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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성별 갈등은 격화하고 차이는 여전하고…지속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더 스피커] 여성단체들이 정치권에 바라는 내년 총선 정책

매년 9월 첫째 주는 '양성평등주간'입니다. 양성평등은 우리 헌법에 명시된 이념이자, 법(양성평등기본법)으로 국가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양성평등 실태를 파악하는 각종 지표가 발표됐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성별 격차는 줄고 있지만 차이는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지난해 여성은 남성에 비해 고용률이 낮고, 비정규직이 많고, 임금이 적고, 집안일을 더 많이 했습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각종 성범죄와 가정폭력도 여전히 많았습니다.

통계는 숫자 뒤에 가려진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꾸준히 양성평등을 위한 제도를 도입해 왔고, 관련 지표에 영향을 미쳤단 점에서 분명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별이 삶의 조건을 결정짓는 불리한 요소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더 달라져야 할까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을 향한 여성단체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모두에게 '돌봄'을 허하라

2023년 9월 7일 한국여성단체연합 '지속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위한 총선 젠더정책' 발표 토론회
여성단체들은 "모든 출산 여성에게 출산전후휴가 급여를, 일하는 모든 부모와 양육자에게 육아휴직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극초저출산' 사회입니다. 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0.7명대에 불과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가 존립이 어려울 정도라지만, 처우는 어떨까요. 지난 2021년 26만여 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출산전후휴가를 사용한 여성은 7만여 명에 불과합니다. 여성 고용률이 51.2%인걸 감안해도, 휴가를 못 쓴 여성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출산전후휴가 90일은 근로기준법에 정한 권리입니다. 출산전후휴가 급여를 받으려면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하고, 사업주가 출산 후에도 고용을 지속해줘야 합니다. 이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건, 많은 여성들이 일을 하지만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거나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임신과 출산 때문에 퇴사를 강요받거나 계약 해지를 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여성들에겐 임신과 출산이 생존을 위협하는 일인 겁니다. 육아휴직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들에겐 원천적으로 배제된 권리입니다.

(고용보험이 없어도 지원대상 자격이 되면 출산휴가 급여를 주는 정부 제도가 있지만 금액에 제한이 있습니다. 참고로 국제노동기구(ILO)는 '모성보호협약'에서 최소 14주, 회원국은 최소 18주 이상의 출산휴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중 산후 6주의 휴가기간은 반드시 보장하도록 했습니다. 출산휴가와 관련된 수당은 산모와 자녀의 건강과 기초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의 현금수당을 지급해야 하고, 이전 소득의 3분의 2 이상이 돼야 한다고 정했습니다. 또 임신 중이거나 휴가 중, 휴가 후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성을 다른 중대한 사유가 없는 한 해고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여성단체들은 이밖에도 '돌봄기본법' 제정, 법정 노동시간 '주 35시간제' 도입 등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코로나19를 통해 돌봄은 어떤 상황에서도 멈출 수 없는 사회적 필수노동임이 드러났지만 여전히 재평가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좋은 돌봄을 받을 권리와 돌봄을 할 권리를 시민의 기본권으로 안착시켜야 합니다.

노동시간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의 휴식권' 관점에서만 논의돼 왔는데, 이제 '돌봄권'의 문제로 접근하는 게 필요합니다. 노동시간은 돌봄시간과 정확한 상관관계를 가집니다.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개인의 돌봄 노동할 시간은 줄어듭니다. 이는 여성에게 부담으로 떠넘겨지는 구조입니다.

-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보편적 양육비 대지급제 도입'도 여성단체가 요구하는 과제입니다. 지난해 한부모 가구 중 '여성' 한부모 가구는 75.6%에 달합니다. 18세 이하 자녀를 키우는 미혼모는 미혼부의 3배가 넘습니다. 2021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부모 가구의 72.1%가 '양육비를 한 번도 받은 적 없다'고 답했습니다. 홀로 자녀를 양육하며 동시에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국내 한부모 가구 아동의 빈곤율은 47.7%로 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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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를 받을 방법은 소송뿐이지만 절차가 오래 걸리고 승소하더라도 돈을 받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돈을 안 주고 버티는 비양육자를 상대로 다시 감치(유치장 등에 가둠) 소송을 해야 하는데, 위장전입이나 잠적으로 우편송달을 거부하면 재판을 열기도 어렵습니다.

운전면허 정지나 출국금지, 신상 공개, 형사처벌 같은 조치는 '감치명령을 받고 1년 이내에 양육비를 집행하지 않았을 때'에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국가가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를 대신해 양육자에게 지급해 아동의 빈곤을 막고, 이후 비양육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강제 회수해야 한단 주장입니다.

일터에서 불리하지 않게


앞서 언급했듯 노동시장의 성별 통계는 그 자체로 양성불평등의 근거가 되지만, 여성이 돌봄의 부담을 더 많이 지는 사회구조에서 당연시된 측면이 있습니다. 여성이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에서 생계유지를 위한 일자리는 남성에게 주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겁니다. 하지만 1인 가구의 비중이 늘고 있는 만큼 노동시장의 성별 격차는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당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는 여성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2000~2021년 초단시간 노동자는 남성이 38만 6천 명, 여성이 71만 9천 명 늘었습니다. 이들은 주휴수당, 4대 보험, 무기계약 전환 간주, 퇴직금 등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합니다. 여성단체들은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에서 초단시간 노동자를 제외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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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를 인정받는 데 있어서 여성노동자가 더 불리하단 지적도 있습니다. 정지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최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021년 산재신청자는 남성(10만 6천 명)이 여성(3만 5천 명)의 3배가 넘습니다. 고용보험 가입자의 남녀 비율이 각각 56%, 44%인 걸 감안하면 성별 차이가 뚜렷하단 겁니다.

산재 관련 성별 통계가 없어 추정컨대 애초 산재보험에 가입된 여성노동자 자체가 적거나, 여성노동자의 산재신청 자체가 적거나, 여성노동자의 산재 인정률이 낮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성단체들은 "여성노동자는 남성노동자에 비해 불안정한 일자리에 놓일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산재보험을 받는 데 성별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며 "산재 적용 대상을 더 확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여성이 많은 일터의 산업안전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미용업은 유해화학물질 사용이 많고, 생활폐기물처리 시설에선 노동자들이 유해가스와 분진에 대한 위협을 느낍니다. 학교급식노동자들은 폐암에 노출돼 있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여성들이 집중적으로 일하는 곳은 위험하다고 판단하지 않아 위험성 기준 자체가 없습니다.

여성의 신체를 기준으로 산업안전기준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산업재해법 자체도 남성이 중심적으로 일하는 제조업·건설업 등의 현장 위주로 만들어져 있어, 여성들이 다쳤을 때 산재를 신청하고 인정받을 확률이 굉장히 낮습니다.

-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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