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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괴물도 영웅도 될 수 있는 한국형 히어로…'무빙' 신드롬엔 다 이유가 있다

(SBS 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주즐레
역대 최고의 히어로 무비로 꼽히는 '스파이더맨'을 관통하는 하나의 대사가 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삼촌 벤이 해준 이 조언은 훗날 스파이더맨으로 살아가는 피터 파커에게 좌우명과 같은 말이 된다. 이 말은 '특별한 힘을 가졌다면 그 힘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힘을 쓸 책임을 외면하면 더 큰 재앙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특이하다' 혹은 '특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와 드라마 등 미디어에서 그린 히어로들의 삶은 대체로 화려했다. 출발-입문-시련-귀환-각성-성장으로 이어지는 영웅 서사의 공식을 따르지만 그 끝은 창대하게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들이 현실 사회에서 평범한 우리들과 섞여있다면?'이라는 가정을 해본다면, 히어로의 그 특별함이 축복만은 아닐 것이다.

'무빙'은 이 점에 주목한다. 히어로라고 해서 모두 멋진 것만은 아니고, 히어로라고 해서 삶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여러 캐릭터와 풍성한 서사를 통해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이 작품 속 인물들에게도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통용될 수 있다. 원하지 않았으나, 그렇게 태어나버린 신체 능력자들에게 현실은 자꾸 태클을 걸고 숙제를 부여한다. 심지어 재능인지 재앙인지도 모를 능력이 자식에게도 유전된다.

그래서 이들에게 '책임'은 조금은 다른 의미다. 남편이자 아내로서의 책임, 아버지이자 어머니로서의 책임이 사회 정의보다 더 우선되게 작용하기도 한다. '내 여자', '내 새끼' 앞에서 거창한 대의는 힘이 없다. 이성애와 가족애는 지구 수호나 우주 평화와 같은 거창하지만 와닿지 않는 명분보다 더 절실하다. 

'무빙'은, 아니 강풀 작가는 오늘도 내 사람, 내 가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응원할게 너."

 

재능은 때로 재앙이 된다... 히어로물 클리셰 깬 역발상

'무빙'은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과거의 아픈 비밀을 숨긴 채 살아온 부모들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 닥치는 거대한 위험에 함께 맞서는 초능력 액션 히어로물이다. 웹툰 작가 강풀이 2015년 발표한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초능력 세계관을 공유하는 '강풀 유니버스' 6개 작품 중 하나다.

치킨집을 운영하는 장주원(류승룡)은 재생능력, 돈가스 장사를 하는 이미현(한효주)은 반사신경과 오감, 사라진 국정원 요원 김두식(조인성)은 비행능력,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재만(김성균)은 괴력을 가진 초인이다. 남다른 능력은 자식 세대에까지 대물림되고 이들의 2세인 봉석(이정하)과 희수(고윤정), 강훈(김도훈)은 정원고등학교에서 만난다.

서구에서 흥한 장르물을 국내에서 시도할 때 '한국형 ○○○'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 수식어는 '하위 호환' 버전으로 통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무빙'에는 한국화됐으니 감안하고 봐야 하는 아쉬움이 거의 없다. 오히려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정서로 여겨졌던 감정들이 탄탄한 서사를 통해 보편성의 날개를 달았고 국적, 인종에 관계없이 열광하게 만들었다.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서비스되고 있는 이 작품을 향한 인기와 호평 세례는 플릭스 패트롤과 IMDB 등의 해외 사이트 등에서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포브스지는 “호소력 짙은 감정적 서사를 지닌 이야기. 탄탄한 스토리가 계속해서 흥미를 자극한다”라고 평했고, IGN은 “모든 것이 놀랍고 강력하다. K-시리즈가 슈퍼 히어로 장르 역시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답을 제시한다”고 호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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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물의 클리셰를 깬 역발상이 이야기의 흥미를 배가한다. '무빙'에서 초능력은 축복보다는 재앙에 가깝게 묘사된다. 초능력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신분도 처지도 평범 혹은 그 이하다. 보통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에 특출난 능력은 위험요소다. 때문에 몇몇 인물들은 스스로를 사회에서 배제하거나 소외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주원의 전사를 다룬 10화의 제목은 '괴물'이었다. 놀라운 재생 능력을 가진 주원은 어둠의 조직에서 빠져나와 자해 교통사고로 생계를 꾸려간다. 모텔에서 달방 살이를 하며 월세 걱정을 하는 히어로라니, 짠내도 이런 짠내가 없다.

무엇보다 초능력이 유전된다는 설정은 '무빙'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든다. 서로의 특별함뿐만 아니라 상처까지 공감한 미현과 두식은 사랑에 빠진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봉석 역시 몸이 떠오르는 부양 능력을 가졌다. 두식 없이 홀로 남겨진 미현은 아들의 재능을 숨기고 억누른다. 고등학생이 된 봉석(이정하)은 자신의 남다름을 숨기기 위해 아령이 든 가방을 메고, 모래주머니를 찬 채 등교한다. 행여 자신의 비밀이 밝혀질까 자발적 왕따가 된다. 

당연하게도 세상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들은 가만두지 않는다. 후반부 여러 인물들의 비밀이 한 꺼풀씩 벗겨지며 한국형 히어로물은 재미와 감동의 퍼즐을 맞춰가고 있다. 

 

청춘 드라마X멜로X액션 다 있는 초인물... 650억 제작비, 안 아깝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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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은 한국 드라마 역사상 최고 제작비인 650억 원이 투입된 작품이다. OTT 제작 시스템에서는 이례적으로 긴 분량(20부작)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회차별 공정에 상당한 시간과 돈, 노력이 투입됐다.

이 드라마의 성공비결로는 원작의 힘과 연출력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이 꼽힌다. 그중 원작자인 강풀은 전체 대본을 직접 집필하며 작품을 성공으로 이끈 일등공신이다. '순정만화', '바보', '아파트', '26년' 등 강풀의 인기 웹툰은 여러 차례 영화화됐지만 박한 평가를 받았다. 원작의 정수를 살리지 못했던 각본의 실패였다. 강풀은 이번에 처음으로 직접 펜을 들었다.

이야기를 만들고, 캐릭터와 세계관을 창조한 인물이 각본에 참여한 덕분에 방대한 이야기는 여러 줄기로 뻗어 나갔고, 그 줄기들은 각기 다른 색깔과 모양으로 '재미'라는 열매를 맺고 있다. 

사실상 주인공이 9명인 '무빙'은 어떤 작품보다 '캐릭터 빌드업'이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각 회차마다 주인공이 다른 에피소드 구성을 띠지만 종국에는 한데 어우러질 수밖에 없는 구조의 이야기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을 띠고, 부모세대의 일이 자식세대에도 영향을 끼치는 이야기기에 캐릭터의 개별 서사를 깊이 있게 다루는 게 중요한 작업이었다. 이는 강풀 작가와 제작진이 20부작이라는 '마라톤 회차'를 고집한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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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회차마다 주인공이 다른 에피소드 구성을 띠기에 어느 인물 하나 건너뛸 틈이 없다. 게다가 이들이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건 시청자들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남북 북단이라는 민족의 아픔과 서슬 퍼런 시대의 안기부라는 조직을 서사에 결합했다.

이 역시 한국적인 설정으로 시대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한 '폭력의 기록'과 어우러지며 강력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남북 초능력자들의 대결에 미국이 관여했다는 설정까지 새롭게 추가하며 이야기의 범위도 확장했다. 그러면서 원작에는 없던 프랭크(류승범)와 전계도(차태현)를 만들어내는 운영의 묘도 발휘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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