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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자유주의는 부활할 수 있을까?

[뉴욕타임스 칼럼] Can Liberalism Save Itself?, By Samuel Moyn

스프 NYT 뉴욕타임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뮤얼 모인은 박사는 예일대학교 교수다. 곧 출간을 앞둔 책 “모순의 자유주의: 냉전 시대 지식인이 우리 시대에 미친 영향”을 썼다.
 

 
자유주의가 공격받고 있다. 다시 한번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에게 패하거나, 잘해봐야 가까스로 승리를 따낼 운명에 처한 미국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작은 정부와 개인의 자유, 법치를 강조하는 정치적 자유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듯하다.

냉전 승리 이후 자유주의자들이 ‘역사의 종말’을 노래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자유주의는 오히려 빠져나올 수 없는 위기에 처해있는 것 같다. 권위주의 중국의 부상과 극우 포퓰리스트의 도전 앞에 정체된 지 오래다.

자유주의자들은 어쩌다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냉전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냉전 당시 자유주의자들은 계몽주의 시대와 프랑스 대혁명에 뿌리를 둔 자신들의 이념을 다듬어 재탄생시켰는데, 그 방향이 좋지 못했다. 냉전 시대의 자유주의는 자유주의 정부의 연속성과 이를 방해할 위협에 대한 관리에 집착했고, 이 집착은 오늘날로 이어지고 있다. 자유주의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교착 상태를 낳은 냉전 시대의 실수를 바로잡고, 자유주의 교리의 해방적인 잠재력을 재발견해야만 한다.

냉전 이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에 대응하고자 자유주의의 혁신을 요구한 바 있다. 당시 루스벨트는 독재가 어필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경제 혼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인류를 수천 년 역사의 계급 제도에서 해방(봉건제를 폐지하고, 적어도 남성에게는 사회경제적 이동성을 확대하고, 종교와 전통에 따른 장벽을 낮추는 등)해 주겠다던 자유주의의 백 년 된 약속을 크게 진척시켰다. 물론 그 모든 성과가 인종차별로 얼룩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가장 비전 있는 버전의 자유주의는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억압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정부의 의무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후 냉전 시대의 자유주의는 20세기 중반의 위기 이전에 넘실대던 낙관주의를 거부하는 형태로 부상했다. 1차, 2차 세계대전 사이 독일의 짧은 민주주의 실험이 처참한 실패로 돌아간 후, 자유주의자들은 파시즘에 맞서 함께 싸운 동지 공산주의자들이 무서운 적으로 변하는 시대를 목도하게 됐다. 이들은 자유주의의 재개념화로 맞섰다. 옥스퍼드의 이사야 벌린 같은 철학자는 방해 없는 상태로서 정의되는 개인의 자유, 특히 국가로부터의 자유 개념을 크게 강조했다. 자유는 인간에게 힘을 실어주는 제도에 의해 보장된다는 믿음은 사라져 버렸다. 이런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를 더 많은 사람에게 믿을 수 있는 것,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데 전념하는 대신, 시스템을 망가뜨릴지 모르는 거대한 적과의 싸움에 몰두했다.

냉전 시대의 또 다른 자유주의 지식인인 하버드대 주디스 슈클러 교수가 말했듯, 이는 공포의 자유주의였다. 어떤 면에서 그 공포란 이해할 수 있기도 했다. 자유주의에는 명백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1940년대 말이 되자 공산당이 중국을 장악하고, 동유럽은 철의 장막 뒤로 사라졌다. 그러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유주의의 방향을 트는 데는 그 나름의 리스크가 따랐다.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은 적들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과장하고, 다가오는 위험에 과민하게 반응하며, 싸우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지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나치에 맞서 싸우기 위해 나섰다가 자신이 구한 나라가 편집증으로 망가져 가는 것을 보게 된 로버트 오펜하이머에게 물어보라.)

냉전 시대에는 독재에 대한 우려나 적으로부터의 보호라는 명분이 그 자체로 자유주의자들이 국내에서 소중히 여겨야 할 자유를 사라지게 만드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자유주의자들이 해외에서 권위주의를 지원하거나 공산주의와의 전쟁에 나서면서 공포의 폭력 정치가 나타나기도 했다. 전 세계 각지의 끔찍한 전장에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중 다수는 “자유”의 이름으로 싸우던 미국과 미국의 대리인 손에 죽어 나갔다.

자유주의자들이 한때 자신의 것이라 여겼던 자유와 진보의 약속을 소련이 하고 있었다는 점 역시 곤란했다.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이 이야기한 것이 바로 귀족과 왕의 타도, 자유와 평등의 세상이었으니 말이다. 프랑스 여행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알렉시스 드 토크빌 같은 자유주의자는 정부의 과잉을 우려하기는 했어도, 민주주의를 평등한 시민권이라는 놀랍고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정치 형태라고 생각했다. 이런 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이 해방과 평등을 가져올 것이라는 지나친 믿음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이후 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것도 사실이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자유주의자 역시 사회주의의 등장에 기여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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