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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잠', 불안이 영혼을 잠식할 때…공포와 가족극의 혼합

영화 '잠' 포스터

심리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일찍이 '꿈의 해석'을 통해 무의식적인 욕구와 충동이 꿈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탐구한 바 있다. 꿈으로 향하는 통로는 잠이다. 눈이 감기고 대부분의 의식 활동이 정지되는 상태를 뜻한다. 영화 '잠'은 잠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가장 현실적인 공포를 조장한다.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 분)와 수진(정유미 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에 대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봉준호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유재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는 '내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방비 상태에서 예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행동을 한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렘수면 행동 장애 혹은 몽유병은 현대인에게 낯설지 않다. 몽유병까지는 아니더라도 수면 장애로 인한 고충은 누구나 겪어본 바 있을 것이다. 수면장애와 몽유병 여기에 층간소음까지 모두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무관하지 않기에 이 영화가 제시하는 미스터리는 극 초반부터 몰입도가 상당히 높다.

잠

'잠'은 '가족'이라는 가장 포근한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심리적 불안과 감정의 균열로까지 확장하며 미스터리 공포물이자 가족극의 앙상블을 이뤄냈다.

살아있는 인간이 유일하게 자발적 무의식 상태에 돌입하는 행위인 '잠'은 수면 상태 중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수의 변화는 개인에게도 아내인 수진에게도 당황스럽기만 하다.

여기에 영화는 또 하나의 강력한 허들을 깔았다. 바로 임신한 아내라는 설정이다. 현수의 변화는 어느 순간부터 수진에게 당혹을 넘어선 공포가 된다. 현수 역시 무의식 상태에서 자신이 가족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상상에 잠들기가 두렵다. 이 불안과 공포는 부부 사이의 균열을 조장하며 미스터리의 끈을 팽팽하게 조이는 역할을 한다.

무의식과 모성의 충돌이 최고조에 이를 때쯤,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제시한다. 이 부분에서 아쉬움을 노출한다. 갈등과 위기가 해소되는 방식이 편의적이다. 한국적 문화와 정서에 기인한 설계로 볼 수 있지만, 방법 측면에서의 고민이 아쉽다.

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의 끈을 당겼다가 푸는 유재선 감독의 서스펜스 조련술이 돋보인다. 또한 캐릭터 설정에 복선을 깔아 두고 회수하는 방식도 군더더기가 없다. 특히 극단적 심리 변화를 보여주는 이선균과 정유미의 연기는 이야기의 아쉬움을 어느 정도 보완한다.

영화는 현상의 원인을 정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엔딩 역시 열린 결말이다. 그러나 영화 내내 부각하는 '둘이 함께라면 극복하지 못한 문제는 없다'는 이 가족의 가훈과 부부의 직업 등을 통해 어렵지 않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또 다른 노선의 결론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는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전자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봉준호는 제자라 할 수 있는 유재선 감독의 데뷔작에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 영화이자 스마트한 데뷔 영화"라고 호평했다. 이 영화는 개봉일인 지난 6일 전국 7만 9천여 명의 관객을 동원해 '오펜하이머'를 꺾고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했다. 봉준호의 후광효과도 상당하다.

순제작비 30억 원이 투입된 영화다.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가 50억 원을 훌쩍 넘긴 것을 생각하면 저예산에 속하는 영화다. 손익분기점은 약 80만 명이다. 비수기 시장에서 작은 영화의 저력을 발휘할지 기대가 모아진다. 출발이 좋다.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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