기준이 정치 이념이라 군은 자진해서 정치에 휩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군의 정치화는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좀먹는 악(惡)인데, 군은 요즘 정치에 빠져 신뢰를 잃는 형국에 처한 것입니다.

군인의 헌신을 추동하는 국민의 신뢰는 최첨단 무기에 버금가는 안보 자산입니다. 애석하게도 우리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높지 않은 편입니다. 국방부와 육군이 역사 논쟁으로 정치와 섞이면 섞일수록 그나마 약소한 국민의 신뢰는 더 축소될 것입니다. 이렇듯 현재의 역사 논쟁은 안보적 실익도 없습니다.

우리 군 신뢰도 수준은…

세계 가치관 조사(WVS)의 2010-2014년 국가별 군 신뢰도 조사(출처 KIDA 국방논단)

글로벌 파이어 파워(Global Fire Power) 조사 기준으로 세계 15위 군사력의 우크라이나(작년 22위에서 서방 지원으로 7계단 상승)가 2위의 군사대국 러시아의 침공에 버티는 힘은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서 기인한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국민들이 전폭적으로 믿어주니 군인들은 맨주먹으로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 판입니다. 서방 국가들의 무기 지원은 그저 옆에서 도울 뿐입니다. 반대로,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고 기강이 무너진 군은 막대한 외부 지원에도 오합지졸입니다. 베트남, 이라크가 그랬습니다.

미군은 국민의 지지를 든든히 받는 군으로 정평이 났습니다. 2018년 미국 공영방송 PBS와 NPR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이 가장 신뢰하는 기관 1위는 87% 지지율의 미군이었습니다. 대법원, 연방수사국, 각급 법원이 미군의 뒤를 이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철수한 70년대만 해도 60% 미만의 낮은 지지율에 빠졌던 미군입니다. 군 수뇌부가 강군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걸프전, 9·11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며 신뢰를 회복한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노력 참 많이 했습니다.

여러 국가의 군 신뢰도를 비교한 연구가 많지 않은 가운데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 Survey)라는 기구가 2010년~2014년 5년간 분석한 국가별 군의 신뢰도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우리 군의 신뢰도는 22개 국가 중 14위였습니다. 뒤에서 9번째입니다. 평균 신뢰도인 68.7%에도 못 미쳐 중·하위권에 랭크됐습니다. 러시아, 이라크보다 높았지만 필리핀, 태국, 일본, 독일보다 낮았습니다. 우리 군의 신뢰도는 70년대 미군의 바닥 지지율과 비슷합니다. 미군처럼 신뢰도 높이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국민 신뢰 해치는 역사 논쟁

육사 충무관 앞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이 결정됐다.

학술적으로 또 경험적으로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군의 도덕성, 일관성 등 일반적 요소, 군의 전투력과 전문성 등 기본적 능력, 그리고 사회적 기여와 유용성 등 사회적 요소입니다. 우리 군이 기본적 능력과 사회적 요소에 부합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평가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신뢰의 일반적 요소인 도덕성과 일관성입니다.

여전히 기억에 생생한 장성들의 정치 개입과 비리, 그리고 군부의 군홧발, 병영의 부조리한 사건·사고 등이 우리 군 도덕성에 드리워진 그늘입니다. 홍범도 장군 논쟁은 정치 이념적 이슈여서 정치 중립의 기본 규범에 반하는 군의 비도덕적 이미지를 강화합니다. 더욱이 군이 정부의 이념에 맞춰 역사를 달리 바라보는 행태는 군의 일관성에 치명적입니다.

즉, 군의 역사 논쟁은 부득불 국민의 신뢰를 해칩니다. 높지 않은 신뢰도가 또 떨어지면 안보적 해악이 작지 않습니다. 국민이 군을 믿지 못하고, 지지를 못 받는 지휘부는 장병들로부터 고립되고, 이는 또 국민의 신뢰를 저하시키는 악순환이 우려됩니다. 군은 속히 역사 논쟁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국방부 고위직 A 씨는 "역사 논쟁으로 군은 신뢰를 잃고, 여당은 지지율을 잃고, 야당만 이득을 보고 있다", "당장 정리하지 않으면 다음 달 국정감사도 역사 논쟁으로 시끄러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B 예비역 육군 준장은 "해병대 사태와 홍범도 논쟁은 초미의 관심인데 반해, 같은 기간 한미 연합훈련은 무관심 속에 끝났다", "지금 급한 것은 정치 논쟁의 마무리와 군 본연의 훈련 강화"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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