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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주꾸미철, 예약금 들고 사라진 중개업체…엎어진 낚시꾼의 가을

[취재파일] 주꾸미철, 예약금 들고 사라진 중개업체…엎어진 낚시꾼의 가을
"내일 주꾸미 낚시를 가기로 했는데 배를 타지 못할 상황이다."
"낚싯배 예약금만 100만 원을 넘게 냈다. 대표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
"1년 전에 미리 휴가를 냈는데, 휴가 날리게 생겼다"

지인들과 낚시를 가려고 낚싯배를 예약했다가 예약을 대행하는 A 업체 대표 김 모 씨가 잠적하면서 피해를 봤다는 제보가 지난 4일 저녁부터 쇄도했습니다. 그것도 금어기가 끝나 본격적인 '가을 주꾸미철(9월 1일~)'이 시작된 지 불과 사흘 만에 발생한 일입니다. 대표 김 씨는 이미 SNS를 통해 "참담한 소식을 전하게 됐다. 지난 3년 간 코로나로 소득이 거의 없었고, 매출이 급속도로 무너져 많은 개인 채무가 생겼다"는 장문의 글을 피해자들에게 전하고는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피해자들은 전체 피해액이 최소 15억 원에 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업체가 어떤 사업 구조 속에서, 왜 잠적한 것인지 취재 파일을 통해 정리해 봤습니다.

선상 낚시 중개업체는 무엇인가?

주꾸미철, 예약금 들고 사라진 중개업체

쉽게 생각하면 모텔, 호텔 등 숙박 시설을 예약하는 플랫폼과 유사한 중개업체인데, 숙소 대신 낚싯배를 잡아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A 업체는 선주, 선장 혹은 수십 척 규모의 선단과 계약을 하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전국의 낚시꾼들과 낚싯배를 연결하고 중간에서 수수료를 받았습니다. 현장에서도 결제 및 예약이 가능한 숙박 시설과 달리 대부분의 낚싯배들은 직접 예약 대신 중개업체를 통해서 예약을 받아 업체 의존도는 더 높았습니다.

이 업체는 8~10% 정도 중개 수수료를 받아왔습니다. 예를 들어 예약자 1인당 9만 원, 총 15명이 탑승할 수 있는 배를 예약하면 예약금 총액은 135만 원입니다. 업체는 1인 당 중개수수료 1만 원씩, 수수료 총 15만 원을 뺀 120만 원을 선주에게 전달했습니다. 업체는 대천, 안면, 고성, 고흥, 여수, 동해, 완도, 속초 등 전국의 낚시 명소에 100여 척의 낚싯배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낚싯배 중개로만 하루에 수천 만원을 벌 수 있는 사업 구조를 형성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 펜션 예약과 낚시 강좌, 낚시 용품 생산 및 판매 등도 하는 '낚시 전문 플랫폼'으로 성장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의 선상 낚시 중개업체"라고 증언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왜 이 업체를 이용했는가?

주꾸미철, 예약금 들고 사라진 중개업체

피해자들은 금어기가 끝나고 본격적인 낚시철이 시작되면 배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성수기에는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웃돈을 내더라도 배를 구할 수 없을 정도 낚시꾼들이 몰립니다. 특히 가장 인기 있는 9월 주꾸미 낚시를 위해서 1년 전부터 예약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입니다. 수요는 많고 공급은 한정된 상황에서 100여 척에 달하는 낚싯배와 계약된 A 업체를 활용하면 보다 쉽게 예약이 가능했습니다.

해당 업체가 국내 유일한 낚시 예약 플랫폼은 아닙니다. 다만 평소 SNS를 통한 적극적인 홍보, 포털 사이트 제휴와 광고 등으로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게다가 펜션 예약을 병행하고 수도권에서 항구로 버스까지 운행할 정도로 사업 규모가 컸기 때문에 대표가 돌연 잠적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피해 낚시꾼은 물론 선주들까지도 대표 김 씨와 연락이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피해 낚시꾼 "돈이랑 휴가 다 날렸다"

피해자 네이버 카페 모자이크

낚시꾼들은 항구로 가더라도 배를 탈 수 없어 돈과 휴가를 모두 날렸다고 호소했습니다. 한 피해자는 SBS에 "예약된 날짜에 나가도 선주들이 배를 안 태워주는 상황이다. A 업체에 돈을 못 받았기 때문에 예약금을 고객에게 다시 내라는 상황이다. 휴가를 날리기 싫어 '울며 겨자 먹기'로 이중결제를 하고 낚시를 다녀왔다"고 말했습니다.

사건이 알려진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포털사이트 피해자 카페에는 무려 2,300여 명이 몰렸습니다. 단체 대화방에도 700명 넘게 모였습니다. 올해 '맘카페 상품권 사기', '웨딩 업체 먹튀 사건' 등 갖은 사건을 접하고 기사를 써봤지만, 피해자 수가 이렇게 많았던 사건은 처음입니다. 앞으로 경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1인 당 최소 9~10만 원, 여러 날짜를 동시에 예약한 경우는 최대 수백만 원까지 피해를 당했습니다. 아직은 정확한 피해 규모를 예측하지 다수의 피해자들은 "피해액은 15~17억 규모"라고 주장했습니다.

피해자들은 김 씨가 중간에서 돈을 편취한 '사기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김 씨는 코로나로 인한 경영 악화, '채무불이행'을 주장합니다. 아직 돈이 어디로 갔는지 드러나지 않았지만, 수억 원이 중간에서 사라질 수 있었던 원인은 예약 구조에 있습니다. 선상낚시 예약금은 '낚시꾼 → 중개업체(김 씨) → 선장·선주'로 향하는데 여기서 맹점이 있습니다. 낚시꾼들은 예약금을 넣어야 예약이 확정됐지만, 그 돈은 바로 선장과 선주에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배가 예약 당일에 출항을 해서 낚시를 끝내고 돌아온 뒤에야 대금이 지급됐습니다. 길게는 1년 가까이 업체에 돈이 머무르는 구조였습니다. 구조적으로 당장에 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니까, 중간에서 얼마든지 활용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선장과 선주 "우리도 피해자…하루에 100만 원 손해"


배를 타지 못하거나 이중결제를 해야 했던 피해 낚시꾼들은 "선주들도 한통속"이라고 주장합니다. 선주들이 김 씨의 잠적 소식을 듣고 운항을 멈췄다는 겁니다. 한 피해자는 "중개는 A 업체가 했지만, 우리는 그 배를 보고 예약을 했다. 선주가 책임감을 지고 운항을 한 다음에 A 업체에 돈을 받아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이제 다시는 선상 낚시를 가지 않으려고 한다. 업체뿐 아니라 선장들에게 받은 배심감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반대로 취재진이 안면도와 대천항에 있는 여러 선장과 선주들에게 물어봤더니 하나같이 "우리가 더 큰 피해를 봤다"고 말했습니다. 대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손님을 태웠다가는 본전도 못 뽑는다는 주장도 잇따랐습니다. 대천항에서 운항 중인 한 선장은 "낚시꾼들은 하루에 9만 원을 잃지만, 우리는 하루 영업을 못하면 150만 원을 잃는 셈"이라며 "그대로 운항할 수도, 다른 손님들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성수기에 영업이 완전히 멈췄다"고 호소했습니다.

대표 김 씨 "단 1원도 건드리지 않았다"

주꾸미철, 예약금 들고 사라진 중개업체

사건이 언론을 통해서 보도되자 대표 김 씨는 지난 6일 새벽 SNS를 통해 피해자들에게 입장을 전했습니다. 김 씨는 "선비(예약금)를 환불하지 못하고 연중 가장 소중한 일정을 망친 점 정말 죄송하다"라며 "모든 것을 걸고 만들어온 업체가 사라진 만큼 지불 능력이 없지만 보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각종 의혹에 대해서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우선 도주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김 씨는 "저는 단 1원도 예약금을 가져가지 않았다. 자리를 지키지 못해 생긴 오해라고 생각한다"라며 "직원들에게도 단 1원도 급여를 밀린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업체의 계좌 내역 등에 대해서는 "향후 경찰 조사에서 밝히겠다"고 전했습니다. 또 본인과 관련한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법적인 대응을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중개 업체 대표 피의자 입건·출국금지…집단 소송 움직임도


피해자들이 모인 카페에는 "경찰에 신고하고 왔습니다"는 '고소 인증샷'이 이어졌습니다. 수도권 등 전국에 있는 피해자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경찰에 김 씨를 고소했습니다. A 업체 사무실이 있는 충남 보령경찰서는 이미 김 씨를 피의자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하는 등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보령경찰서 관계자는 "고소장을 접수받아 사건을 검토하고 있다. 정확한 피해 규모가 확인되는 대로 A 업체와 김 씨 등을 상대로 강제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 중간에서 사라진 예약금의 행방을 밝힐 수 있을 전망입니다. 또 일부 피해자들은 대규모 집단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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